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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단독] "모가디슈 총성 속, 남북은 함께 태극기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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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가디슈' 속 남한 대사 실존인물

강신성 전 주소말리아 한국 대사 인터뷰

91년 소말리아 내전 때 남북 동반 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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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개봉하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 '모가디슈'. 1991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 내전 당시 남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함께 탈출한 실화가 모티브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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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디슈(소말리아 수도)에 있는 이탈리아 대사관 앞에서 북한 외교관들과 함께 죽을 힘을 다해 태극기를 흔들었어요. 북한 외교관 손에 태극기가 들려 있었으니…. 이념을 초월해서 함께 살아나가보겠다는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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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성(84) 전 주(駐) 소말리아대사. 2006년 촬영. 중앙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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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성(84) 전 주(駐) 소말리아대사는 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소말리아 탈출을 감행하던 30년 전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강 전 대사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총성이 빗발치는 모가디슈에 고립됐지만, 한국 대사관 직원과 가족들은 물론 북한 대사관 관계자들까지 함께 이끌고 탈출에 성공했다.

이념을 초월한 남북 대사의 동반 탈출기를 다룬 영화 ‘모가디슈’(7월 28일 개봉) 속에서 배우 김윤석이 연기한 ‘한신성 대사’의 실제 모델이 강 전 대사다. 200억 원대의 총제작비가 투입된 류승완 감독의 작품 모가디슈는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으며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는 등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 개봉 후 강 전 대사가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건 처음이다.

남북 대사의 소말리아 동반 탈출 사실은 1991년 1월 24일자 중앙일보 특종 보도 ‘소말리아서 꽃핀 동포애’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강 전 대사는 "중앙일보가 대서특필해준 덕분에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전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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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영화 '모가디슈'. 1991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전이 벌어지자 남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힘을 합쳐 함께 탈출한 실화가 모티브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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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1] 공항서 마주친 北 대사에 “우리 집에 가자”



1991년 1월 9일, 강 전 대사는 대사관 식구들을 이끌고 필사적으로 모가디슈 공항으로 향했다. 구조기를 타고 어떻게든 소말리아를 빠져나가기 위해서였다.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으로 모가디슈는 이미 쑥대밭이었다. 무장 괴한이 정부 건물, 대사관, 일반 주택을 가릴 것 없이 약탈하고 거리엔 총성이 빗발쳤다. 통신도 먹통이라 서울로 직접 연락할 방도도 없었다.

강 전 대사는 이날 공항에서 김용수 주소말리아 북한 대사와 북한 대사관 사람들을 마주쳤다. 영화 속에서 배우 허준호가 연기한 림용수 역의 실존 인물이 김용수 대사였다.

강 전 대사는 그에게 한국 측이 타려던 구조기에 함께 타자고 제안도 했지만, 기다리던 구조기는 혼란한 상황 속에 다른 나라 난민들만 태우고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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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소말리아 외교부가 강신성 전 대사에게 발급했던 외교관 신분증 사진. 강신성 전 대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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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허탕을 치고 나서 우리 관저로 돌아가려다 가만히 생각하니까, 북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려나 궁금하더라고요. 물어봤더니 자기들은 공관에 못 돌아간대요. 무장강도가 벌써 8번이나 들이닥쳐서 죄다 뺏어갔다는 거예요. 돌아가봤자 죽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그럴 바에야 공항에 남아서 무작정 구조기를 기다리겠다는 생각이더라고요.”

하지만 당시 모가디슈 공항은 정부군과 반군이 서로 선점하기 위해 무력 충돌을 불사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가 “공항에 있다간 위험해질 수 있다”고 북측을 설득한 이유다.

내가 먼저 ‘우리 집(한국 대사관저)에 가자. 경찰 여섯 명이 지켜주고 있어서 안전하다’며 데려왔어요.

강 전 대사는 남북이 함께 모여 먹었던 첫날 식사도 떠올렸다.

“북한 사람들이 우리 관저로 오면서 자기들 공관 마당에 묻어놓았던 쌀, 채소 같은 부식을 다 들고 왔더라고요. ‘이걸로 한 끼 같이 먹자’면서. 그걸로 같이 저녁밥을 지어 먹었죠.”

당시는 남북이 각기 유엔에 가입하기 위해 아프리카를 무대로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던 시기. ‘북측 인원을 거두는 게 두렵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그런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며 “그냥 두면 죽지 않나. 어떻게든 함께 탈출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말했다.



[SCENE#2] 이탈리아 대사 만나 “죽으나 사나 같이 나가겠다”



한 식구가 된 남북은 머리를 맞댔다. 한국 측은 모가디슈에 있는 이탈리아 대사관에, 북측은 이집트 대사관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각자 수교한 국가 대사관 문을 두드리기로 한 것이다.

이집트 대사관 측은 본국의 카이로 주재 북한 대사관과 한국 총영사관에 이들의 안부를 확인하는 전문은 보내줬지만, 구조기는 협조해주지 못했다. 대신 이탈리아 대사관 측은 ‘이틀 뒤 군용기가 올 예정이니 한국 측 공관원 7~8명만 먼저 타고 빠져나가라’는 답을 줬다. 이에 강 대사는 다시 간청했다.

“이탈리아 대사한테 ‘어떻게 내가 북한 대사관 사람들을 다 데려다 놓고 우리만 쏙 빠져나가냐. 그럴 수 없다’고 했어요. 죽으나 사나 같이 나가겠다고…. 안 되면 우리는 공관에 돌아가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추가로 비행기를 확보해줬어요.

다만 강 전 대사는 영화 ‘모가디슈’에서 나온 것처럼 당시 함께 탈출하기 위해 북측 인사들에 전향을 권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대사관 측에도 이들의 전향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소말리아 탈출 뒤에도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ㆍ현 국가정보원)가 북측 공관원의 전향을 시도한 적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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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가디슈' 포스터.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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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3] 총성 속에서 남북 함께 흔든 ‘태극기’



이탈리아의 약속을 받아낸 뒤 다음 미션은 구조기를 타기 전까지 피신하기 위해 이탈리아 대사관까지 이동하는 것이었다.

강 전 대사는 공관으로 돌아와 남북 사람들을 6대 승용차에 나눠 태웠다. 차로 10분 거리였지만, 시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급기야 남북 공관원이 탄 차량 행렬을 반군으로 오인한 정부군이 집중 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운전을 하던 북측 직원 한 명이 가슴에 총을 맞았다. 하지만 그는 피를 흘리면서도 운전대를 놓지 않고 대사관까지 차를 몰았고, 도착 직후 숨을 거뒀다. 영화 속에서도 해당 장면이 그대로 재연됐다.

하지만 이탈리아 대사관이 처음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이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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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가디슈' 속 시내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모습.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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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력을 다해 이탈리아 대사관 앞까지 갔는데 경비원들이 쉽사리 문을 열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차에서 내려서 필사적으로 태극기를 흔들었죠. 북한 외교관들도 같이 태극기를 흔들었어요. 북한 사람 손에 태극기가 들린 거에요. 이념을 초월해서 서로 살아나가자는 것이죠.

숨진 북한 직원은 이탈리아 대사관저 화단에 묻었다. 강 전 대사는 북측이 이탈리아에 있는 식량농업기구(FAO) 북한 대표부를 통해 평양에 보고할 수 있도록 직접 전문 작성을 도왔다고 한다.



[SCENE#4] 극적인 탈출…공항서 ‘기약 없는 인사’



구조기가 오는 당일, 이탈리아 시민과 남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공항으로 이동하는 동안 정부군과 반군이 교전을 벌이지 않도록 이탈리아 대사관 측은 소말리아 정부를 상대로 사전에 조치를 취했다. 강 전 대사는 북측 여성 2명과 아이 4명은 특별히 일반 차량이 아닌 방탄 차량을 탈 수 있도록 부탁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항에 도착했더니 갑자기 100명도 넘어 보이는 소말리아인들이 탑승 허가도 없이 무작정 구조기를 타겠다고 뛰어오는 거예요. 나를 비롯해서 일반 차량에 탔던 사람들은 막판까지 인파에 휩쓸려서 넘어지고…그나마 방탄차에 탄 사람들은 무사히 탈 수 있었죠.”

우여곡절 끝에 남북한 공관원들을 실은 구조기는 모가디슈 공항에서 이륙, 2시간여만에 케냐 몸바사 공항에 도착했다. 짧고도 길었던 3박 4일 동안 사선을 함께 넘나든 기억을 뒤로하고 남남이 돼야 하는 순간이었다.

“케냐에 도착하자마자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북한 대사가 내게 왔어요. ‘그간 너무나 고마웠다’면서 ‘이제 여기서 헤어지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강 대사는 케냐에 숙소도 준비해뒀으니 “같이 가자”고 제안했지만 북측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때 알아차렸어요. 이들이 소말리아를 떠나서도 한국에 신세를 지면 평양에 돌아가서 아주 혼이 나겠구나. 그래서 나도 뜻대로 하라고 말하고 작별인사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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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성 전 대사가 소말리아 재임 당시 직접 촬영한 수도 모가디슈의 시장 모습. 강신성 전 대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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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5]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강 전 대사는 남북한이 함께 먹고 잤던 3박 4일 내내 갈등 없이 시종일관 화목했다고 기억했다. 또 케냐에서 갑작스레 헤어진 뒤로도 북한 인사들이 무탈할지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소말리아에서 북한이 한국에 신세 진 부분만 부각되면, 혹시라도 평양에서 곤욕을 치를까봐, 나중에 언론에도 ‘남북 공동 탈출’로 써달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올해 84세인 강 전 대사는 당시 소말리아에서 손을 맞잡았던 북한 사람들을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고 했다.

“남북 관계가 좋아서 왕래가 허가됐으면, 벌써 평양 가서 찾아봤을 거예요.”

강 전 대사는 소말리아 대사를 거친 뒤 재외국민영사국장, 주칠레 대사, 주호놀룰루 총영사 등을 지냈다. 1997년 퇴직 후 남북 대사 동반 탈출기를 그린 장편 소설 ‘탈출’을 펴내기도 했다.

(※ 강 전 대사는 영화에서 각색된 부분에 대한 아쉬움도 표했다. 영화에선 북측이 한국 측에게 먼저 도움을 청했다가 한동안 거절 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도움의 손길을 먼저 내민 건 한국 측이라는 설명이다. 강 전 대사는 "내가 먼저 공항에서 북한 사람들에게 집에 같이 가자며 데리고 왔는데, 영화 속의 한국 대사는 관저 앞에 찾아온 북한 대사에게 '저리 가라'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또 영화 속 이탈리아 대사관 앞에서 남북 공관원이 함께 백기를 흔드는 장면 관련, 실제론 흔든 건 태극기였다고 강조했다. 또 영화에 나온 것처럼 북측 공관원의 전향서를 위조하는 등 북측의 전향을 요구한 바도 없으며, 3박 4일을 함께 지내며 사상 문제로 충돌한 적도 없다고 바로잡았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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