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독일인 극작가 박본이 쓰고 연출한 연극 ‘사랑Ⅱ’
지난달 23일 막을 올린 국립극단의 신작 <사랑Ⅱ>는 ‘완벽’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을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낸 연극이다. 국립극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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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목숨 끊은 아이돌 가수
‘지구의 핵’에서 이무기 키우며
못 이룬 ‘용’의 꿈에 다시 도전
무대는 동화 속에 나오는 몽환적인 숲 같다. 야트막한 언덕에 풀과 나무가 자라고, 한쪽엔 작은 분수가 흐른다. 천장엔 다른 세계로 향하는 구멍이 뚫려 있다. 핀마이크를 착용한 배우가 노래를 부르며 등장한다. 아이돌이 되고 싶었지만 실패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세 사람이 이곳에서 못 이룬 꿈을 계속 꾼다. 끝난 줄 알았던 삶이 이승도 저승도 아닌 이곳, ‘지구의 핵’에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막을 올린 국립극단의 신작 <사랑Ⅱ>는 ‘K팝 열풍’의 이면을 독특하고 재기발랄하게 풀어낸 연극이다. 2017년 <으르렁대는 은하수>로 베를린연극제 희곡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한국계 독일인 작가·연출가 박본(34)이 쓰고 연출했다.
극작가 겸 연출가 박본. 국립극단 제공 |
“독창성보다 완벽을 추구하는
K팝 아이돌·연예산업을 통해
한국사회와 그 정신에 접근”
독일 베를린 출생으로 유럽에서 활동해온 박본은 ‘부모님의 나라’ 한국의 정신 가운데 완벽주의에 주목했다. 지금의 K팝 열풍을 가능하게 한 한국의 연예산업은 무결점을 향한 한국인의 열망을 보여주는 매개체다. 지난달 24일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만난 박본은 “음악을 예술로서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지점은 불완전성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루 15~16시간씩 훈련하며 음악적 독창성보다는 ‘완벽’을 추구하는 아이돌 문화가 (작품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로 다가왔다”며 “한국의 연예산업을 통해 한국 사회와 그 정신에 대해 접근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작가의 그런 관심이 투영된 존재가 극중 ‘이무기’다. 죽고 나서도 지구의 핵에서 살아가는 현무, 청룡, 주작 세 사람은 여전히 완벽한 아이돌 그룹이 되기를 꿈꾸며, 그룹 ‘슈퍼 한(恨)’을 완성시켜 줄 네 번째 멤버 ‘이무기’를 9999년간 키운다. 이제 1년만 더 키워 1만년을 채우면 이무기는 용이 되듯 완벽한 아이돌 가수로 거듭나게 된다. 박본은 “오랫동안 훈련해도 존재를 부정당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아이돌 산업의) 현실이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설화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슈퍼 한’의 세 멤버는 자신들이 키운 마지막 멤버 이무기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치며, 그에게 여러 시험을 치르게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배터리 1%’라는 노래에 담아 선보인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열심히 하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이들은 결점 없는 완벽한 사랑의 감정, ‘사랑Ⅱ’를 갈망한다.
박본은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감정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을 완벽하게 구현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연예산업을 ‘사랑Ⅱ’를 향한 여정에 빗댄다. 그는 “고통과 아픔, 때로 눈물 흘리게 만드는 사랑이란 감정의 후속편, 사랑의 더 좋은 버전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사랑Ⅱ’라는 제목을 붙였다”며 “무결점을 향해 가는 연예산업과 연결해 ‘존재하는 사랑보다 더 완벽한 사랑’은 무엇일까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배우와 스태프 모두가 창작에 참여하는 긴 리서치 기간은 박본의 독특한 작업 방식이다. 그는 작품을 준비할 때 완성된 대본 없이 큰 주제와 콘셉트 정도만 정해둔 채 연습을 먼저 시작하고 연습 과정에서 배우들과 소통한 내용을 반영해 대본을 완성한다고 한다. “배우 개개인을 알아가고 캐릭터에 반영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현우, 김예림, 박소연, 이유진 등 국립극단 시즌단원 4명이 아이돌 그룹 ‘슈퍼 한’으로 분해 춤과 노래를 함께 선보인다. K팝의 멜로디 라인을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가사의 노래들은 독일 작곡가 뢰슬러 벤이 만들었다.
<사랑Ⅱ>는 그간 국립극단이 선보여온 연극과는 다소 결이 다른 독특한 분위기의 작품이다. 꿈과 사랑을 노래했다가 갑자기 분노를 표출하고, 복수를 향해 달려가는 전개는 “여러 장르의 혼합”이 특징인 K드라마의 형식을 반영했다고 한다. K팝 산업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상업적인 소재를 지구의 내핵이라는 초현실적인 공간에서 유머와 광기, 공포와 재앙을 넘나드는 독특한 세계관으로 풀었다. 박본은 “공연을 보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디테일은 이해하지 못해도 따뜻한 감정을 느끼고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떤 감정이 느껴진다면 그것이 사랑Ⅱ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연은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7월18일까지.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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