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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독립 열망 담긴 태극기 세 점 보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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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 태극기'와 '김구 서명문 태극기', '서울 진관사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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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에 대한 열망과 한국인의 정체성이 담긴 태극기 유물 세 점이 보물이 된다. '데니 태극기'와 '김구 서명문 태극기', '서울 진관사 태극기'다. 문화재청은 광복절을 앞둔 12일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태극기가 보물로 지정 예고되기는 처음이다. 보물은 통상 제작·형성된 지 100년 넘은 유물을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근현대 유산이 매우 적은 편이다. 박수희 유형문화재과 연구관은 "역사·학술 가치의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2019년부터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검토를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말모이 원고'와 '조선말 큰사전 원고'를 보물로 지정했으며, 올해 태극기 세 점을 추가로 지정 예고하게 됐다"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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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는 1882년에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기원은 규명되지 않았다. 고종은 이듬해 3월 6일 전국에 태극기 사용을 선포했다. 그런데 상세한 규격 등을 정하지 않아 다양한 형태로 제작됐다. 국가등록문화재인 태극기는 약 스무 점. 보물 후보에 오른 세 점은 비교적 제작 시기가 이르다. 제작 배경에 관한 사실도 명확해 역사·학술 가치가 충분하다. 데니 태극기는 현존 태극기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1890년 이전에 만들어졌다고 추정된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제작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으며 김구(1876~1949)와 안창호(1878~1938)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일장기에 덧씌워 제작된 진관사 태극기에는 강한 항일정신이 담겨 있다.

데니 태극기는 1886년 조선 정부의 외교·내무 담당 고문으로 부임한 미국인 오웬 니커슨 데니(1838∼1900)의 소장품이었다. 1891년 1월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가져갔는데, 그의 후손이 1981년 우리나라에 기증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광복절이나 삼일절 즈음에 한시적으로 공개된다. 크기는 세로 182.5㎝, 가로 262㎝로, 현존하는 옛 태극기 가운데 가장 크다. 제작에는 서양의 방법이 차용됐다. 넓은 폭의 면직물을 바탕천으로 깔고 재봉틀을 사용해 박음질했다. 특히 태극과 사괘(四卦)는 바탕천을 오려내고 두 줄로 정교하게 꿰매어 문양이 또렷하게 보이도록 했다. 깃대에 머리카락 또는 동물 털 뭉치를 채워 넣어 지지력도 높였다. 위아래 고리를 활용해 게양했을 때 태극기가 세로로 잘 버티도록 고안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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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1941년 3월 16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 김구 주석이 독립 의지를 담은 글귀를 적어 벨기에 샤를 미우스 신부에게 준 유물이다. "정력·인력·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强弩末勢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라고 쓰고, 마지막에 '김구(金九)'라고 새긴 작은 도장을 찍었다. 미우스 신부는 미국으로 건너가 안창호의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전했고, 후손들은 1985년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크기는 세로 44.3㎝, 가로 62㎝다. 비단에 청색과 홍색 천으로 태극을 제작해 붙이고, 검은색 천으로 사괘를 덧대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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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진관사 태극기는 2009년 5월 26일 서울시 은평구 진관사의 부속건물인 칠성각을 보수하던 중 불단 안쪽 벽체에서 발견됐다. 태극기 안에는 '경고문', '조선독립신문' 등 독립신문류 다섯 종 열아홉 점이 있었다. 발행 시점은 1919년 6월 6일부터 12월 25일 사이. 그래서 태극기도 그 무렵 독립운동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된다. 실제로 태극과 사괘는 먹으로 덧칠돼 항일 의지가 극대화됐다. 상단 끝자락이 불에 타서 손상됐으며 군데군데 구멍도 뚫려 있다. 박 연구관은 "1919년 전후에 제작된 희귀한 실물 태극기라는 점만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라며 "불교 사찰이 독립운동의 배후 근거지나 거점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도 말해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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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문화재청은 이날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서명문 및 축하문'과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光復)', '한국광복군 훈련교재 정훈대강', '김좌진 장군 사회장 약력서'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하고, '서윤복 제51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메달'과 '공군사관학교 제1기 졸업생 첫 출격 서명문 태극기'는 문화재로 등록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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