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세 시작 3개월만…첫 주도 장악 후 열흘 만에 카불 점령
미군이 공들인 아프간 군경 허약…정부 지원도 못 받아 붕괴
아프간 라그만주를 장악한 탈레반이 정부군 차량에 탈레반 깃발을 꽂고 이동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미군이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이 순식간에 탈레반의 수중에 들어가면서, 탈레반의 속전속결식 세력 확장에 관심이 쏠린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장악하고 정부의 항복을 받아낸 것은 미군과 동맹군이 단계적인 철수를 시작한 지난 5월 이후 불과 3개월 만이다.
동맹군의 철수 개시에 맞춰 공세를 강화하기 시작한 탈레반은 지방 소도시를 거점으로 빠른 속도로 장악력을 높였다.
유엔아프간지원단(UNAMA)의 데보라 라이온스 대표는 지난 6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의 370개 지구 가운데 50개를 점령했다고 밝혔다.
당시만 해도 국제사회는 탈레반의 빠른 세력 확장을 체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만인 7월 21일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탈레반이 이제 아프간 전체 지구들의 중심지 중 절반에 달하는 200여곳을 장악했다면서 "다만 탈레반은 주도를 장악하지 않은 채 외곽에서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던 탈레반이 본격적으로 아프간의 주요 거점도시를 공략하기 시작한 것은 이달 초부터다.
현지 관리 등에 따르면 탈레반은 지난 6일 전후로 남서부 님로즈주(州) 주도 자란지를 손에 넣었다. 미군 철군 후 처음으로 이뤄진 탈레반의 주도 장악이었다.
탈레반은 그 후 무서운 속도로 지방 도시들을 점령하면서 수도 카불을 향해 진군했다.
지난 12일에는 아프간에서 2번째와 3번째로 큰 도시인 남부 칸다하르와 서부 헤라트는 물론, 카불 남서쪽 150㎞ 지점의 거점 도시 가즈니(가즈니주 주도)까지 차지했다.
탈레반은 또 이튿날인 13일에는 카불에서 불과 50㎞ 떨어진 로가르주의 주도 풀-이-알람까지 점령하며 수도권도 압박했다.
탈레반 피해 수도 카불로 탈출한 아프간 피란민들 [카불 AFP=연합뉴스] |
14일 북부 최대 도시 마자르-이-샤리프(발흐주 주도)에 이어 15일 카불과 인접한 동쪽 낭가르하르주 주도 잘랄라바드까지 손에 넣으면서 탈레반은 카불을 제외한 대도시를 사실상 모두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5일 아프간 정부의 항복을 받아내면서 탈레반은 2001년 미군의 공습으로 정권을 잃은 지 20년 만에 아프간을 온전히 다시 접수했다.
예상을 깬 탈레반의 빠른 세력 확장에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주요 서방 국가들은 패닉에 빠졌고, 대사관 철수와 자국민의 탈출 계획을 서둘러야 했다.
또 탈레반을 막겠다며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였던 북부지역의 군벌 도스툼과 누르는 국경을 넘어 우즈베키스탄으로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빠른 속도로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체질적으로 허약한 정부군이 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미국 아프간재건특별감사관실(SIGAR)이 지난달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 4월 기준 급료를 받는 아프간군(ANDSF)은 30만699명이다.
탈레반 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핵심 전투대원은 6만 명이고 탈레반을 추종하는 지역 무장단체 대원이 9만 명, 이외 지지자들까지 포함하면 총 20만 명으로 추산된다.
숫자만 보면 규모 면에선 아프간군이 탈레반보다 우위지만, 아프간군 수가 부풀려졌다는 지적도 있다. 급료를 타 먹으려고 거짓으로 등록한 경우가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병력은 통계의 6분의 1 수준일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아프간군에 들어간 지원금도 어마어마하다.
아프간군은 연간 50억~60억 달러(약 5조8천억 원~7조 원)의 국제사회 지원금을 사용했다. 미국이 '아프간군 기금'(ASFF)으로 지원한 자금만 2005년부터 이달 6월까지 약 750억 달러(약 88조 원)에 달한다.
무기와 장비, 훈련비 등을 모두 합치면 미국이 지난 20년간 아프간군에 쏟아부은 돈이 830억 달러(약 97조 원)가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비해 탈레반은 마약거래 등을 통해 연간 3억∼16억 달러(약 3천억~1조9천억 원)의 수익을 내는 것으로 유엔이 추정했다.
이처럼 병력과 물자 면에서 탈레반보다 우위에 있는 정부군이 대등한 전투조차 변변히 하지 못했던 점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이 지난 20년간 무려 구축해 놓은 아프간 군경은 탈레반과의 싸움에 '목숨을 걸어야 할 이유'가 사라지면서 조직을 버리게 됐다고 분석했다.
반면, 과거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군에도 저항했던 탈레반은 9·11 테러의 배후인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 미국이 벌인 20년간의 전쟁을 꿋꿋하게 버텨냈다.
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군 철수 뒤 아프간군은 사실상 자국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상태였으며, 이것이 35만 명에 달하는 군과 경찰 조직이 와해한 원인이라고 전했다.
탈영한 아프간군 병사 타즈 모함마드는 "지난 며칠간은 식량도 물도 무기도 없었다. 처음엔 특공대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해 보급했지만, 점차 뜸해졌고 결국 보급이 끊겼다"고 말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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