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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현장에선] ‘미얀마 쿠데타’를 보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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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얀마는 지금까지 세 번의 쿠데타를 겪었다. 1962년 3월 네 윈 장군 주도로 첫 쿠데타가 일어났고, 1988년 9월엔 당시 국방장관 겸 총사령관이었던 소 마웅이 권력을 잡는다. 세 번째가 지난 2월 1일 민 아웅 흘라잉이 일으킨 쿠데타다.

대략 한 세대마다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점도 비슷하고, 앞뒤에 붙는 이야기도 비슷하다. 네 윈은 1960년 총선 결과를 뒤집었고, 소 마웅은 1990년 총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흘라잉은 지난해 총선을 부정선거로 규정했고, 쿠데타의 빌미로 삼았다. 패배한 선거는 쿠데타로 뒤엎거나 ‘부정’ 낙인을 찍는 게 이들의 방식이다.

세계일보

윤지로 국제부 차장


공통점은 더 있다. 네 윈은 민주화투쟁 학생들이 모여 있던 양곤대 학생회관 건물을 다이너마이트로 날려버렸다. 소 마웅이 집권한 첫 일주일 동안에만 600명 넘는 시민의 피가 뿌려졌고, 이번 군부도 반년 동안 9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988년 8월 미얀마 국민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아웅산 수치 여사는 이듬해 가택연금됐고, 그는 2016년 국가고문이 되고도 이번에 또 가택연금됐다.

이쯤되면 솔직히 이런 의문이 든다. 이 나라는 달라질 수 있을까, 불운한 역사의 쳇바퀴만 도는 게 아닐까. 관찰자의 시선이다.

#2. 윈라위씨는 1988년 8월8일 이른바 ‘8888 민중항쟁’에 가담한 88세대다. 그는 군부독재를 피해 1990년 도피길에 올랐고, 1993년 한국에 정착했다. 그가 고국을 방문한 건 재작년 딱 한 번, 미얀마 문민정부 때였다. 그의 고향에는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가족이 있다.

군부는 최근 민간 권력이양 시점을 당초 약속에서 1년 반 뒤인 2023년 8월로 미뤘다. 윈라위씨는 전화통화에서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그도 체념한 걸까? 아니다.

“그 전에 바뀔 거예요. 지금도 조금씩 변하고 있어요. 1988년과는 다를 겁니다.”

그는 세 가지를 꼽았다. 반군부 진영이 세운 국민통합정부(NUG)가 소수민족까지 끌어안고 꾸준히 세를 규합 중이다. 공무원의 불복종운동도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군부는 정부 장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가 가장 강조한 건 젊은 세대의 움직임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같은 수단을 이용해서 게릴라 활동을 펴요. 우리 때와는 달라요. 지금도 곳곳에서 꾸준히 시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언론 통제 때문에 보도가 안 될 뿐이죠.”

그는 통화 내내 희망을 이야기했다. 미얀마 청년들이, 공무원들이, 군부에 반대하는 모든 시민이 저항을 이어가는 것 또한 희망이 있기에 가능하다. 부모가 자식을 포기할 수 없듯, 그들은 ‘나의 조국’ 미얀마를 포기할 수 없다. 미얀마의 내일을 그려가는 주인공의 시선이다.

오는 8일 미얀마의 8888 항쟁이 33주년을 맞는다. 올해는 한국에서도 미얀마에 연대를 표하는 다양한 행사가 온라인으로 열린다. 이번 주말엔 SNS에 맛집 사진 대신 미얀마에 힘을 보태는 메시지를 남기고자 한다. 관찰자일지언정 방관자가 되면 안 되니까.

윤지로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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