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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혼돈의 가상화폐

[불량코인의 늪]"강남 땅과 비트코인은 마찬가지" 가상화폐 투자설명회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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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전문가 믿지 마라며…터무니없는 상품 설명 “16개월새 원금 3배 불려준다”

마스크 벗고 방역수칙 무시…노인·취준생 모아 홍보

아시아경제

13일 서울대입구역 인근 빌딩에서 진행된 가상화폐 투자설명회의 발표 자료. 투자업체 측 2명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다단계에 가까운 상품을 소개했다.


[아시아경제 공병선 기자] 서울대입구역 앞 한 빌딩에서 햇빛이 들지 않는 데 위치한 사무실, 코로나19 확산세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실시됐지만 노인들은 가상화폐 투자 설명을 듣기 위해 붙어 앉았다. 마스크를 벗은 남성은 능숙한 솜씨로 진행하며 노인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남성은 "사장님, 예전 강남 땅 생각해보세요. 평당 얼마 하지도 않던 게 얼마나 올랐습니까?"라며 "강남 땅과 비트코인은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했다. 직관적 비유에 노인들도 고개를 흔들며 연신"맞는 말"이라고 맞장구쳤다. 남성은 "언론, 전문가 절대 믿지 마세요. 저희만 믿으신다면 곧 강남 부자 될 수 있습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안의 신고 기한을 두 달 가까이 앞둔 가운데 실체를 알 수 없는 가상화폐 투자 혹은 불량코인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됐지만 방역수칙을 어기면서까지 사람들을 모아 불량코인을 홍보했다.

13일 A 가상화폐 투자업체는 서울대입구역 인근 사무실에서 노인 4명과 취업준비생을 가장한 기자를 대상으로 투자설명회를 진행했다. 현재 방역수칙 상 사적모임은 4인 이하, 방문판매업일 경우 8㎡당 한 명이 앉아있어야 할 정도로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만 사무실은 턱없이 좁았다. 노인 4명은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앉았고 투자업체 측은 마스크도 끼지 않은 채 큰 목소리로 상품을 소개했다.

상품 내용은 터무니 없었다. 원금을 16개월만 두면 3배로 불려준다는 내용이다. 근거는 구체적이지 못했다. 자동매매 프로그램을 통해 매일 10%씩 투자수익을 올린다고 하지만 시연은 없었다. 아울러 연내 거래소가 만들어진다면 투자가치는 더 불어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특금법 개정안에 따르면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실명계좌 등 조건을 맞춰야 오는 9월부터 영업을 할 수 있지만 그런 부분 역시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은 어떻게 투자수익을 불리는 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원금을 입금할 경우 주기적으로 배당금이 들어온다. 하지만 핵심은 다단계다. 새로운 사람을 끌어들일 때마다 투자금의 10%를 수수료로 받았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모집해 다단계의 최상위층에 오를 경우 보상으로 고급 스포츠카를 준다고도 약속했다. 투자업체 측은 "스포츠카 말고도 시계, 현금, 혹은 비트코인도 받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투자수익이 입금되는 과정은 복잡했다. 굳이 투자 배당금과 다단계 수익을 받는 계좌를 나눴고 그 안에서도 수수료 계좌를 따로 분리했다. 또한 계좌마다 제한되는 사항도 다르고 그 이유도 명확하지 않아 짧은 시간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발표를 진행한 남성은 계속 "시대 흐름인 비트코인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지한 선택이다"고 말하거나 "제 발표를 들으면 한 번에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발표를 듣는 노인들도 "발표를 참 잘해서인지 이해하기 쉽다"고 답했다.

A 업체는 모든 정보를 업체 측에서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성은 "기득권층들은 서민들이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막고 있다"며 "언론과 전문가들을 믿지 말고 우리를 믿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발표를 마치자 자신이 인천 부평에 살고 있다고 소개한 한 노인은 남성에게 달려가 "부평에도 부자가 되고픈 사람들이 많은데 와서 좋은 정보들을 공유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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