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日정부, 한국내 재산 공개하라”
압류-매각 강제집행 사실상 개시
3월 다른 재판부는 “사법 신뢰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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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국가에 의한 강간, 고문을 자행했으므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배상금 강제집행 신청은 적법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1단독 남성우 판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가 확정된 일본 정부에 대해 9일 “한국 내 재산 목록을 공개하라”고 명령하며 이같이 밝혔다.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는데도 일본이 이에 응하지 않자 법원이 일본의 국내 재산을 압류, 매각하기 위한 강제집행 절차를 사실상 개시한 것이다.
남 판사는 1월 일본을 상대로 한 위안부 피해자 손해배상 판결에서 피해자 승소 판결을 했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당시 부장판사 김정곤)의 논리와 거의 일치하는 판단을 내렸다. 우선 외국 정부가 위안부 운영 등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경우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의 원칙인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봤다. 남 판사는 또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는 각자의 권한을 행사하고 서로 견제한다. (일본의 패소) 판결에 따른 대일관계의 악화 등은 행정부의 영역”이라며 법리적 판단만으로 강제집행 신청이 적법한지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남 판사의 이날 판결은 다른 재판부가 불과 석 달 전인 3월에 내렸던 결론과 정반대다. 위안부 사건과 관련해 잇달아 엇갈린 판결이 나오면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새롭게 구성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양호)는 ‘패소한 일본 정부가 소송 비용도 부담하라’는 1월 판결에 대해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재산을 압류, 매각하는 등 강제집행을 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고 우리 사법부의 신뢰를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 재판부는 7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도 피해자들이 승소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상반된 결론을 내면서 “강제집행까지 나아갈 경우 서방세력의 대표 일본과의 관계가 훼손된다”고 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국 내 재산 목록을 공개하라”는 법원 결정이 나오긴 했지만 재산 명시 명령은 강제집행의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일본이 재산 명시 명령문을 송달받지 않고 시간을 끌 경우 재산 명시 명령은 취소된다. 재산 명시가 이뤄진 뒤에도 재산 압류, 매각 등 절차마다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법원이 압류, 매각에 나서더라도 2, 3년이 걸릴 수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경우도 2018년 12월 일본 기업의 국내 재산 압류를 신청했지만 아직 법원의 매각명령이 내려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한국 내 자산으로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주한 일본대사관 및 일본공보문화원 건물과 부지, 대사관 차량 등이 꼽힌다. 하지만 대사관 건물과 부지, 차량 등은 공관과 내부 비품류, 수송수단에 대해 강제집행을 면제하는 빈협약에 따라 강제집행이 어렵다. 강제집행을 하려면 공관과 무관한 다른 자산을 찾아야 하지만 외교부가 이를 파악하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준 speakup@donga.com·최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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