문화재청 명승 별서정원 역사성 검토…열한 곳 유래, 소유자 등 새롭게 확인
거창 수승대, 거창 수송대로 명칭 변경…구미 채미정 등 설립자 파악
거창 수승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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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 수승대(搜勝臺)의 이름은 퇴계 이황(李滉)이 이곳 풍경을 예찬한 시에서 유래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삼국시대에 '수송대(愁送臺)'로 불린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옛 신라와 백제의 사신이 이곳에서 헤어질 때마다 근심을 이기지 못해 수송이라 일컬었다고. 조선 시대에는 뛰어난 경치가 근심을 잊게 한다는 설이 퍼져 수승대와 수송대로 모두 지칭됐다. 앞으로는 애초 이름인 수송대로 불린다.
문화재청은 서울 성북구 성락원의 부실 고증을 계기로 진행하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별서정원에 대한 역사성 검토로 열한 곳의 유래, 소유자, 변화과정 등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확인했다고 2일 전했다. 별서(別墅)는 교외에 따로 지은 집을 뜻한다. 성락원은 실존하지도 않은 인물이 소유했다는 잘못된 정보가 오랫동안 고쳐지지 않아 논란이 됐다. 이에 문화재청은 성락원의 명승 지정을 해체하고 '성북동 별서'로 명칭을 다시 지정한 바 있다.
유래가 새롭게 확인된 곳은 거창 수승대와 담양 소쇄원(瀟灑園), 담양 식영정(息影亭)이다. 소쇄원은 이인 양산보(1503∼1557)가 스승 조광조의 유배 뒤 낙향해 조성한 곳이다. 이름인 소쇄는 '깨끗하고 시원하다'라는 뜻. 그동안 양산호 호인 '소쇄옹'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 담양 출신인 면앙정 송순(1493∼1582)이 지어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식영정은 서하당 김성원(1525~1597)이 장인인 석천 임억령(1496~1568)을 위해 지은 정자로 알려졌다. 실제로는 김성원이 정자를 세우고 임억령이 식영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파악됐다.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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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선몽대와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 구미 채미정은 정원을 만든 사람과 소유자가 새롭게 밝혀졌다. 그동안 선몽대는 우암 이열도(1538~1591)가 조성했다고 알려졌다. 실제로는 그의 부친인 이굉(1515~1573)이 설립자였다. 백석동천은 그간 소유자가 불분명해 여러 설이 난립했다. 하지만 이번 조사로 대대로 서울에 살며 높은 벼슬을 한 경화세족 출신의 애사 홍우길(1809~1890)이 19세기에 백석동천 일대 백석실(白石室)을 보유했음이 드러났다. 아울러 야은 길재를 모시기 위해 지은 정자로만 알려졌던 채미정은 1768년 선산부사 민백종(1712~1781)이 지역 유림과 뜻을 모아 건립한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이번 조사에서는 순천 초연정 원림과 예천 초간정 원림의 형태와 위치가 중수 또는 중건으로 변경된 발자취도 확인됐다. 초연정 원림은 청류헌 조진충(1777~1837)이 1836년에 초가로 지었다. 지금의 기와지붕은 그의 아들 만회 조재호(1808~1882)가 1864년에 중건하면서 올렸다. 초간정 원림에서는 두 차례 중수가 확인됐다. 초간 권문해(1534~1591)가 1582년에 세운 정자는 임진왜란으로 소실됐다. 죽소 권별이 1626년 중수했으나 이 또한 불에 타버렸다. 그의 후손인 권봉의는 기존 터가 좋지 않다고 생각해 1741년 현재 자리로 옮겨 중수했다.
문화재청은 이 같은 역사성 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명승 별서정원의 고시문과 국가문화유산포털 내용을 수정한다. 아울러 거창 수승대의 지정 명칭 변경과 관련해 한 달간 각계 의견을 수렴한다. 관계자는 "다른 명승 별서정원 열한 곳에서도 역사성 고증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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