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3만원 내라"…돌아가겠다고 하자 "그래도 돈 내야" 막무가내
대사관 영사 도움으로 간신히 통과…"십여 년 전 군정 시절 악습 재현 당혹"
검문 검색 중인 미얀마 군경. 기사 내용과 상관 없음. |
(양곤[미얀마]=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 군부에 대항하는 주민 무장 조직인 시민방위군(PDF)의 활동을 막는다는 핑계로 미얀마 군경이 강화한 검문·검색이 외국인에 대한 '통행세 징수' 행위로 변질하고 있다.
지난 24일 양곤시와 맞닿아 있는 양곤주 흘레구 타운십으로 사업 상담을 위해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던 한인 5명은 황당한 일을 당했다.
20년 넘게 미얀마에 사는 한인 A씨는 기자에게 "시 경계선을 넘나들던 수많은 차량 중에 군경이 유독 우리가 타고 있던 승합차만 지목했다"며 "타고 있던 이들이 현지인들이 아니어서 딱 꼬집어 검문을 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검문 검색을 당하자 차에 타고 있던 한인들은 여권 사본 또는 휴대전화로 찍은 여권 사진을 보여줬다.
2월1일 군부 쿠데타 이후 주미얀마 한국대사관 및 한인회는 교민들에게 검문 검색을 당하면 여권 원본을 건네지 말고, 사본을 제시하거나 휴대폰에 찍어 저장한 사진을 보여주라고 지침을 전달했다.
그러나 검문소의 군경은 대뜸 이들에게 여권 원본을 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한다.
이러자 일행 중 미얀마인 변호사를 부인으로 둔 C씨가 부인에게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다.
양곤시 경계의 한 검문소. 기사 내용과 상관 없음. |
그러나 돌아온 답은 "거기를 지나려면 여권 원본이 없는 한 사람당 5만짯(약 3만4천원)씩 모두 25만짯(약 17만원)을 내야 한다고 군경이 얘기한다"는 것이었다.
차량을 운전하던 D씨가 가지고 있던 여권 원본을 마지못해 건넸지만, 이제는 군경이 이를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다른 속셈이 있었던 셈이다.
이를 눈치챈 A씨가 일을 빨리 마무리하기 위해 통행료를 좀 깎아달라고 했지만, 이들은 "깎으면 다음 검문소에서 또 내야 한다"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인들이 "돈을 다 낼 테니 영수증을 달라"고 했더니 그마저도 거절했다고 한다.
화가 난 D씨가 "여기를 지나지 않고 다시 양곤시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답은 더 가관이었다.
도로에서 총 들고 검문하는 미얀마 군경. 기사 내용과 상관 없음. |
군경 중 한 명이 "지금 여기서 돌아가더라도 돈은 내고 가야 한다. 아니면 전부 내려서 여기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일행은 고민 끝에 미얀마 주재 한국대사관의 사건·사고 담당인 정현섭 부영사에게 전화로 도움을 청했다.
정 부영사는 최근 미얀마 양곤 병원에서 한인 산모를 적극적으로 도와준 일로 인해 우리 정부 외교부 게시판 "칭찬합시다"에 '고마운 대사관 직원'으로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그와 한참 동안 통화를 하고 난 뒤 군경은 한인들이 타고 있던 차를 검문 시작 30여 분만에 통과시켜줬다.
미얀마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 전경 |
정 부영사는 기자와 통화에서 "검문 중이던 군인에게 한국대사관 관계자임을 알리고, '여권 사본 또는 여권 사진을 가진 5명 모두 한국인이 맞고 아무 문제가 없으니 빨리 통과시켜달라'고 요청했지만 역시 머뭇거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현장에 직접 가야 통과시켜주겠다면 지금 바로 가겠다고 했더니, 마지못해 통과시켜 줬다"며 "10여 년 전 군사정권 시절 종종 있던 '외국인 갈취'가 되풀이되는 것 같아 당혹스럽다. 제게 전화하지 않고 그냥 돈을 주는 교민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심 진입 길목 곳곳에서 이뤄지는 군경의 무소불위 검문·검색과 그 과정에서 부당하게 돈까지 요구하는 횡포는 쿠데타 이후 미얀마에 사는 외국인들에 또 다른 공포가 되고 있다.
202134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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