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헤럴드광장] 코리안 패러독스, 김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인의 역설’이라는 뜻으로, 프랑스인들은 미국인이나 영국인들 못지않게 육류를 비롯한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들을 주로 섭취하는데도 심장병 발생률과 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현상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프랑스인들이 평소 레드와인을 자주 마시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드와인의 주재료인 포도에 함유된 레스베라트롤 등 기능성 성분이 인체 내 항산화 작용을 통해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때 미국에서는 없어서 못 팔 정도의 인기를 얻으며 레드와인 판매량이 크게 늘어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코리안 패러독스(Korean paradox)’로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김치’를 떠올릴 수 있다. TV를 켜면 간혹 김치에 나트륨이 많아서 심혈관계 질환 등 성인병을 유발한다는 내용을 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나트륨 함량이라는 김치의 일면만을 본 것으로, 특정 성분의 절대 함량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영양 성분의 구성’이다. 나트륨은 우리 몸 안에서 칼륨과 상호작용하며, 나트륨과 칼륨의 비율이 1에 가까울수록 나트륨 배설이 촉진된다. 김치의 나트륨과 칼륨 비율은 2.4 정도로, 나트륨과 칼륨 비율이 4.4인 햄이나 13.8인 치즈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즉 김치 속 풍부한 칼륨이 나트륨의 배출을 촉진시켜 나트륨이 체내에 남지 않도록 해준다. 게다가 김치에는 식이섬유, 비타민C, 유산균 등 다양한 기능성 성분도 들어 있어 각종 성인병을 방지할 수 있다.

실제 세계김치연구소는 8주 동안 염(鹽)민감성 쥐에게 잘 숙성된 ‘김치’와 김치 속 나트륨과 동일한 함량의 ‘소금’을 각각 먹인 후 혈압을 비교한 결과, ‘김치 섭취 쥐’의 혈압 수치가 ‘나트륨 섭취 쥐’의 약 19% 수준으로 나타나, 잘 숙성된 김치가 혈압 증가를 억제시킨 것으로 확인했다. 이는 김치 안에서 칼륨이 나트륨을 배출시켰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되며, 즉 같은 양의 나트륨을 섭취하더라도 어떤 식품으로 섭취하느냐가 혈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김치는 건강한 식품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세계인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프랑스 몽펠리에대학 장 부스케 교수 연구진은 코로나19 사망자 수와 국가별 식생활 차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과 독일의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적은 이유로 김치나 사워크라우트와 같은 발효채소를 즐겨 먹는 식문화를 꼽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 세포막에 있는 효소인 ACE2와 결합해 세포 속으로 침투하는데, 김치에 포함된 다양한 기능성 성분이 코로나바이러스가 ACE2와 결합하는 것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발표된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82.7년으로, OECD 국가 평균(80.7년)보다 높았으며, 주요 질환 사망률은 역시 대체로 OECD 평균보다 낮았다. 최근 벌어진 중국발 ‘김치공정’ 역시 한편으론 중국도 우리 김치의 가치와 우수성을 인정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따라서 김치의 효능을 더 과학적으로 입증해 제대로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세계인 모두가 레드와인처럼 김치를 즐기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윤예랑 세계김치연구소 박사

nbgkoo@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All Rights Reserved.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