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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정년 없는 미국, 80대 직원까지…한국서 '차별금지법' 통과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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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 안재용 기자, 최석환 기자] [편집자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논의가 본격화됐다. 나이 또는 성별, 학력 등으로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누구나 공감하는 고귀한 가치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차별금지법 입법이 우리 사회에 몰고올 변화를 짚어본다.

[MT리포트]차별금지법의 세상, 유토피아일까 (상)


'노인 차별'이라고 정년 없앤 美·英...우리도 차별금지법 생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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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인 구직자가 일자리를 위해 채용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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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관공서나 도서관에는 80대 어르신 직원이 흔하다. '정년'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정년을 정해놓고 그 나이가 되면 무조건 직장에서 내쫓는 건 나이에 따른 차별이라는 게 이들의 인식이다. 미국에서 1986년 정년이 사라진 이유다. 영국도 비슷한 이유로 이미 정년을 없앴다.

우리 국회에 '차별금지법'이 올라왔다. 우리도 미국·영국처럼 '정년 폐지'의 길을 걸을까. 당장은 아니지만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경우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세대갈등이 불가피한 문제다.

◇10만명이 동의한 차별금지법…나이·성별·학력 못 따진다= 22일 국회에 따르면 차별금지법 제정안이 국민동의청원 요건인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자동 회부된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나이, 학력, 사회적 지위 등에 따른 고용·교육상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대표발의했다. 지난 16일에는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비슷한 취지로 '평등에 관한 법률'(이하 평등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평등법의 경우 원안대로 제정된다면 이후 다른 법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법안은 "헌법상의 평등권과 관련한 법률을 제정·개정하는 경우나 관련 제도 및 정책을 수립하는 경우에는 이 법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두 법안 모두 핵심은 '고용상 차별금지'다. 채용이나 승진, 급여에 있어 나이와 성별, 학력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 등의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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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7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노인인력개발센터에서 열린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에 참여 모집에 일자리를 구하는 많은 노인들이 몰려 대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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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입장에서 파급효과가 가장 큰 대목은 나이다. 당장은 법정 정년인 60세 미만인 직원에 대해 나이를 이유로 퇴직을 권고하기 어려워진다. 지금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상 연령을 이유로 한 고용 차별이 금지돼 있지만 '합리적인 이유 없이'란 단서 때문에 빠져나갈 여지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미국이나 영국처럼 법정 정년에 대해서도 연령에 따른 차별이라며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사실상 정년 폐지 논의로 가는 수순이다.

신민영 변호사(법무법인 예현)는 "입법은 법 제정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해석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라며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경우 정년제가 연령에 따른 차별인지 여부를 따지는 사회적 논의가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의 채용 여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만약 정년이 없어진다면 신규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가뜩이나 연공서열에 따른 호봉제가 뿌리내린 우리나라 고용 여건 속에서 정년 폐지는 급격한 인건비 부담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이 정년 폐지로까지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정병욱 변호사(법무법인 송경)는 "고용 및 직업상 차별에 관한 ILO(국제노동기구) 협약 111호에도 연령과 관련한 차별금지 조항은 없다"고 말했다.

◇"목욕탕 직원 뽑는 데 성별 구분 안 둘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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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2일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에서 졸업생들이 학사모를 던지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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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에 따른 차별 금지 역시 뜨거운 감자다. '대졸 공채' '박사 학위 이상 소지자' 등의 공개채용 요건이 사라질 수 있다. 학력 역시 연령과 마찬가지로 업무 특성에 따른 차이로 볼지, 차별 요소로 볼지가 쟁점이다.

정병욱 변호사는 "고졸·대졸 여부에 상관 없이 고용 기회를 균등하게 주는 게 올바르다는 게 차별금지법"이라며 "연구직의 경우에도 박사 학위 등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기업들이 능력있는 분들을 적절하게 선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신민영 변호사는 "차별을 금지하는 것일 뿐 차이를 금지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대졸, 박사 학위나 특정 전공 등 업무 특성 때문에 채용 기준에 제한을 둘 경우엔 면책해야 한다"며 "목욕탕에서 일할 직원을 구하는데 성별에 따른 구분을 안 둘 수는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기업의 자율적인 채용을 사법기관이 사후적으로 관여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한편 공공기관들은 법 제정시 정부의 방침이 정해지면 그 이후 대책을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전에 채용 실무부서에서 앞서나갈 수는 없다"며 "법 통과 이후 정부 지침이 나오면 이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엔 '차별금지법' 공포···재계 "묻지마 소송·채용 회피"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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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참석 의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10만서명 보고 및 입법촉구' 기자회견에서 손 피켓을 들고 있다. 2021.6.15/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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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범위한 차별금지 범위로 '묻지마 소송'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오히려 고용시장에선 채용회피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재계가 최근 정치권에서 추진되고 있는 '차별금지법' 포비아(공포)에 떨고 있다. 나이와 성별, 학력 등의 이유로 채용·승진·임금 지급·해고 등 일체의 고용행위에서 차별을 금지토록 한 규정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옥죌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세부적으로 보면 임금차별을 금지하는 '유사한 직무'에 대한 범위를 확대할 경우 정규직·비정규직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한 노동계 요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규정돼 '권고 대상'이었던 학력 등도 차별금지법에 따라 '처벌 대상'으로 전환되면서 학력에 따른 급여체계 운용, 채용시 건강검진, 전과자 채용거부 등의 조정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근로자 처우도 처벌규정이 약해 일부 차별이 남아있는데, 향후 엄격한 규정이 적용될 수 있고 중소기업의 '외국인 고용허가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차별금지 전반에 적용하게 되면 '입증책임 전환'과 맞물려 기업의 소송 부담도 커질 것이란게 재계 안팎의 시각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예를 들어 조직적응 한계·업무지휘 어려움 등 현실적으로 고령자 채용에 어려운 측면이 존재하는데도 이를 차별로 볼 수 있단 것"라며 "법 규정이 모호해 사용자의 재산권은 물론 자유시장경제질서, 사기업의 자율경영이 심각하게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고용상의 차별은 노동 전문가들조차도 당위성을 파악하기 어려운 문제인데 비전문 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심의하고 이행강제금 부과, 징벌적 손해배상 등 제재를 주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승진·징계·해고 등 기업의 정당한 인사권 행사에 반감을 가진 직원의 인권위 진정으로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거나, 인권위 조사를 우려해 기업의 인사권 행사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성별과 나이, 학력, 고용형태 등으로 금융과 문화, 시설물 및 상업시설 이용 등 재화·용역 공급에서의 차별을 금지한 것도 사업 활동에서 쟁점이 될 수 있다. 예컨대 금융회사가 위험 관리 차원에서 비정규직에 대해 대출과 카드 발급 등의 금융서비스를 제한하는 것도 차별금지법에 따르면 불가능하다.

장정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사유로 획일적으로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오히려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제약하고 기업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이미 남녀고용평등법, 장애인차별금지법, 고령자고용촉진법 등 다양한 개별법을 통해 차별에 대한 보호를 규정하고 있는 만큼 옥상옥 규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우영 기자 young@mt.co.kr, 안재용 기자 poong@mt.co.kr, 최석환 기자 neokis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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