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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망신주기 신상폭로·댓글… ‘사적 보복’ 부추기는 온라인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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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직장인 불륜 스캔들 잇따라

당사자 정보·사진 등 무분별 공개

일부 “당해도 싸다” 내용 퍼날라

사실적시 명예훼손 최대 징역 2년

“무차별 유포… 피해 회복 불가능

사적 단죄 위법성 인지할 필요”

세계일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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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몇백만원에 여자 인생 박살 내는 거면 ‘개이득’이지.”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한 A기업 직원 간의 ‘불륜’ 글에 달린 한 댓글이다. 해당 글에는 기혼 남성과 결혼을 앞둔 여성이 바람을 피웠다는 설명과 함께 두 사람의 적나라한 대화 내용, 여성의 사진과 이름 등 신상정보까지 담겼다. 글 밑에는 ‘신상정보를 폭로한 남성의 행동이 옳다’는 취지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불륜 상황에 대처하는 ‘정석’이라고 치켜세우거나, 향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벌금을 물더라도 여성에게 더 큰 피해를 안겼으니 ‘합리적’이라는 글도 많았다. 불륜 당사자로 지목된 이들에 대해서는 외모를 비하하거나 욕설을 퍼붓는 댓글이 이어졌다. 온라인 공간이 이름 모를 이들의 ‘단죄의 장’이 된 것이다.

최근 일반인에 대한 추문과 적나라한 신상정보가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메신저를 중심으로 번지는 일이 늘고 있다. 피해를 주장하는 당사자가 ‘사적 응징’에 나서겠다며 이들에 대한 신상정보나 민감한 대화 내용 등을 공개하면, 다른 사람들이 호응하고 글을 공유하며 ‘복수’를 부추기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보를 만들어내거나 재유포하는 행동은 명백한 위법행위다. 전문가들은 사적 단죄의 위법성이 분명히 인지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22일 여러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A기업 불륜 스캔들’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당사자들의 이름은 물론 사진까지 무차별적으로 퍼진 상황이다. 최근에는 또 다른 기업의 불륜 폭로 글과 사진도 이슈가 되는 등 비슷한 게시글이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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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대부분 글에 당사자의 이름과 나이, 직업 등 신상정보뿐 아니라 얼굴이 나온 사진까지도 함께 공개됐다는 점이다. 상당수가 사실 확인도 되지 않았고, 사실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명예를 훼손할 여지도 크다.

실제 개인정보를 유포하면 형법상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사적 내용을 재가공하거나 재유포하는 행위 역시 위법이다. 형법 제307조에 따르면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그 내용이 허위인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최근 사적 단죄에 나섰다가 법원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일도 있다. 성범죄, 아동학대, 강력범죄 피의자 등의 신상정보 등을 공개해 재판에 넘겨진 ‘디지털교도소’ 운영자가 대표적이다. 그는 ‘나쁜 놈’들의 신상을 공개한다는 점에서 일각에서 호응을 얻기도 했지만, 무고한 인물의 사진을 공개하는 등 논란도 이어졌다. 결국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운영자는 지난 4월 대구지법에서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세계일보

지난 2020년 10월 8일 성범죄 피의자 등의 신상 정보 및 선고 결과 등을 무단 게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디지털교도소' 1기 운영자 A씨가 대구 수성구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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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이뤄지는 사적 복수가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홍식 중앙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는 “인권에 대한 의식이 약화했고, 공적 영역에서 이런 사적 복수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같은 글이 퍼진 것”이라며 “무분별한 사적 복수가 하나의 흥미나 재밋거리로 전락해 버렸지만 이로 인해 피해자와 가족들이 겪는 피해는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적 변화나 기대를 반영하는 현상”이라면서도 “선의의 피해자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용자 역시 일방적인 주장을 걸러서 볼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정보활용능력)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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