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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반도체용 기판설비 2년 대기···EUV 장비는 '입도선매'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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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장비 글로벌 쇼티지]

◆삼성전자 공장 증설에 빨간불

글로벌 장비 쟁탈전 가열···파운드리·식각공정까지 난항

"구매가 높게 부른다고 해결 안돼···공급부족 지속될 것"

해외 의존도 높은 韓, 정부 주도 '국산화 로드맵' 시급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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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인쇄회로기판(PCB) 분야 국내 최대 업체인 삼성전기가 ‘설비 부족’을 언급한 것은 지난 4월 열린 1분기 실적 설명회부터다. 당시 삼성전기 관계자는 기판 시장 상황과 관련해 “일부 기판 설비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달 28일 열린 2분기 실적 설명회에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삼성전기가 생산하는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 대면적 BGA 등은 반도체 아래에 덧대는 고성능 기판으로 최근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노트북과 태블릿PC 등의 사양이 업그레이드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기는 이에 대응해 기판 라인 증설을 검토하고 있지만 관련 설비 확보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3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고성능 반도체용 기판 핵심 설비를 양산 라인에 들이려면 2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특히 일부 해외 업체가 독점하고 있는 설비 구매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빛으로 기판 회로를 만드는 노광 설비가 대표적이다. 장비 업계 관계자는 “히타치·우시오 등 일본 업체들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이 설비를 국내 업체가 먼저 구매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PCB 내 회로가 반도체 회로만큼 미세해지는 점도 설비 부족 현상의 주요 이유로 꼽힌다. 최근 반도체 업계에서는 2.5D, 이종 접합 등 초고급 패키징 기술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이 패키징 기술을 만족시키려면 기판 회로도 함께 정교해져야 하는데, 기존 설비 업체들은 이 회로를 제작할 만한 기술이 부족하다. 한 PCB 업계 전문가는 “기존 장비를 아무리 업그레이드해도 고객사가 요구하는 최신 기판 사양을 만족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단순히 구매 가격을 높게 부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과도기적 상황에 처해 있다”고 설명했다.

기판 제조 설비 공급 부족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기판 양산 라인 증축은 삼성전기뿐만 아니라 LG이노텍·대덕전자 등 국내 업체 외에도 중화권 업체들이 검토하거나 이미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장비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분야는 기판 분야만이 아니다. 정보기술(IT) 기기 수요 증가로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국내외 반도체 업체들의 치열한 장비 쟁탈전은 올해 내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현상은 첨단 극자외선(EUV) 장비부터 이른바 ‘레거시 공정’인 8인치 파운드리 공정까지 모든 라인에서 벌어지고 있다. 첨단 공정의 경우 ASML의 EUV가 대표적이다. EUV 노광 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ASML은 한 해에 40대 안팎의 장비를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TSMC 간에 초미세 파운드리 공정 경쟁이 벌어진 데 이어 SK하이닉스·인텔·마이크론 등 후발 주자들이 EUV 도입을 시도하면서 칩 제조사들은 적기에 장비를 수급하기 위해 무한 경쟁 중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고위 임원이 네덜란드에 있는 ASML 본사를 방문하는 것은 물론 장비 관련 실무진을 수시로 파견하며 ASML에 협조를 요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가운데 인텔은 최근 기술 설명회에서 ASML의 차세대 제품인 ‘하이 NA EUV’ 제품을 공급받겠다고 공식 선언하기도 했다.

반도체 회로를 깎아내는 ‘식각 공정’에서 강한 면모를 지닌 램리서치 또한 장비 공급 부족 현상 속에서 기록적인 2분기 실적을 거뒀다. 램리서치의 2분기 영업이익은 13억 1,600만 달러(약 1조 5,100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4%나 증가했다. 팀 아처 램리서치 CEO는 최근 열린 2분기 실적 설명회에서 “공정 복잡성 증가 등으로 하반기와 내년까지 강한 수요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8인치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장비 부족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8인치 파운드리 주문은 내년 말까지 가득 차 있지만 8인치 웨이퍼 장비를 만드는 업체가 희소해 증설을 하고 싶어도 추진조차 못하는 상황이 수 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IT 부품 핵심 제조 장비 시장에서의 공급 부족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열악한 장비 생태계에서 외국산 핵심 장비를 대체할 만한 기술을 찾기 어려워 문제 해결이 더욱 힘들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지금부터라도 장비 국산화 및 제조 현지화에 공을 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의 꾸준하고 전폭적인 소재·부품·장비 기업 지원 및 제도적 혜택으로 관련 생태계를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국가, 연구 단체 또는 국내 대기업이 책임감 있게 설비 내재화를 이끌어가는 사례가 없었다”며 “이런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극심한 공급 부족 상황에서도 해외 의존적인 형태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선진 기술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해령 기자 h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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