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9 (목)

[기자수첩] 선장 없는 배, 삼성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머니투데이 오문영 기자] "속전속결하려면 적장을 잡아라. 적장을 잡으면 상대의 전체 역량을 와해시켜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다." (손자병법)

과거 전쟁에선 적장을 사로잡거나 죽인다는 것은 승리를 의미해 왔다. 이 말은 현대전에서도 유효하다. 핵무기로 상대의 수뇌부를 선제타격해 무력화하는 참수작전은 핵전쟁의 주요 전략 중 하나다. 성공한다면 전시 통제에 혼란을 불러올 수 있고, 일부의 경우 사기 저하까지 유도할 수 있다.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는 기업에도 예기치 못한 리더의 부재는 치명상이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기업 TSMC의 설립자 모리스 창은 2005년 별다른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회사를 떠나겠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이후 TSMC 수익은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내리막길을 걸었고, 창은 2009년 경영현장에 복귀해 다시 지휘권을 잡아야만 했다.

갑작스레 총수 부재 상황에 놓인 삼성그룹 곳곳에서도 위기 신호가 감지된다. 115조원에 달하는 현금을 손에 쥐고 있지만 새 투자 소식은 5년째 들리지 않는다.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공식화한 미국 내 파운드리 투자도 두 달이 넘도록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한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총수 부재 이후) 책임질 수 있겠냐는 질문은 모든 의사결정을 늦추고 있다"고 전했다.

총수의 역할인 미래 비전 제시는 모습 자체를 감췄다. 삼성이 2018년 미래 신사업 분야를 제시하며 세웠던 '180조 투자 계획'은 지난해 마무리됐다. 새 도약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요구되지만, 반년 넘게 침묵이 이어지고 있다. 비메모리 시장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시스템반도체 2030'의 경우 최근 기존 133조원에서 171조원으로 투자 규모를 늘렸지만, 전략적 비전 제시 없이 몸집을 키우는 수준에 머물렀다.

삼성의 허점을 간과할 해외 기업이 아니다. 해외 기업들은 잇따라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히며 역공에 고삐를 죄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삼성에 빼앗긴 과거의 명성을 되찾으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10년 내에 삼성 대표 제품은 대부분 사라진다" "영원한 1등은 없다" 등 유독 위기의식을 강조했던 이건희 회장의 말이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때다.

머니투데이

오문영 머니투데이 산업1부 기자




오문영 기자 omy0722@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