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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평정심, 선거 조작에 휩쓸리지 않는 법[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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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안 보고 안 들으면 될까요? 불가능합니다. 정치는 이미 우리 생활에 깊이 들어와 내 삶 자체가 그 안에서 펼쳐집니다. 정치가 규정하는 월세, 전세, 세금 자체가 삶의 일부입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앞으로 몇 달 동안 온 힘을 다하는 몇몇 사람들과 그들이 속한 정치집단을 쉴 새 없이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정보의 홍수를 피하려면 신문, 잡지, 방송, 인터넷, 사람들을 멀리해야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선거에 뛰어든 사람들의 목적은 단순히 승리가 아닙니다. 그들은 멀리 봅니다. 압도적으로 이겼는지, 겨우 이겼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전리품을 최대한 획득하고, 미래의 정치적 도전을 최소화하며, 경쟁 상대를 회생 불능으로 만들려면 압승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선거운동은 과도하고 집요하고 뻔뻔합니다. 상대 진영이 세력을 키우는 것을 일찍이 차단하고, 타격을 가하며, 회복할 여유를 없앱니다. 약하게 보이면 끝장나는 이 싸움에서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승자의 아량이나 미덕은 누구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후보자 자신의 성품이 선량하고 사려 깊다고 해도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집단은 전혀 다릅니다. 유권자들을 끌어들일 강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미래를 도모하려면 개인의 가치관은 무력화시켜야 합니다.

유권자가 단련해야 하는 것은 눈, 귀, 뇌 그리고 마음입니다. 눈이 있어도 잘 읽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제대로 듣지 못하면 큰일입니다. 뇌와 마음을 써서 눈에 들어오고 귀에 들리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채야 합니다. 읽어내는 사람은 자신을 지키지만, 겉만 보고 속으면 제정신을 잃어버립니다. 그럴듯한 것과 사실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공격적으로 전개되는 선거 운동이 사회에 고루고루 미치는 영향은 쉽게 보이지 않으나 깊고 넓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정치를 혐오하게 만들며 국민 통합에 금이 가게 합니다. 유권자 개개인의 마음에 미치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영향도 상당합니다.

조작과 속임수가 판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정신건강을 지키려면 그들의 마음과 내 마음을 모두 잘 읽어야 합니다. 첫째,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정보’를 받아들이지만 다른 정보들 그리고 내 내면의 소리와 비교하면서 숙성시킨 후에 판단해야 합니다. 즉각적인,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그들이 노리는 덫에 걸린 겁니다. 둘째, 혹시 정치 집단의 말과 행동에서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다면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목적을 찾아야 합니다. 알면 편안해집니다. 숨어 있는 목적은 뻔합니다. 공격 대상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유권자와 후원자가 철회하도록 하는 겁니다. 자기편을 열성적 상태로 묶어놓는 효과도 노립니다. 다른 후보들에게 비슷하게 당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취지도 있습니다. 선거가 끝나도 왜곡 정보의 영향은 각인되어 남습니다. 설령 그 후보가 당선되어도 힘을 제대로 못 쓰게 합니다. 셋째, 내가 특정 후보자를 좋아한다고 해도 지나친 동일화를 하며 불필요하게 마음을 쓰지는 말아야 합니다. 정치인은 연예인이 아닙니다. 국민의 권리를 위임받아 나라를 위해 행동할 의무가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개인의 감정을 과도하게 투입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화장실 출입 전후에 태도가 달라지는 성향은 정치권에서 두드러지니 거리를 두고 지내야 환상이 환멸로 바뀌어도 마음의 상처를 줄일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한 표는 한 표일 뿐입니다. 넷째, 평정심을 잃고 흥분하면 이용당할 취약성이 늘어납니다. 정치는 중요하지만 나를 잃을 정도의 관여는 삼가야 합니다.

선거 운동의 핵심은 ‘정보’ 유포 전략입니다. 머리를 쓰면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다고 그들은 확신합니다. 기존의 믿음이 굳은 유권자도 난공불락(難攻不落)은 아닙니다. 새로운 ‘정보’를 마취제처럼 유입하면 선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왜곡된 정보는 왜곡된 선택을 의미합니다. 숙성된 판단 없이 넘어가면 이용당하고 버려집니다. 정보화 사회의 정보는 절대로 개인 수준에 머물지 않습니다. 집단적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우호 집단과 적대 집단 사이에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킵니다. 그리고 집단적 퇴행으로 이어집니다.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심정적 사고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설친다는 뜻입니다.

결정의 날이 하루하루 다가옵니다. 후보자에 대해 모든 것을 샅샅이 알아야 선택할 수 있을까요? 내세우는 정책이 마음에 든다고 반드시 그 사람을 뽑아야 할까요? 내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된다면 그 사람을 꼭 지지해야 할까요? 경쟁 후보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욕하거나 비인간적 사악함의 틀에 가두려는 사람이라도 괜찮을까요? 이것저것 머리 아프니 주변에서 하는 말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믿고 한 표를 던지면 될까요?

마음을 비우고 거리를 두고 심장보다는 머리로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평정심을 지켜야 정치적 조작에 휩쓸리지 않고 내 마음과 내 표의 가치를 지킬 수 있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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