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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취약계층 버팀목 된 반려동물… 서울, 양육지원 대폭 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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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 ‘반려인 지원사업’ 2021년 정규 편성

개·고양이 등 키우는 저소득층 86.9%

“양육 통해 긍정적인 사고 얻어” 호평

예방접종비 등 경제적 어려움 많아

37.7% “생활비 줄여서 대응” 답해

시 “2021년 200마리 이상 맞춤 서비스”

중성화수술·건강검진 등 복지 제공

세계일보

서울의 한 동물병원에서 광견병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한 시민이 반려견을 산책시키고 있는 모습. 서울시 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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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키우고 나서부터 말을 많이 하는 등 삶이 바뀌었어요.”

차상위계층에 속하는 A(75)씨는 적적한 마음에 최근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와 키우고 있다. 이웃이 이사 가면서 키우지 못하게 된 강아지를 딸이 입양해 가져다준 것이다. A씨는 강아지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삶의 낙이라고 했다. 그는 “같이 산책도 하고 너무 좋다”면서 “사는 날까지 정성스럽게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득이 마땅찮은 A씨가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경제적으로 만만치 않다. 사료비와 의료비, 예방접종비 등 양육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강아지가 1㎏에 2만원짜리 사료를 먹는다”며 “내가 오죽하면 ‘너는 나보다 더 많이 먹는다. 나는 하루에 한 끼 먹고 반찬도 없는 밥을 먹는데’라고 말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20일 서울시와 자치구 등에 따르면 적지 않은 독거노인과 기초생활수급자, 저소득 가정 등 취약계층이 반려동물을 키우며 가족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서울의 한 복지관이 2017년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지역의 영구임대주택 단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벌인 반려동물 관련 현황조사에서 약 13%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70% 이상은 60세 이상 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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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에 반려동물 키우는 취약계층, 동물과 함께 아픔 나눠

저소득층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유는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과 함께 ‘외로움’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서울시가 2019년 10월15일∼12월3일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있는 저소득층 6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울시 취약계층 반려동물 양육 실태조사’에서 반려동물을 키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동물을 좋아해서’(29.7%)였다. 이어 ‘외로워서’(20.4%), ‘지인을 통해 우연히 반려동물을 받아 키우게 됐다’(17.6%), ‘아이를 위해 키운다’(11.3%) 등의 순이었다.

반려동물은 취약계층에게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취약계층의 86.9%(이하 중복응답)는 반려동물을 키움으로써 “‘긍정적인 사고’를 얻게 됐다”고 응답했다. 86.3%는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했고 83.0%는 “‘스트레스 감소’ 효과가 있었다”고 답했다. 이들은 ‘대화 증가’(75.2%), ‘운동량 증가’(74.2%), ‘자신감 향상’(66.7%) 등도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생긴 주된 변화로 꼽았다.

일부 저소득층 가정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에 대한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을 토로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반려동물을 제대로 키울 수 있겠느냐는 우려다. 유기견 1마리와 고양이 2마리를 키우는 기초수급자 B(53)씨는 “‘수급자가 강아지를 왜 키우냐’는 편견을 없앴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B씨는 “돈이 있는 사람들이 강아지를 버린다. 수급자들은 솔직히 아픈 사람들이고, 강아지에 의지해서 사는 사람들이 많아 오히려 애지중지하고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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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키우는 취약계층 10명 중 4명 “생활비 줄이고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양육하면서 취약계층이 겪는 애로점은 얄팍한 주머니 사정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취약계층의 37.7%는 양육에 드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생활비를 줄이고 있다”고 답했다. 신용카드로 처리해 양육비를 다음 달로 떠넘기는 취약계층은 22.7%였다. 타인에게 돈을 빌리거나 치료를 포기했다는 응답도 각각 7.8%, 4.5%로 나타났다.

B씨는 “의료비가 비싸 강아지 보험을 들려고 해도 생후 1년이 지난 강아지는 받아주지도 않는다”며 “만약 아프게 되면 돈이 너무 들어가고 예방접종비도 많은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취약계층이 반료동물을 양육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조사한 결과 반려견의 경우 월평균 13만8437원, 반려묘는 12만4346원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어려움이 전해지면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취약계층 반려인 지원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취약계층을 관리하는 서울 마포구의 한 통합사례관리사는 “최근 반려동물을 키우는 노인단독가구를 자주 만나고 있다”며 “어르신들은 반려동물을 통해 정서적인 지원을 받고 있지만 어떻게 건강하게 키울지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경우가 많아 교육 등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시민참여예산제도를 통해 4개 자치구에서 시범사업으로 추진하던 취약계층 반려동물 지원사업을 정규사업으로 편성해 올해부터 확대하기로 했다. 시는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과 함께 다음 달 14일까지 서류를 접수 받아 반려동물을 기르는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100명을 대상으로 200마리 이상의 반려동물에게 중성화수술, 건강검진, 예방접종, 동물등록 등을 지원한다. 반려동물 돌봄교육과 행동교육을 비롯해 반려인이 병원 등에 입원했을 때 위탁 및 방문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미경 서울시 동물보호과장은 “지난해 시범사업으로 취약계층 143명에 동물의료서비스를 제공해 큰 호응을 얻었다”며 “올해는 200마리 이상의 반려동물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신적으로 취약한 취약계층에게는 정신건강 상담을 제공하는 등 사람과 동물 모두 복지 증진을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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