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처만 다양하다면 누구나 혹할 만한 거래다. 20% 할인에 카드할인까지 받으면 무려 4만2100원을 아낄 수 있다. 21%의 할인을 받는 스마트한 소비를 즐길 수 있는 셈이니 말이다. 2019년 설립된 머지포인트는 이러한 할인을 미끼로 100만 명의 고객을 유치했다. 문제는 사용자가 할인받은 만큼 누군가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할인받은 4만2100원은 운영사의 비용이 된다. 머지포인트가 발행한 상품권 규모는 1000억원을 넘어섰다. 자본금 30억원의 스타트업이 1000억원의 상품권을 발행할 수 있었던 비결은 돌려막기다. 구매자가 늘어나 상품권을 구매하면 그 돈을 통해 이전비용을 충당하는 방식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머지포인트를 구매한 사용자들조차 반신반의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회사가 사라지기 전에 열심히 쓰자”는 내용의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올 정도로 높은 할인율에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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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빵한 제휴사 믿었는데”… 알고보니 묻지마 제휴
머지포인트가 지속적인 가입자 유치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대형 제휴사에 대한 신뢰가 큰 역할을 했다. 머지포인트는 티몬·지마켓·11번가·위메프 등 대형 오픈마켓에서 판매했다. 토스, NH페이코, 하나멤버스 등과도 협업해 연간권을 선보이기도 했다. 미리 목돈으로 연간권을 구매하면 상시 할인과 함께 12개월 동안 포인트로 선결제 금액을 나눠 받는 서비스다.
하나멤버스와는 머지포인트 연간권을 18만원에 판매하며 구매한 이들에게 하나머니 5만원을 지급하는 한편, 매달 하나머니 1만5000원을 캐시백해준다고 약속했다. 금융사 간 멤버십 고객 확보를 두고 경쟁이 치열해지자 파격적인 할인으로 입소문이 난 머지포인트와 손을 잡았다.
머지포인트가 지난 8월 11일 사용처 축소를 공지하자 고객들이 찾아가 환불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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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KB국민카드는 지난 6월 머지플러스와 협약(MOU)을 체결, 아예 올 하반기 머지포인트 이용 혜택에 집중한 특화카드(PLCC·상업자 표시 신용카드)를 출시할 예정이었다. 특화카드란 카드사 이름 대신 제휴사의 이름으로 내놓는 카드를 말한다. 제휴사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제휴사가 카드 상품 기획부터 전반적인 마케팅 활동을 전담하는 게 특징이다.
국내 한 대형 카드사 관계자는 “금융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검증 문제에는 관심을 덜 가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한 업체에서 시작하면 라이벌 업체들도 우후죽순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법외 영역’ 모르쇠 고수하던 금감원
사태 커지니 뒤늦게 “책임 통감”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미등록 업체라 법적 권한이 없다’고 입장을 밝힌 금융감독원에 대해 “법적 등록 업체가 아니어서 책임이나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금감원이 존재하는 목적은 소비자의 피해를 예방하는 건데, 등록 업체가 아니라서 모른다고 하면 국민들이 정부를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지적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도 “누적 발행액 1000억원 상당의 유사 선불지급결제업자를 금융당국이 인지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느냐”며 “옵티머스, 라임 등 사기 사모펀드 사태뿐 아니라 암호화폐 대란에 이어 머지라는 금융사고까지 금융당국의 무능을 보며 국민들이 한탄하고 있다. 심지어는 존재 회의론까지 나온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금융당국은 태도를 바꾸었다. 지난 8월 20일 도규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머지포인트 환불 사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머지포인트 이용자와 가맹점의 재산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두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감원이 다양한 금융사와 제휴를 맺고 활발하게 마케팅을 펼친 머지포인트의 존재를 몰랐을 리 만무하다”라며 “사태가 커진 이후 선불결제 업체들에 대한 모니터링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2호 (2021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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