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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문 정부 부동산, 양궁을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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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그들은 요란하지 않지만, 누구보다 빛난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오직 결과로 말한다. 올림픽 9연패를 달성한 여자 양궁 대표팀이 지난달 25일 시상대에 서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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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에 나선 한국 양궁은 명불허전이었다. 신설된 혼성단체전에서 신예들이 첫 금메달을 따낸 것도, 남자 단체팀의 2연패와 안산 선수의 3관왕 신화도 놀랍지만 압권은 무려 9연패 위업을 달성한 여자 단체팀이다. 장장 33년간 세계 정상을 지키면서 흘렸을 피와 땀을 생각하면 절로 경외감이 든다.

대한민국의 궁사들은 절대 요란하지 않다. 10점을 쏘고 돌아서도 그저 씨익 웃을 뿐이다. 막내 김제덕의 파이팅 고함이 오히려 화제다. 우승의 순간에도, 인터뷰에서도 양궁팀의 말은 늘 차분하고 낮다. 대신 훈련은 누구보다 치열하고 꾸준하다. 압도적인 존재감은 오직 결과로 드러낸다.

지난해 7월 31일 시행된 개정 임대차보호법이 1년째를 맞았다. ‘세입자 주거 안정’이라는 애초 법 개정 목적은 무색해졌다. KB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지난 1년간 1억3,562만 원이나 올랐다. 3억 원에서 4억 원까지 2년 1개월, 4억 원에서 5억 원까지 4년 5개월이 걸렸던 평균 전셋값의 상승 속도가 5억 원에서 6억 원 사이는 불과 8개월로 단축됐다. 한국일보가 취재한 공인중개사들은 폭등한 전셋값을 감당 못 해 서울에서 경기도로 밀려 나는 서민의 고통을, 제도의 허점을 틈타 꼼수가 판치는 전세시장의 혼탁함을 신랄하게 증언했다.

열 오른 국민을 더 화나게 하는 건 이런 제도를 주도했던 여당과 정부의 몰염치 행태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권익위원회가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한 12명의 의원에게 탈당을 권고했지만 결국 유야무야될 처지다. 비례대표 2명을 출당시켰을 뿐, 10명의 의원은 갖은 이유로 당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헛발질만 계속 한다. 임대차법 개정 초기에는 “몇 개월 있으면 안정을 찾을 것”(지난해 9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라고 공수표를 날리더니, 더 이상 안정을 주장하기 어려워지자 이제는 “집값이 크게 내릴 수 있으니 추격 매수를 자제하라”(7월 28일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공염불로 메뉴를 바꾸었다.

부동산 시장 안정이 정부가 목표로 하는 금메달이라면 양궁팀을 봤으면 한다. 올림픽 경기장에 태풍급 바람이 불어도, 그들은 정부처럼 “초저금리 환경”을 핑계 대지 않았다. 외부 충격은 예상하고 대비해야 하는 것이어서다. “9연패, 10연패, 영원히 금메달” 같은 허튼 공약도 하지 않는다.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 “집값 상승세가 안정되고 있다” “더 강력한 대책도 주머니에 있다”는 식으로 말부터 앞섰던 정부와는 달랐다.

대신 그들은 치밀하게 준비했다. 시끄러운 야구장 관중 앞에서도 활을 쏘고, 도쿄올림픽 경기장과 똑같은 모형 경기장도 만들어 연습했다. 익숙한 ‘우리 편’보다, 그해에 가장 잘할 선수를 끊임없이 골랐다. 그리고 누구도 부인 못할 결과로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죄다 허튼 꿈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실수요자를 보호하고 투기를 엄단하겠다 했으면 그에 맞는 준비와 실력부터 갖췄어야 했다. 초저금리라 안 되고, 투기세력이 문제이고, 과열심리가 가로막는다고 둘러대 봐야 망가진 민생이 위로되지 않는다. 오로지 목표한 과녁을 뚫기 위해, 시종 겸허한 자세로, 누구보다 치밀하게 준비했을 대한민국 양궁팀을 배웠으면 한다.

김용식 경제산업부장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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