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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기자수첩] 박범계 장관의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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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지난 4월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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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석진 기자] “역시 정치인이 다르긴 다르네. 꼼수에 완전히 당했어.”


지난주 입법예고 된 검찰 직제개편안을 본 한 현직 검사의 반응이다.


법무부는 지난주 논란이 됐던 대통령령,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공개된 최종 개정안을 놓고 법조계에서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김오수 총장의 의견을 대폭 수용했다”, “박 장관이 검찰의 의견을 수렴해 통 크게 양보했다”는 등 평가가 나왔다.


이 같은 반응이 나온 이유는 개정 직제개편안 초안에 대한 검찰 의견 수렴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수사 개시에 있어서의 장관 승인’ 조항이 빠졌기 때문이다.


애초 법무부가 마련한 초안은 지방검찰청 산하의 지청에서 수사를 개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별도의 수사팀을 구성하도록 했는데, 여기에는 법무부 장관의 승인이 필수 요건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장관이 수사 개시를 승인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김오수 검찰총장은 대검 부장회의를 열어 간부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과적으로 박 장관은 이 같은 김 총장과 검찰 내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준 모양새가 연출된 셈이다.


법무부의 직제개편안 초안 내용이 알려진 뒤 ‘장관이 수사 개시 여부를 승인(결정)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검찰 내부뿐만 아니라 법조계 전반에서 우려와 비난이 제기됐다. 정부의 기조에 대체로 동조해온 진보 성향의 언론에서조차도 ‘장관의 수사 승인은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장관의 수사 개시 승인은 ‘법무부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검찰청법 제8조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할뿐 아니라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확보라는 검찰개혁의 궁극적 목적에도 배치된다.


검찰청법이 구체적 사건 수사에 대해 장관이 총장을 통하지 않고 직접 관여할 수 없도록 제한을 둔 것은 정무직인 장관의 수사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다.


특정 정당의 당적을 보유한 정치인인 장관이 구체적 사건의 수사 개시 여부를 승인한다는 건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당적을 가진 검찰총장이 수사를 지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누구 머리에서 나온 발상인지는 몰라도 만약 초안대로 개정안이 마련됐다면, 단순한 검찰 내부의 반발을 넘어서 상위법인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에 반한다는 위법성 논란이 일었을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말도 안 됐던, 현실적으로 대통령령에 담기기 어려운 내용이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조항을 초안에 넣어 온통 관심과 비난이 거기에 집중되는 바람에 정작 또 다른 중요 개정 내용들이 관심을 받지 못했다.


법무부가 입법예고 한 직제개편안에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수사권이 대폭 축소된 검찰이 그나마 직접 수사할 수 있었던 6대 범죄 중 고소된 경제범죄 사건 외의 부패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등 사건마저 총장의 사전 승인을 받고 수사해야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총장의 승인을 받고 수사할 수 있는 부서도 반부패부가 없는 지방검찰청의 경우 각 검찰청의 마지막 순위 형사부(가령 형사제1부부터 형사제5부까지 있는 검찰청에서는 형사제5부) 한 곳으로 제한을 뒀다.


검사의 권한과 관련해 헌법은 제12조 3항에서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제16조에서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검찰청법 제4조(검사의 직무) 1항은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다음 각 호의 직무와 권한이 있다’고 규정한 뒤 1호에서 6대 범죄에 대한 수사를 개시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검찰청법 제7조(검찰사무에 관한 지휘·감독) 1항이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른다’고 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12조(검찰총장) 2항이 ‘검찰총장은 대검찰청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고 검찰사무를 총괄하며 검찰청의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는 일반조항을 두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수사를 개시할 때 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된다는 제한은 없다.


물론 지금도 각 지검, 지청의 주요 수사 사건들은 대검 지휘부를 통해 총장에게 보고가 되고 있지만 사건 수사를 시작할 때마다 총장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명문에 규정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결국 법률의 하위법령인 대통령령으로 상위법인 검찰청법에서 부여한 검사의 수사 권한을 제한한 셈이다.


조금 과장해서 비유하자면 환자를 발견한 의사가 수술이나 치료를 하기에 앞서 병원장이나 보건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화재 현장을 발견한 소방관이 불을 끄기에 앞서 소방청장의 승인을 받아야 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수사는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제한돼야 한다’는 논리로 정당화하려 할 수 있겠지만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도 불가피하게 환자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게 되고 형법적으로는 상해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가 수반된다. 불을 끄는 과정에서도 타인의 주거에 대한 침입이나 재물에 대한 손괴가 따를 수 있다. 하지만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권한과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이들이 누구의 허락을 받고 환자를 치료하거나 불을 끄도록 하지 않는 것처럼 검사의 수사 권한 역시 법에 의해 부여된 것이다.


더군다나 김오수 검찰총장이 총장에 임명되기 전 두 번이나 감사위원으로 추천됐다가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이유로 거부당한 친정부 성향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총장의 수사 개시 승인’이 제도화 될 경우 향후 진행될 검찰 수사들은 끊임없이 정치적 시비에 휘말릴 공산이 크다.


비록 김 총장은 ‘나도 검사’라는 점을 강조하며 최근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서도 박 장관에게 반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이성윤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서울고검장 영전을 막지 못했고 인사가 끝난 뒤에는 “내 의견이 상당부분 반영돼 다행”이라는 입장을 내 처음부터 두 사람이 쇼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그럴 만큼 박 장관과 김 총장이 결국은 ‘한 편’이라는 의심의 눈길이 많은 상황이다.


“박 장관은 실리를 챙겼고, 김 총장은 면을 세웠다”는 평가처럼 이번 직제개편안에서 장관의 수사 개시 승인 조항은 삭제됐지만, 기존에 없던 총장의 수사 개시 승인 조항이 신설된 것이나 형사부의 직접 수사가 제한된 것은 결코 가벼운 변화가 아니다.


또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국가 범죄 대응 능력의 약화다.


이 정부 들어 ‘검찰개혁의 최대 수혜자는 범죄조직 내지 범죄자들’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우습게만 들리지 않는 건 실제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해온 검찰개혁 방안에 따라 올해 초부터 검경 수사권이 조정됐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신설됐다.


짧게는 3년에서 5년 길게는 15년에서 20년 이상 수사만 해온 검사나 검찰수사관들은 개정 검찰청법에 따라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죄 유형이 대폭 줄어들면서 자의 반 타의 반 수사 업무가 줄어들었다.


반면 갑작스럽게 사건이 몰린 경찰에서는 고소장을 내도 도대체 수사가 진척이 안 된다는 고소인이나 변호사들의 볼멘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경찰의 ‘LH 사건’ 수사에 대한 국민적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여권에서 먼저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 협력’을 강조하고 나선 걸 보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검찰개혁이고, 무엇을 위한 수사권 조정이었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해당 사건과 관련된 혐의들은 개정된 검찰청법에 따르면 대부분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공수처는 또 어떤가. 고위공직자 범죄라는 난이도 높은 범죄를 수사해야 될 기관이지만 공수처검사나 수사관을 모집하면서 검찰 출신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다 보니 한 번도 수사를 해본 경험이 없는 변호사들이 법무연수원에서 검사 출신 변호사에게 2주 내지 한두 달가량의 속성 실무교육을 받고 수사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정부는 검찰개혁의 중요한 이유로 ‘인권 보호’를 꼽았지만 정작 경찰과 공수처가 인권을 보호해준 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 폭행’으로 무겁게 처벌받았어야 할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과 공수처장 관용차로 ‘황제 에스코트’를 받은 이성윤 서울고검장이었다.


비록 이번 입법예고 된 개정안에서는 빠졌지만 추미애 전 장관이 폐지했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을 부활시킨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 신설 방안이 직제개편안 초안에 담겼던 점이나 조국 전 장관 시절 검찰의 자체개혁안을 마련하라는 압박에 따라 폐지됐던 부산지검 반부패수사부가 부활된 것 역시 금융범죄나 부산 지역 부패범죄에 대한 대응능력이 현저히 감소됐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과연 지금의 검찰개혁이 제대로 방향 설정이 됐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볼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해온 검찰개혁은 검찰의 힘을 빼는데 집중돼왔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 박상기 전 장관 때부터 추 전 장관, 박범계 장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법무부는 ‘형사부 강화와 형사부 출신 검사들의 우대’를 인사의 중요 원칙으로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번 직제개편을 통해 ‘말(末)부’를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 형사부가 아예 직접 수사를 못하게 하고, 말부 형사부 역시 검찰총장의 승인을 얻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걸 보면, 과연 그동안 형사부를 강화하겠다는 외침에 진정성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이른바 ‘윤석열 사단’을 비롯한 특수부 출신이나 공안부 출신 등 잘 나가던 검사들을 한직으로 몰아내기 위한 구실은 아니었는지 말이다.


결국 이번 직제개편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이른바 ‘검수완박’과 수사청과 공소청 신설이라는 최종 목표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조치로 보인다. 개혁도 좋지만 개혁의 속도도 중요하다. 개혁 방안을 추진하다 아니다 싶을 때는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방향을 제대로 고쳐 잡는 것도 필요하다.


당장 지금은 과도한 수사 부담으로 한계에 다다른 경찰과 부족한 수사 경험으로 이런저런 미숙한 모습을 드러낸 공수처가 한시라도 빨리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바뀐 수사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게 먼저다.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검찰이라는 조직 자체를 없애고 수사청과 공소청을 만들어서 검사들을 헤쳐모이라고 하고 또 다시 수사 경험이 없는 변호사들을 수사청검사로 선발하면, 여권 내 강성 검찰개혁론자들의 속은 시원하겠지만 그 사이 만연해진 범죄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라는 걸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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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진 법조팀장(부장).


최석진 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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