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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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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타국적기 강제 착륙’ 불똥… 제재 나선 EU·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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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벨라루스機 영공·공항 진입 금지

승객 “공포·혼돈” 휩싸여 기내 아수라장

반체제 언론인 패닉 “사형이 날 기다려”

EU, 임시 정상회의 경제 제재안 합의

바이든 “충격적인 사건… 상응 조치 마련”

러 외교부 “美도 전력 있어 ‘내로남불’”

벨라루스 “하마스 테러 위협 때문” 해명

세계일보

지난 23일(현지시간)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 공항에서 공항 직원이 폭발물 탐지견을 데리고 아일랜드 라이언에어 소속 여객기 화물을 수색하고 있다. 이 여객기는 벨라루스 당국에 의해 강제착륙을 당했다. 민스크=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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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벨라루스 민스크 공항으로 방향을 돌려) 착륙한 뒤에도 승객들은 30분 동안 내리지를 못했어요. 폭탄이 설치돼 있었다면서 왜 대피시키지 않았을까요.”

강제 착륙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출발 11시간 만에 원래 목적지 리투아니아에 도착한 사울류스 다나우스카스는 24일(현지시간) 현지 온라인 매체 델피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불만을 터트렸다. 여객기는 민스크에 내린 뒤 소련 시절을 연상케 하는 녹색 제복을 입은 관료들과 개, 소방관 등에 둘러싸였다. 다나우스카스는 “그들(관료 등)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함께 그리스 아테네를 출발한 라이언에어 소속 여객기 탑승객들도 강제 착륙 당시 공포와 혼돈에 휩싸였다. 여객기는 리투아니아 빌뉴스 공항에 착륙할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유턴을 했다. 기내에선 15분간 아무런 안내방송도 나오지 않았다. 리투아니아인 승객 라셀 그리고리에바는 미국 ABC방송에 “비행기가 충돌하는 줄만 알고 패닉에 빠졌다”며 “고도를 급격히 낮추며 거의 내리꽂히는 듯했다. 굉장히 폭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아수라장에 빠진 126명의 승객 중 비행기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명확히 아는 사람은 한 명뿐인 듯했다. 1994년부터 27년째 장기 집권 중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에 날을 세워온 반체제 언론인 라만 프라타세비치(26)였다. 그는 겁에 질린 채 “벨라루스에 가면 사형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앞줄에 앉았던 승객이 전했다.

프라타세비치는 민스크에 도착하자마자 러시아 국적 여자친구(23)와 함께 체포됐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나머지 승객들은 3시간 동안 어두운 복도에서 물과 음식도 제공받지 못한 채 대기해야 했다. 삼엄한 감시 속에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다. 한 승객은 “우리는 죄수 취급을 받았다”고 했다. 이들은 인터넷 접속 후에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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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기 여행 중 체포된 벨라루스 야권인사 프라타세비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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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체제 인사 구금을 위해 전투기까지 동원해 외국 국적 항공기를 자국에 강제 착륙시킨 벨라루스에 대해 서방 국가들은 즉각 행동에 나섰다. 이번 일을 ‘하이재킹’(공중납치)으로 규정한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임시 정상회의를 열고 벨라루스 국적 여객기의 역내 영공 비행 및 공항 접근을 금지하는 경제제재안에 합의했다. 또 역내 항공사들에 벨라루스 상공 비행을 피할 것을 당부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의 독재를 도운 관료·정치인·기업에 대한 추가 제재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그들이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가지고 러시안룰렛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충격적(outrageous) 사건”이라고 강력 규탄하면서 “EU의 제재 결정을 환영하며 미국 역시 이에 상응하는 적절한 방침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벨라루스의 몇 안 되는 동맹국 중 하나인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은 “흥분해서 성급하게 평가하지 말자”고 했다.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페이스북에서 “서방이 벨라루스 영공에서 일어난 일을 ‘충격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충격적”이라고 조롱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2013년 국가 기밀 폭로자 에드워드 스노든이 탑승했다고 판단한 볼리비아 대통령 전용기를 오스트리아에 멈춰 세운 사례를 들며 ‘내로남불’이라고 꼬집었다.

벨라루스 당국은 강제 착륙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테러 위협 탓으로 돌리며 기존 ‘폭발 위험’ 주장을 이어갔다. 하마스는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았다며 부인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벨라루스 측 주장을 “전혀 믿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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