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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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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해임 다음날 야간통금령···튀니지 '로보캅' 대통령 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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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란, 코로나에 민심 악화

총리 경질에 야간통금령 발령

의회 정지 이어 연일 초강수

美, '민주화 위기' 공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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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의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이 총리를 해임하고 의회 활동을 정지시킨 데 이어 야간 통금령까지 발동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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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중동 지역을 휩쓴 민주화 운동 ‘아랍의 봄’의 발원지 튀니지가 혼란스럽다. 카이스 사이에드(63) 대통령이 곳곳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에 대응해 초강경 조치를 이어가면서다. 그는 총리를 쫓아내고 의회 기능을 정지시킨 데 이어 야간 통금령까지 내렸다. 외신들은 10년 전 아랍의 봄 혁명의 유일한 성공 사례로 칭송받던 튀니지가 중대한 민주적 도전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26일(현지시간) AF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사이에드 대통령은 이날부터 한 달 동안 야간 통행을 금지했다. 오후 7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이동이 제한되고 3인 이상 집회도 금지됐다. 히셈 메시시(47) 총리를 해임하고 의회의 활동을 30일간 정지하겠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에 내린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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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드 대통령 지지자들이 25일 튀니스에서 대통령의 의회 정지 결정에 찬성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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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드 대통령의 이같은 결정은, 극심한 경제난과 코로나19 부실 대응을 문제 삼은 시위가 격화하면서 나왔다. 시민들은 치솟는 실업률 등 경제 불안을 이유로 정부와 제1당인 엔나흐다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뉴욕타임스(NYT)는 “특히 코로나19 부실 대처가 국민의 오랜 불만을 터뜨린 피뢰침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튀니지는 아프리카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어 코로나19 상황이 가장 심각한 상태다. 인구의 7%만이 백신을 접종한 반면, 중환자 병실은 90%가 찼다.

시민들의 분노는 의회 최대 정당인 엔나흐다와 그 소속인 총리를 향했고, 이에 사이에드 대통령이 강수를 둔 것이라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는 동시에 총리와의 권력 싸움에도 이용하는 전략이란 것이다. 튀니지는 대통령에게 외교·국방권을, 총리에게 행정 등 그 외 권한을 주는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무소속 출신으로 의회에 비해 영향력이 적은 사이에드 대통령은 더 많은 권한을 원했다”며 “이는 지난 1년 동안 총리와 엔나흐다의 지도자와의 대립을 야기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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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임된 히셈 메시시 튀니지 전 총리. 제1당인 엔나흐다 소속인 그는 사이에드 대통령과 국정 운영을 놓고 대립해 왔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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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드 대통령의 행보에 국제 사회는 우려를 표명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사이에드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모든 정계 인사를 비롯해 국민과 대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럽연합(EU)도 “법의 지배를 존중하고 폭력을 피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헌법학 교수 출신인 사이에드 대통령은 법에 따른 정당한 행동을 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튀니지 헌법 80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임박한 위험’이 발생하면 예외적 조치를 발동할 수 있다. 그는 국민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에서 이같이 주장하며 “국민도 자제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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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학 교수 출신인 사이에드 대통령은 2019년 정치권 아웃사이더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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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드 대통령은 학자 출신으로 정치 경험이 없는 아웃사이더로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다. 약 20년 동안 튀니스대 등에서 헌법을 가르친 그는 지난 2019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아랍의 봄’을 계기로 TV 등에 헌법 전문가로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았는데, 직선적인 말투로 ‘로보캅’이란 별명을 얻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특히 기성 정치권의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낀 청년층의 큰 지지를 받았다. 선거 당시 상대 후보가 탈세 등 혐의로 수감되자 혼자 유세를 하는 건 불공정하다며 대선 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당선 뒤 튀니지의 오랜 정치·경제적 문제를 수습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NYT는 “많은 국민은 그가 부패하지 않은 정치 아웃사이더로서 상황을 반전시키길 바랐다”며 “하지만 대중의 불만을 권력 장악으로 몰고간 그가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를 어떻게 충족시킬지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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