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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혼돈의 가상화폐

아무도 예상 못한 비트코인의 법정화폐 채택, 어떤 영향 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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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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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핀테크월드] 엘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이 법정화폐로 채택되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심지어 지금은 기대조차 하지 않던 일이었다. 일론 머스크가 채굴의 환경문제를 언급하며 비트코인을 테슬라 결제수단에서 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나 더 놀라움을 자아냈다.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트위터 실시간 방송에서 엘살바도르 화산에서 나오는 지열로 채굴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비트코인 지지자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반응이 있다. 엘살바도르가 남미에서 범죄율이 가장 높기 때문에 비트코인에 우호적인 것이라는 비아냥도 있고, 비트코인 시세가 매번 변하는데 어떻게 상거래에 사용하겠냐는 회의론도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현재 비트코인은 아직 장점보다는 한계가 많다. 달러와 같은 법정화폐와 경쟁할 수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채택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비트'코인'이 '화폐'가 되어서가 아니다. 비트코인이라는 열린 금융 네트워크가 국가 차원에서 받아들여진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금융 네트워크를 논하기 위해 잠시 당신이 미국에 여행을 간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당신이 환전하는 것을 빠뜨려서 현금 달러를 가져가지 않았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 대부분은 수수료가 좀 나가겠지만 해외 결제가 되는 신용카드를 써야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미국과 한국은 비자나 마스터카드 같은 신용카드사의 금융 네트워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엘살바도르와 같은 개발도상국에 여행을 간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현금을 가져가지 않는다면 아마도 큰 곤란을 겪을 것이다. 신용카드는 웬만큼 큰 호텔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을 테고 국제송금이나 ATM을 사용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는 달리 그곳에는 금융 네트워크가 충분히 깔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은 관광객만 겪는 게 아니다. 엘살바도르는 국민의 70%가 은행계좌나 신용카드가 없다. 우리에겐 생수 한 병을 사면서 카드를 꽂아 결제하고, 축의금을 메신저로 보내고, 중고물건을 거래할 때 인터넷뱅킹으로 바로 입금하는 모습이 일상이겠지만 엘살바도르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다행히도 엘살바도르의 IT 인프라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 인터넷 보급률은 대략 50% 정도이고, 휴대폰 보급률은 146%로 상당히 높다. 스마트폰 보급률은 명확한 통계는 없지만 2019년 모바일 SNS 사용자가 인구의 54%임을 미루어보면(참고자료 바로가기)상당히 높은 수준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우리에게 비트코인은 좋은 투자 수단이겠지만 엘살바도르 같은 나라에서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금융 인프라라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 이 때 비트코인의 역할은 정보가 전달되는 인터넷 네트워크에 가치 전송 기능을 덧씌우는 것이다.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있다면 인터넷이 통하는 어떤 곳에든 가치를 전송할 수 있다. 은행이 필요하지도, SWIFT 같은 복잡하고 느린 송금 시스템이 필요하지도 않다. 단지 24 단어(혹은 52글자) 개인키와 인터넷만 있으면 된다. 인터넷이 세계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정보를 나르는 인프라가 되었듯이 비트코인은 인터넷이 한 일을 금융에서 할 것이다.

이때 비트코인은 결제 매개체로 사용될 수 있다.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잭 맬러스의 스트라이크 앱이 좋은 예다. 스트라이크로 1000달러를 보내면 앱에서 자동으로 달러를 동일한 가치의 비트코인으로 전환한다. 그리고 라이트닝 네트워크라는 실시간 결제 채널을 통해 상대방 지갑으로 즉시 전송한다. 비트코인이 상대방 지갑에 도착하면 스트라이크는 이를 다시 달러로 전환해 놓는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매우 불필요한 일이겠지만 엘살바도르에서는 혁신적인 일이다.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해킹이나 조작으로부터 자유로운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를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부수적인 효과로 전 국민에게 비트코인이라는 세계 20위 안에 드는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문도 열어주었다.

물론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도입이 도전적인 실험임은 분명하다.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도가 갖는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미 파라과이에서도 엘살바도르와 같은 움직임이 있고, 다른 개발도상국들, 특히 자국 발행 화폐가 없는 에콰도르나 모나코 같은 국가들도 충분히 같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과거 20년 동안 인터넷은 전화교환국과 우체국이 핵심이었던 정보통신 네트워크를 재편했다. 이제 비트코인은, 나아가 블록체인은 은행과 신용카드사가 중심을 장악하고 있는 금융 네트워크를 바꿔나갈 것이다.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채택을 단순히 우리가 무시할 만한 작은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 치부하고 무시하기보다는 이 새로운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벌어질 일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고 우리의 현명한 대응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조재우 한성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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