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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쥴리 벽화’부터 ‘박근혜 누드화’까지… 표현의 자유 어디까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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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흰색 페인트로 지워진 ‘쥴리 벽화’

정치권 안팎 표현의 자유 논쟁 불러일으켜

박근혜 전 대통령 ‘누드화’, ‘백설공주 포스터’ 등도 논란

“공인이더라도 진실성 없으면 표현의 자유 성립 안 돼”

“표현의 자유를 국가가 개입해 규제하는 것에는 반대”

세계일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아내 김건희 씨를 비방하는 벽화로 논란이 일었던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한 중고서점 측이 문제가 된 벽화를 결국 흰 페인트로 덮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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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지우고, 칠하고 덧칠까지.

서울 종로구의 한 중고서점 외벽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 아내 김건희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이른바 ‘쥴리 벽화’가 생긴 후 친여(親與)·친야(親野) 성향의 유튜버와 지지자들이 몰리며 일대가 몸살을 앓았다. 서점 측이 논란이 된 문구를 지우자, 한 유튜버가 그 위에 다시 문구를 쓰고 또 다른 유튜버는 검은색 페인트로 그림과 문구 모두 덧칠해버렸다. 고소·고발도 잇따랐다. 그러자 결국 서점 측이 지난 2일 흰색 페인트로 그림과 문구를 모두 지웠다.

◆정치권, “선 넘었다”

‘쥴리 벽화’가 논란이 되자 정치권에서 표현의 자유 논쟁에 불이 붙었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수석대변인은 지난 20일 “사실 확인도 안 된 인격살인과 명예훼손, 허위사실 유포나 악의적 비하는 대한민국 정치가 단호히 배격해야 할 과거로의 회귀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행위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도 뒤늦게 입장을 냈다. 민주당 고용진 대변인은 “표현의 자유도 존중돼야 하지만 인격 침해 등 금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캠프 남영희 대변인은 “윤석열 후보 부인이라는 이유로 결혼 전 사생활을 무분별하게 비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사생활을 조롱하기보다는 코바나컨텐츠 후원금 모금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등 김건희 씨를 둘러싼 의혹 검증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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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를 백설공주에 빗댄 포스터. 포스터 작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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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치권 표현의 자유 논란

정치와 관련된 예술과 표현의 자유 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1월 표창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풍자그림 전시회 ‘곧, bye! 전(展)’에 걸린 ‘더러운 잠’ 작품이 큰 논란이 됐다. 이 작품은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풍자했다. 그림 중앙에는 박 전 대통령 얼굴이 합성된 나체의 여성이 있고 배경에는 세월호 참사의 모습이 담겨있다. 최순실(개명 최서원)은 미용 주사로 보이는 주사 다발을 들고 있고 태극기 중심에도 최순실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당시 새누리당은 여성 인격모독이라며 반발했다. 민주당은 논란이 커지자 표 의원에게 당직 자격정지 6개월 처분을 내렸다. 당내 징계는 이뤄졌지만 표 의원은 법적 처벌은 받지 않았다. 한 보수성향 시민단체가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표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지만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되레 그림을 던져 부순 예비역 제독 B씨가 재물손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012년에는 팝아티스트 이하(본명 이병하)씨가 당시 박근혜 대선후보를 백설공주에 빗댄 풍자 포스터를 거리에 붙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포스터에는 백설공주 옷을 입은 박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사과를 들고 있었다. 이씨는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벽보는 정치인 박근혜를 소재로 한 예술창작 표현물에 불과하고 박근혜를 반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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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 외벽에 그려진 대권 주자 윤석열 예비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30일 건물 관계자가 벽화의 글자를 흰색 페인트로 칠해 모두 지웠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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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나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인은 공적 토론의 대상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적 표현이나 약간의 비난성 표현이 담기더라도 용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명예를 훼손하거나 심각한 윤리 위반을 하면 (자유가) 제한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인을 대상으로 한 표현의 자유는 2가지 면책요건이 있다. ‘공익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한 교수는 ‘쥴리 벽화’에 대해 “김건희씨가 공인과 관련돼 있어서 세간의 평가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더라도 표현자가 (벽화와 문구가)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는지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쥴리 벽화’ 논란은 일반적인 예술 작품의 풍자와는 다른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교수는 “‘박근혜 풍자화’에는 박 전 대통령의 적나라한 모습이 누드라는 상징으로 담겼고, ‘G20 정상회의 홍보물 쥐 그림’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잘못된 모습을 쥐라는 상징으로 담아낸 것”이라면서 “반면 ‘쥴리 벽화’에는 ‘쥴리’와 ‘쥴리의 남자들’ 등 논란의 대상이 되는 단어들을 써서 사실관계를 담아냈다”고 지적했다. 창작자가 인식을 추상화해 표현한 게 아니라 구체적이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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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 벽면에 그려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배우자 김건희 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를 가린 보수단체 차량에 주차위반 과태료 통지서가 붙어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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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쥴리 벽화’는 풍자인가

법적 규제 외에 ‘풍자’의 요건과 의미를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풍자는 공적 인물이나 공적 사안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잘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을 재밌게 표현해 골계미를 부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전 총장의 부인 김건희씨가 공적 인물이냐는 사실 뿐만 아니라 ‘쥴리 논란’이 공적 사안인지도 고민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김건희씨의 박사학위 논문이면 몰라도 쥴리 논란은 공적 사안보다는 개인의 사생활 측면이 강하다”라면서 “쥴리 논란을 보는 관점도 관음증적으로 여성에 대한 자극적인 호기심이 많은데 그런 점을 볼 때 과연 (쥴리 논란이)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밝혔다.

표현 대상뿐만 아니라 표현 방식도 중요하다. 그는 “박 전 대통령 풍자화 ‘더러운 잠’은 여성의 생물학적 측면을 부각했다”며 “성평등 관점에서도 문제가 있고 (표현 방식이) 혐오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치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화예술의 자유는 주어져야 하지만, 특정 인물을 풍자할 때는 보편적인 상식 수준에서 공감을 얻어야 한다”며 “앞선 풍자들은 공감을 얻기보다는 반감을 부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표현의 자유를 법으로써 규제하는 것에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오늘날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시민들이 (적절한지를) 판단할 수 있다”며 “표현의 자유는 보장하되 문화적으로 비판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상희 교수도 “표현의 자유 문제에 국가가 권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돼야 다양한 의견들이 자유롭게 표출될 수 있다”며 “사회적으로 비판하고 정치적으로 평가해야지 국가가 개입해 막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평론가는 “역대 대통령부터 쥴리까지 (논란이 됐던 작품들의) 풍자 내용이 시대적 호평을 받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면서 “이제는 단순히 특정 권력자나 집단을 풍자했다는 이유만으로 주목받을 게 아니라 공감을 얻을 수 있을 만큼 풍자 수준이 더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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