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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김화진칼럼]하버드대 도서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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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머니투데이

김화진 /사진=김화진


하버드대학교 도서관은 미국 연방의회도서관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다. 장서는 2000만권이 넘고 1년 예산이 우리 돈 거의 3000억원이다. 중앙도서관은 이름이 와이드너(Widener Library)다. 1915년에 개관했다. 1912년 타이태닉호 사고로 사망한 1907년 졸업생 해리 와이드너를 기리는 이름이다.

해리의 조부 피터 와이드너는 필라델피아의 거물 기업인이었다. 푸줏간집 아들로 태어나 시내전차사업으로 성공했다. US스틸과 스탠더드오일의 주요 주주이기도 했다. 역사상 가장 부자였던 미국인 순위 29위에도 올랐던 인물이다. 아들 조지 와이드너는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아 잘 운영했다.

해리는 양친과 함께 타이태닉에 승선했다. 부친이 필라델피아에서 새로 인수했던 리츠칼튼호텔에서 일할 셰프를 구하러 같이 파리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사고 당일 와이드너 부부는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을 초대해서 저녁을 같이 했다. 부자는 사망하고 어머니 엘리노어 와이드너만 살아남았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와이드너 부자는 구명보트에 자리를 잡고 탈출할 수 있었는데 해리가 어렵게 구해 읽고 있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1598년판 수필집(Essays)을 찾으러 객실로 돌아갔고 조지 와이드너가 그 뒤를 따라갔다고 한다.

해리 와이드너는 희귀본과 귀중본 수집에 열중했다. 젊은 나이였지만 일찌감치 유언장을 작성해뒀는데 유언장에는 어머니의 판단에 따라 자신의 장서를 하버드가 잘 간수해줄 것으로 여겨지면 자신의 이름을 딴 컬렉션으로 기증해달라고 돼 있었다. 해리는 사고가 나기 그다지 오래지 않은 시점에 한 친구에게 자신은 훌륭한 도서관과 함께 기억됐으면 좋겠는데 그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전해진다. 이제 해리의 책 3300권은 모두 와이드너 도서관 중앙에 있는 와이드너 기념관에 보관돼 있다.

엘리노어 와이드너가 지금 가치로 약 7000만달러를 하버드대에 기부했다. 와이드너도서관은 하버드가 장서 4만4000권을 가지고 있던 1841년에 세워진 고어 홀을 대체한 건물이다. 고어 홀이 마련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장서가 점점 늘어나 학교는 애를 먹었다. 카네기에게 도서관 증축에 필요한 재원 기부를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처음에는 고어 홀의 증축을 생각했는데 엘리노어는 새 건물을 짓기로 했다.

완공된 와이드너는 1915년 6월 졸업식 직후에 행사를 거쳐 개관했다. 엘리노어가 로웰 총장에게 도서관 열쇠를 인도했고 장서 1번으로 존 하버드 목사가 1638년 개교 시 기증했던 400권 중 유일하게 보전됐던 책이 입고됐다. 이 책은 1764년에 브릭스라는 학생이 대출했다가 밤새 도서관이 화재로 전소돼 반납기일을 넘기고 고민 끝에 총장에게 반납했던 바로 그 책이다. 홀요크 총장은 늦게 반납했다는 이유로 브릭스를 퇴학시켰다. 하버드에서 가장 못생긴 빌딩 이름이 홀요크빌딩이었다. 학생들의 복수라고 한다.

해리에게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었다. 여동생 이름은 어머니와 같은 엘리노어다. 은행가 피츠 딕슨과 결혼했다. 그 아들 피츠 딕슨 2세는 큰 외삼촌처럼 하버드를 나왔고 작은 외삼촌이 자녀가 없어 패밀리 재산을 전부 물려받았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구단주였고 사회사업가였다. 딕슨 2세는 필라델피아 지역 모든 대학들을 재정 지원했고 특히 수십 년 동안 체스터에 있는 한 대학교를 집중 지원했는데 1972년에 그 어머니를 기리는 뜻에서 학교의 이름이 와이드너대학교로 개칭됐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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