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011년 말 정계에 입문한 뒤 선거에서 한 번도 이겨본 적 없었다. 하지만 11일 국민의힘 대표 선거에서 난생처음으로 1위를 했고, 36살의 나이로 헌정사상 최연소 제1야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 대표는 서울 성동구에서 태어나 노원구 상계동의 반지하 빌라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때만 해도 그의 진로는 이공계 였다. 2003년 2월 서울 과학고를 조기졸업하고, 그해 9월 미국 하버드대에 입학해 컴퓨터과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이 대표는 통화에서 “집안 사정이 유복했던 한국인 친구들은 방학마다 여행을 떠났는데, 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교내 컴퓨터 수리소에서 시간당 8달러를 받고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취업 대신 교육봉사단체인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에서 저소득층 학생을 무료로 가르쳤다.
지난 2011년 12월 27일 당시 한나라당 첫 비상대책위 회의 모습.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준석 전 최고위원(당시 클라세스튜디오 대표).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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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당대표 경선 결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
이런 활동이 당시 유력 대선 주자였던 박근혜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 비상대책위원장의 눈에 들어 2011년 12월 26살의 나이에 비대위원에 깜짝 발탁됐다. 비슷한 시기 영입된 손수조 전 새누리당 미래세대위원장과 함께 ‘박근혜 키즈’로 불렸다. 2012년 대선에선 공식 직함은 없었지만 유세 현장에서 청년층 공략에 나섰다. 박 전 대통령 당선 뒤인 2014년에는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을 맡아 ‘당내 상설인사검증 기구 설치’ 등 5대 어젠다 발표를 주도했다. JTBC ‘썰전’, tvn의 ‘더 지니어스’ 등 각종 시사·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2016년 20대 총선에선 서울 노원병에 출마해 국회 입성을 노렸다. 대선 주자였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맞붙는데, 당시만 해도 정치권에서 두 사람의 대결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보던 시기였다. 이 대표는 31.3%의 득표율로 52.3%를 얻은 안 대표에게 완패했다.
2016년 말 박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 접어들면서 그의 정치 인생도 변곡점을 맞았다. 이 대표는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에 합류했고, 이후 바른정당이 국민의당과 합당해 탄생한 바른비래당에서 안 대표,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한솥밥을 먹었다. 2018년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서 안철수계와 유승민계의 공천 충돌 끝에 이 대표가 출마했지만, 민주당 김성환 후보에게 패해 두번째 쓴 잔을 마셨다. 하지만 같은해 9월 바른미래당 전당대회에서 손학규 대표, 하태경 의원에 이은 3위로 최고위원에 선출되며 숨을 돌렸다.
지난해는 이 대표 정치 인생의 최대 위기 순간이었다. 그해 1월 손학규 대표 측의 바른미래당 ‘당권파’와 갈등 끝에 유 전 의원과 함께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새로운보수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4월 총선을 앞두고는 보수 통합을 명분으로 미래통합당에 합류해 서울 노원병에 세번째 도전장을 내밀었다. 결과는 또 낙선이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준석의 정치 생명이 다 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0선 중진’이라는 별명도 이때 부각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오종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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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대표는 총선 직후 일부 보수층을 중심으로 ‘사전투표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지자 적극적으로 반박하면서 존재감을 알렸다. 올해 초에는 여성 할당제 폐지, 반페미니즘 앞세운 논쟁적 발언으로 젠더 이슈를 주도했다.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오세훈 후보 캠프의 뉴미디어본부장을 맡아 ‘일반인 청년 연설’을 기획하는 등 당선을 도왔다.
그런 그가 지난달 돌연 국민의힘 대표 선거에 출사표를 던지자, 정치권에선 “나경원 전 의원과 주호영 의원의 양강 구도 속에서 빛을 발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며 돌풍을 일으키더니, 결국 11일 역대 최연소 제1야당 대표로 선출됐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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