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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현장에서]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이유, 오리무중 빠뜨린 희한한 고용부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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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 마련된 숨진 청소노동자를 추모하는 공간 앞에 노동자들의 청소도구가 놓여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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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지난달 26일 발생한 서울대 청소근로자 사망과 관련한 조사 결과를 30일 발표했다. 결론은 '직장 내 괴롭힘이 있다'이다. 이를 두고 짜깁기 조사, 꼰대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정한 이유가 희한해서다.

고용부는 15일부터 28일까지 유족과 행위자, 일부 근로자를 대상으로 대면조사를 실시하고, 근로자 전원에 대해 설문조사를 병행했다.



"서울대, 직장 내 괴롭힘 있었다…엄정 대처"



고용부는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을 확인하고 서울대 측에 조사결과를 통보했다. 개선하도록 지도했으며, 이행하지 않으면 근로감독 대상에 포함하는 등 엄중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부가 이처럼 강력한 경고를 하고 나선 것을 보면 중대한 위법행위가 있었던 듯하다.

한데 조사 결과서를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고용부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필기시험과 그 성적을 근무평정에 반영하는 문제, 복장 점검과 품평 문제 등 두 가지 사안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봤다.



"필기시험 미리 안 알려, 복장 관련 복무규정 없어…괴롭힘 해당"



우선 필기시험과 근무평정 반영 사안과 관련, 고용부는 "시험에 앞서 (학부모 응대에 필요한) 사전 교육이 없고, 필기시험에 대한 공지를 선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고용부의 판정 이유를 뒤집어 해석하면 학부모 응대에 필요한 소양 교육을 실시하고, '시험을 칩니다'라고 미리 알렸다면 괴롭힘이 아니라는 얘기다.

복장 문제에 대해서도 고용부는 "복무규정 등의 근거가 없이 회의 참석 복장에 간섭하고 품평한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주장했다. 복무규정에 복장 규정을 마련해놓지 않아서 생긴 괴롭힘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복무규정을 다듬으면 괴롭힘 판정을 안 받게 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규정을 만들고 미리 알리면 괴롭힘 아니라는 의미?



결론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정한 두 사안에 대해 규정의 미비를 꼬집고, 규정을 만들라고 권하는 내용과 다를 바 없다.

직장 내 괴롭힘은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다. 간호사의 '태움(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괴롭힘)과 같은 비윤리적 행위여서다. 한데 고용부는 직장 내부 규정 미비를 지적하면서 '그게 없으니 직장 내 괴롭힘이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렸다. 규정 미비가 윤리적 지탄을 받을 대상인지 의문이다. 이는 노사관계나 인사제도 컨설팅의 문제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숨진 노동자 왜 숨졌는지 알 수 없게 만든 조사결과…근로실태 점검 내용도 없어



무엇보다 고용부의 조사 결과로는 사망한 서울대 청소근로자가 어떤 모욕감을 느꼈는지, 왜 사망에 이르게 됐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인사 운용상의 문제로 흘렸다. 청소근로자의 휴게 공간, 휴식 시간과 같은 근로조건 실태에 대한 내용도 없다. '짜깁기 조사' '면피형 결론' '꼰대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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