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中 흥행 예약 애국주의 영화 '장진호', 한국전쟁 역사왜곡 논란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철저하게 중국 시각에서 그린 왜곡된 '항미원조' 영화

뉴스1

영화 ‘장진호’ 포스터(바이두 갈무리). © 뉴스1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개봉을 앞둔 중국에서 제작한 한국전쟁 영화 '장진호'가 중국에서 관심과 기대감이 높아져 부진한 극장가의 여름 시즌을 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영화 관측통들을 인용해 '장진호'가 액션 영화 '전랑 2'의 역대 1위 흥행 기록을 깰 가능성이 있다고 27일 보도했다.

지난 26일 13억위안(약 2306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장진호'가 내달 12일 중국 본토에서 개봉될 것이라는 발표가 나온 직후 중국판 트위터인 시나 웨이보에서는 관련 해시태그가 순식간에 2억7000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베이징에서 활동 중인 영화평론가 시원쉐는 "영화 시장에서 중국 영화가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고 출연진과 제작진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높아 올여름 중국 영화팬들 사이에서 뜨거운 상품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중국의 유명한 영화제작자 천카이지, 쉬커, 린차오셴 등 3명이 공동 감독을 맡았다. 또한 '전랑 2'의 주연 배우 우징과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소년 시절의 너'(Better Days)의 주인공 이양첸시도 출연한다.

영화평론가 샤오푸추는 "천카이지, 쉬커, 린차오셴 등 세 감독의 협력은 중국 영화 역사상 유례가 없다"고 말했다.

뉴스1

1950년 장진호철수작전 모습(국가기록원 제공). ©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제 한국전쟁 영화인 '장진호'는 객관적인 역사와 평가를 왜곡한 영화라는 문제점이 있어 논쟁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인천상륙작전 뒤 두만강 앞까지 북진했던 미 제10군단 예하 미 제1해병사단이 1950년 11월 장진호 북쪽으로 진출하던 중 당시 중공군 제9병단 예하 7개 사단과 충돌해 2주간에 전개한 철수작전을 일컫는다.

미 제1해병사단은 가혹한 겨울 날씨 속에서 중공군의 강력한 포위망을 돌파하여 함흥지역으로 철수하는 데 성공한다.

미군은 4000여명의 병력이 희생되며 큰 피해를 본 전투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동시에 중공군에도 상당한 전투적 비전투적 손실을 입혔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당시 미군의 공중 폭격과 지상 전투로 인한 중공군의 인명피해는 미군의 10배인 4만명이 넘었다.

결국, 장진호 철수작전의 성공으로 중공군 제9병단이 서부전선의 제13병단을 증원할 수 있는 역량을 소멸시켜 서부전선의 미 제8군이 위기를 모면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10만 명이 넘는 피난민을 구해낸 '흥남철수작전'의 성공도 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뉴스1

1919년 9월 2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제4회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식'에서 장진호 전투 중 중공군 총에 맞아 한쪽 팔과 다리를 잃은 헨리 쉐이퍼(Henry Schafer, 88)씨가 미국 국가 연주에 맞춰 '의수 경례'를 하고 있다. 2019.9.27/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장진호'는 철저하게 중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한국전쟁을 그려낸다. 미국의 침략에 저항하기 위한 중국 군인들의 희생과 영웅심이 이 영화의 주제다. 즉 중국 인민의용군 출신 용맹한 군인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군을 후퇴로 몰아넣었는지에 대한 메시지 전달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중국 지도부가 한국전쟁을 근본적으로 북한을 도와 침략군인 미군을 물리친 이른바 '항미원조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잘못된 역사 인식이다. 당시 중공은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부터 한국을 구하기 위한 국제연합(유엔)에 대항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장진호 전투를 미군을 후퇴시켜 승리한 전투로 평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북한의 선제공격에 대한 인천상륙작전이라는 반격을 통해 얻어낸 북진통일의 기회를 날려버린 결정적인 전투다.

이로 인해 인해전술을 앞세운 중공군의 남하로 인해 1·4후퇴가 이어지고 한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을 다시 빼앗겼다가 재탈환하는 등 휴전선 부근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인명이 희생됐음은 물론이다.

글로벌타임스가 이 기사를 낸 7월 27일은 한국전쟁 정전협정일이다. 이 정전협정은 국제 연합군 총사령관과 북한군 최고 사령관 및 중공 인민 지원군 사령원 사이에 체결됐다.

한국 측은 정전협정이 국토분단을 고착화한다는 이유로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다.
acenes@news1.kr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