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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고요한 마음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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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코로나19 거리두기의 답답함
고요하게 마음 바라볼 기회
꼬리에 꼬리 무는 생각에서
번뇌를 끊고 나를 비우다 보면
‘진공묘유’의 안목이 갖춰질 것

‘코로나19 방역 4단계로 인하여 취소합니다.’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여름 내내 바쁘게 지낼 뻔했다. 사람들이 마음을 쉴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에 또다시 준비하고 조금은 무리하게 일정을 마련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웠다 해도 지금은 모두의 안녕을 위하여 멈추어야 한다. 그 덕분에 고요한 시간이 늘었다.

경향신문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예년에 비해 이번 여름은 ‘열돔현상’ 등으로 숨이 막힐 만큼 무덥다고 한다. 인연 닿는 분들에게 부채를 선물해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일어, 내친김에 오래전부터 거래해온 서울 인사동 사거리의 한 지업사에 부채를 주문했다. ‘진공묘유(眞空妙有), 고요한 마음에서 지혜가 나옵니다’라는, 부채에 쓸 글귀까지 일사천리로 정했다. 코로나19 거리 두기 4단계의 답답함을, 한 생각 돌려서 ‘다시 멈추고 고요하게 마음을 바라보는’ 좋은 기회로 삼아달라는 의미다.

생각을 고요히 하기 위해 요즘 유행하는 ‘멍 때리기’를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어떤 단체에서는 멍 때리는 대회를 한다고 하고, 심지어 어느 사찰에서는 멍 때리는 명상을 한다는 기사를 읽으며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수행 용어 가운데 무기(無記)라는 말이 있다. 일체의 자기 의지가 없는 멍한 생태를 이르는 말인데, 잠에서 덜 깨었거나 기절했을 때의 상태를 말한다. 마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이거나 술에 만취하여 소위 필름이 끊긴 상태도 여기에 포함된다. 일반적인 사람의 무기는 생각과 생각 사이에 찰나처럼 자리잡고 있다. 멍 때림을 즐기다 보면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되고, 이어 삶의 활력까지 완전히 잃게 되기 때문에 가장 좋지 않은 상태가 된다. 이는 귀한 밥 먹고 인생을 가장 허망하게 보내는 경우에 해당한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해 앉아 있으면 생각과 생각이 꼬리를 물고 찾아온다. 이것을 번뇌의 파생성이라 하는데, 한 생각에서 또 다른 생각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과거의 일을 떠올리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상상 또는 걱정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옛 어른들은 이를 ‘오만가지 생각을 다한다’고 표현하였고, 현대 뇌과학자들은 ‘한 사람이 하루에 4만7000가지의 생각을 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끊임없는 생각들은 분별의식에서 일어난다. 나와 나 아닌 것의 분별에서부터 시작하여 차별의식으로, 욕망으로 확대되면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초롱초롱하고 고요 고요해야 하니/ 망상이 초롱초롱해서는 안 되네/ 그 마음 고요 고요하고 초롱초롱해야 하니/ 멍청히 고요 고요해서는 안 되네

선가(禪家)에서는 깊은 선정에 들었을 때의 경지를 성성적적(惺惺寂寂)으로 표현한다. 과거의 생각과 미래의 생각과 지금 붙잡고 있는 집착들이 고요해지는 상태, 곧 번뇌가 끊어지는 수행과 나를 비우는 무아적 통찰이 이루어져야 윤회의 원인이 제거된다. 어두운 방에 불을 켜듯, 마음이 고요해질수록 사물이 명료해지고, 안락하고, 편안하고, 감사함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번뇌와 망상이 가득하면 고요할 틈이 없고, 지혜가 생겨날 틈이 없다. 선 수행을 하면서 허망한 욕망과 시기, 질투, 불신 다 떨어뜨리고, 그 속에 미세한 번뇌망상도 떨어지고, 유무(有無)의 분별도 떨어지고, 온갖 군더더기가 다 떨어지면 유와 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진공묘유의 안목이 갖춰지게 된다.

시간을 내어 휴대폰을 끄고, 두꺼운 방석이나 의자에 앉아 허리를 곧게 펴고, 호흡을 고요하게 조절하고 오롯하게 지금 호흡하고 생각하는 주체인 나에 대한 의문을 품어보자. 이때에 지적으로만 대상을 이해한 사람은 자칫 알음알이에 갇혀 융통성이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화학적 구조나 정보들로 소금의 성분을 분석할 수 있겠지만, 소금 맛은 직접 그것을 맛볼 때 알 수 있듯이.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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