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대표의 합당 결렬 선언을 놓고는 지지와 비판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일단 정치적 선택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여의도에서 나름대로 십수 년간 정치 이력과 내공을 쌓아온 공당의 대표가 번민과 고뇌 끝에 내린 결단일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했다"고 공격하는 것은 협상 카운터파트로서 짊어져야 할 절반의 책임을 외면하는 일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 선택은 과연 '안철수 정치'가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 지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묵은 의문을 재삼 환기한다. 무조건적 정권교체인가, 아니면 자기중심의 대선 승리인가, 그것도 아니면 중도의 세력 확장인가 등에 관한 명쾌한 답을 얻기가 쉽지 않다. 진보 정부를 극복하는 정권교체를 지상과제로 자리매김했다면 협상태도를 문제삼아 합당 논의 중단을 선언하는 방식은 결코 전략적이지 않다. 그는 제1야당의 힘만으로는 정권교체가 힘들어지고 있다고 판단했다는 말도 했다. 그렇다면 힘을 보태는 게 상식적인 결론일 텐데 원심력을 키우는 모순된 선택을 했다. 한때 극중(極中)을 표방한 안 대표가 중도를 지켜내겠다는 심산으로 합당에서 손을 뗀 것이라는 해석은 지나치게 순진해 보인다. 진보·보수 양 진영의 진검승부인 대선에서 중간지대는 공략의 대상이지 정권 창출이라는 소출을 위해 단기간에 경작이 가능한 토양은 아니다.
안 대표는 가파른 비탈길에 섰고, 다시 용기를 내어 걷겠다고 했는데 상투적인 레토릭을 넘어 '어디를 향해, 무엇을 위해' 걷겠다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답을 내놓지 않았다. 대선 독자 출마 여부에 대한 답변도 유보했다. 그런데도 안 대표가 생애 3번째 대선 도전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과 해석은 무성하기만 하다.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정권교체를 외쳐왔으며, 국민의힘과의 합당 추진도 그 연장선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가 이 목표를 이뤄낼 경로는 두 갈래가 있었으나, 합당 불발로 이제 독자 출마라는 외길 선택지밖에 남지 않게 됐다. 국민의힘 경선으로 선출된 후보와 대선 직전 야권후보 단일화를 추진하는 최후의 카드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나 국민의당의 미약한 당세와 중도라는 어정쩡한 포지션, 안 대표의 쪼그라든 정치적 입지와 낮은 대중 지지율을 생각할 때 안 대표가 양보하지 않는 한 성립되기 힘든 시나리오에 가깝다. 안 대표는 그간 두 번이나 대권의 문을 두드렸으나, 첫 번째 시도는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양보를, 두 번째 도전은 3위에 그치는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지금 그의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바닥을 헤맨다. 체급을 달리해서 여러 선거에 빈번히 출마하고 그마저도 실패를 거듭하는 바람에 스스로 정치적 위상과 신선함을 떨어뜨린 것은 아닌지 안 대표는 성찰해야 한다. 10여 년 전 혜성처럼 등장해 신드롬까지 일으켜 전도양양했던 정치인의 성장이 기대 이하로 더뎠다. 안 대표는 대선국면에서 모호한 화법으로 자신을 안개 속에 가두지 말고,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향후 행보에 관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는 게 바람직하다. 정계 입문 이래 안 대표는 너무 자주 경계인 같은 '변수'로 인식돼 예측가능성 보다 불확실성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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