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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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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몇 년 전, 나에게 무례했던 누군가를 모욕죄로 고소한 일이 있다. 그 시작은 골목길에서 난 사소한 교통사고부터였다. 주차된 차의 뒷문이 갑자기 열렸고 나는 그것을 피할 수 없었다. 곧 어느 40대 남성이 괴성을 지르며 나에게 달려왔다. 차에서 막 내린 나는 그가 나에게 삿대질을 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한동안 나에게 욕을 하고, 여기저기 전화해서 화를 내다가, 나에게 다가와 무언가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 소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뒤차에서 내린 어르신이 “그만해요, 이거 당신이 잘못한 거예요”하고 말하자 그는 네가 뭘 아느냐며 더 흥분해서 욕을 해댔다.

경향신문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서울 역세권에서 벌어진 교통사고였는데도 보험회사 직원이 오는 데는 30분이 걸렸다. 그동안 나는 그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내야 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보험회사 직원은 꼼꼼하게 상황을 살피고는 그와 적당한 거리를 둔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러고는 “개문사고의 과실은 8 대 1, 혹은 9 대 1 정도로 상대방에게 있습니다. 너무 명확한 사고라서 CCTV를 굳이 안 봐도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이후 나는 그 가해자를 고소했다. 생전 처음해 보는 일이었으나, 그런 모욕을 당하고 가만히 있기가 억울했던 것이다. 그에 더해, 우리 사회는 이러한 모욕에 대해 어느 만큼의 비용을 물릴 것인가도 궁금했다. 경찰서에서는 1) 여러 사람이 그 현장에 있었어야 하고, 2) 그가 나를 특정해서 모욕했어야 하고, 3) 그로 인해 내가 수치심을 느꼈다면 공연모욕죄가 성립한다고 했다. 나는 그 소란을 지켜보던 두 사람을 찾아가 진술서를 받아서 관할 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타인을 고소한 이 지난한 이야기는 얼마 전 나온 신간 단행본에 써 두었다. 이 책을 읽은 사람에게 인상적인 말을 들어, 기록해 두고 싶다. 그는 나에게 “근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요. 그 사람이 변했을 것 같아요? 사람은 안 변해요. 괜히 자기만 소진한 거예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네, 저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어요”하고 답해 주었다. 그는 나에게 그러면 왜 그렇게 한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래서 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꼭 말해 주고 싶었어요. 타인에게 그런 무례를 저질러서는 안 되고 그러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요”하고 다시 답했다.

나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한 사람이 일생을 거쳐 구축해낸 한 세계를 움직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나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누구나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그 개인을 둘러싼 환경을 변화시킬 수는 있다. 그 가해자는 이제 누군가에게 무례하게 대하기 이전에 조금은 더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착한 사람으로 변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착한 사람 코스프레’라도 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를 다시 만날 확률은 거의 없겠지만 이것은 그와 만나야 할 나와 닮은 사람을 지키는 일이다.

나는 나의 몇 개월을 소진해 나에게 무례했던 그를 고소했다. 누가 보기에는 그러한 소진이 무가치한 일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더 이런 일에 스스로를 소진시켜야 한다. 나는 오히려 한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무척이나 덧없다고 믿는다. 그 이후에 남는 것은 의미 없는 소진, 혐오와 분노, 단절과 같은 단어뿐이다. 그러나 사람을 변하게 하는 일보다는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의 문화와 제도와 언어를 바꾸는 일이 훨씬 쉽다. 우리는 개인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더욱 집중해야 한다.

그 가해자는 벌금 80만원을 냈다. 우리 사회가 그에게 매긴 모욕의 비용은 그만큼이었다. 이것이 많은지 적은지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다만 그가 다음에는 나와 같은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를, 그래서 조금은 더 좋은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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