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원망하겠나" 망연자실…문닫거나 영업일 줄이기도
수도권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된 12일 저녁 서울 중구 을지로 노가리 골목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1.7.12/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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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전멸이죠 뭐"
서울의 한낮 기온이 36.5도까지 오른 24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골뱅이 골목의 한 술집 사장 이모씨(60)는 이렇게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때만 해도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매출이 60~70%는 나왔습니다. 빚 안 지고 생활할 수 있을 정도는 됐죠. 그런데 지금은 그 때보다도 70%는 줄었어요. 문 안 여는 게 나은 수준이지만 집에 있기엔 마음이 좋지 않아 나와 있는 겁니다."
이씨는 "을지로는 그래도 명동이나 종로 등 다른 상권보다 오히려 나은 편"이라며 "다른 곳은 아예 문을 닫은 곳이 많은데 여기는 그래도 오다가다 2명 단위 손님이라도 온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8일째 1000명 이상을 기록한 24일. 전날 정부는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를 다음달 8일까지 2주 더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1년 넘게 코로나19 위기에서 사투를 벌여 온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올 초만 해도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밤 12시까지 영업하게 해달라' '왜 정부는 애꿎은 자영업자만 잡나' '지원책을 늘려달라' 등 분노를 드러내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러나 이날 <뉴스1>이 만난 업주들은 분노보단 망연자실하는 분위기다.
한창 붐벼야 할 주말 오후 6시.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코로나19 이전 주말이면 하루 3000명의 시민들로 붐볐던 골목에는 이날 상인들만 서성이고 있었다.
데이트를 하는 커플들, 친구와 함께 나온 2030대 젊은층이 간간히 눈에 띄긴 했지만 모두 합해 100여명 규모에 그쳤다.
노가리집을 운영하는 A씨(74)는 '거리두기 4단계' 연장 이후 매출이 어떠하냐고 묻자 "게임 끝났죠. 말해 뭐합니까"라고 한숨부터 쉬었다.
손님을 기다리며 가게 앞에 서 있던 그는 "우리 집은 상황이 나은 편이라 손님이 5 테이블 있다. 옆집과 옆옆집은 4단계까지 아예 문을 닫았다"고 했다. 골목 내 노가리 술집 2곳은 영업 중인데도 주인만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지난 15일 서울의 한 식당 출입문에 원재료 수급 문제와 오후 6시 이후 3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 시행이 겹쳐 영업을 잠시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1.7.15/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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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처럼 술집을 운영하는 업주들이 이번 4단계 조치로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오후 6시 이후로는 2명까지(3인이상 모임금지)만 모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회식으로 여러명이서 와야하는 곳인데 오후 6시 이후 2명까지면 누가 오겠나"고 했다. 그러면서도 "누굴 원망하겠나. 온 세상이 이런 걸. 빨리 코로나19가 끝났으면 좋겠는데 솔직히 언제까지 계속될지 잘 모르겠다"며 멀리 허공을 바라봤다.
반면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젊은층이 많이 찾는 '힙지로' 메인 골목은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30도가 넘는 푹푹 찌는 날씨에도 유명 일식집, 순대국밥집, 퓨전 펍 등은 영업시간 전부터 10명 남짓의 대기 손님이 줄을 섰다.
지나가는 중년 남성 2명이 "젊은 애들 백신도 안 맞았는데 위험하게"라고 혀를 차며 지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메인 골목 안쪽으로 들어오자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평일에도 대기하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던 유명 맛집, 술집들은 전체 매장의 70% 정도만 차 있었고, 문을 당분간 닫는다고 써붙인 곳도 있었다.
24일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카페. 문 앞에 당분간 영업을 쉰다고 적혀 있다. © 뉴스1/한상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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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대기자 명단을 받던 을지로 곱창전골집은 손님이 1테이블에 그쳤고, 또 다른 와인바 직원 B씨(30대 후반)는 "저희는 원래 일요일만 쉬다가 이번 달부터 목금토만 영업한다"고 했다.
꼬치구이집 점장 C씨(30대 중반)는 이런 상황이 "그냥 허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출은 잘 나올 때가 (4단계가 되기 전에 비해) 50%, 심하면 10%일 때도 있다"며 "왜 앉아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이 든 적도 있다. 사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익이 나야하는데 계속 마이너스라 죄송스럽기도 하다"는 심경을 전했다.
이 골목 대창집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사장 이모씨(40대)는 거리두기란 단어를 꺼내자 마자 "말도 못하죠"라고 운을 뗐다. "이쪽 식당들은 다 저녁 장사하는 곳인데 오후 6시 이후 3명 이상 못 모이면 누가 오겠나"며 "4단계 되고 나서 재택근무가 확대되고 손님이 더 줄었다"고 호소했다.
부대찌개집 사장 D씨는 전기세도 안 나올 것 같아 당분간 영업일을 줄이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그는 "더워도 너무 더운 날씨"라며 "코로나19 4단계 연장에 폭염까지 날씨도 안 도와준다. 찌개 메뉴라 더우면 손님들이 잘 안 찾아 홀 장사는 물론 배달도 확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원래 영업시간이 오후 9시까지인데 어제는 오후 4시까지 하고 손님이 없어 문을 닫았다"며 "주말 매출이 오히려 평일보다도 못해 혼자서 멀뚱하게 가만히 있으니 스트레스만 쌓여가는 것 같다"는 심경을 전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시행으로 매출에 타격이 불가피하자 정부의 방역조처에 반발하는 자영업자들의 움직임도 있다. 전날 전국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김두관 의원과 간담회를 갖고 거리두기 4단계 연장에 따른 고충을 전달했다.
무한리필 고깃집을 운영하는 E씨는 그러나 "대유행을 겪으면서 최악을 넘겼으니 이제 더 최악은 없을 거란 생각에 버텼는데, 진짜 있네요. 바닥 밑에 지하실이"라며 더는 기대감이 없다고 했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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