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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시설로 가득했던 서울 중심지 '용산'의 옛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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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신주백·김천수 씨, 사진·도면 자료집 1∼3권 출간

연합뉴스

하늘에서 본 미군 제7보병사단 사령부
1948년 9월 24일 촬영. [도서출판 선인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강이 굽이치며 흐르는 서울 지도를 보고 굳이 중심이 될 만한 지역을 찾으면 용산을 가리키게 된다. 광화문에서 한강으로 이동하는 길목이자 동서남북 어디든 가기에 좋다.

조선시대에 물자가 유통되는 작은 항구였던 용산은 한 세기 전, 대륙 진출을 꿈꾼 일제에 의해 군사기지로 변모했다. 일제는 1906년부터 1913년까지 공사를 진행해 사령부, 보병 연대 본부, 병원, 창고를 지었다. 1908년에는 남산 인근 필동에 있던 한국주차군사령부를 용산으로 이전했다.

이후 서울의 노른자위 같은 용산은 100년 넘게 '군인의 땅'이 됐다. 담벼락에 둘러싸인 용산기지는 한국인에게 금단의 지역이었으나, 최근 미군기지 이전과 맞물려 반환과 공원 조성 작업이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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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역에서 출발하는 조선해방자호
1946년 5월 4일 촬영. [도서출판 선인 제공]



근대사를 연구하는 신주백 독립운동사연구소장과 용산구 지역사를 알려온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은 2019년부터 용산 역사를 사진과 지도·도면으로 조명하는 자료집을 도서출판 선인과 함께 한 권씩 내고 있다.

자료집은 용산 풍경뿐만 아니라 근대사의 중요한 장면을 촬영한 사진, 기지 내 건물 배치도 등으로 구성됐다.

제1권은 1906년부터 광복 시점인 1945년까지 다뤘고, 지난해 발간된 제2권은 1945년부터 1949년 사이에 용산을 점유한 세력이 일본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담았다. 신간인 제3권은 한국전쟁 시기인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역사를 각종 시각 자료로 상세히 소개했다.

제2권과 제3권은 저자들이 2017년과 이듬해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가서 수집한 자료를 싣고, 사진 뒷면의 기록과 번역문도 수록한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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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재탈환 직후 숭례문
1951년 3월 20일 촬영.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도서출판 선인 제공]



신 소장은 제3권 머리말에서 "미군은 한국전쟁 때 파괴돼 사용할 수 없는 건축물을 제외하면 일본군 용산 병영의 건물을 그대로 사용했고, 기지 내 공간도 일본군이 건설한 도로를 축으로 구분했다"며 "다만 용산기지 안팎의 사정과 연관돼 공간의 중심이 위쪽으로 이동했고, 미군은 그곳을 메인 포스트라고 명명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제에서는 "일본군에게 용산 병영이 대륙 침략의 최전방 지휘부가 있던 거점이었다면, 미군에게 용산기지는 소련·중국·북한을 상대하는 수직적 동아시아 군사동맹망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최전방 지휘부가 주둔한 곳이었다"며 "미군은 일본군과 영국군 기지를 활용해 세계에서 유일한 군사기지 네트워크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저자들은 용산 자료집을 7권까지 펴낼 계획이다. 매년 한 권씩 발간하고, 마지막 권은 1980년대까지 다루는 것이 목표다.

신 소장은 "향후 작업을 위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한 번 더 갈 필요가 있다"며 "용산은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 속에 남는 공간이 돼야 하며, 공원화 과정에서 역사성이 반드시 강조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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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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