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한 딸이 사라졌다
1987년 7월 당시 초등학교 2학년 생 김현정 양은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에 갔습니다. 점심때가 돼도 돌아오지 않아 아버지가 딸을 찾아 나섰죠. 하지만 딸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현정 양의 소식은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5개월이 지났습니다.
딸을 찾았다. 그러나…
다섯 달 쯤 지나 동네 야산에서 초등학생 용 줄넘기와 뼈가 발견됐다는 동네 주민의 신고가 경찰에 접수됩니다. 담당 형사 계장이 현장에 출동해 줄넘기와 뼈를 확인하죠. 현장에서는 현정 양의 것으로 보이는 속옷 등 유류품도 발견됩니다.
SBS '끝까지 판다' 팀이 입수한 수사 기록 속 경찰의 증언은 충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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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덮고 살인범이 알려준 진실
현정 양을 살해한 범인은 연쇄살인범 이춘재였습니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2019년 겨울, 다른 범죄로 수감 돼 있던 이춘재가 입을 열면서 진상이 드러났죠. 이른바 '화성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엉뚱하게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 씨는 최근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기도 했죠.
이번 사건 역시 이춘재 입을 통해서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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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얼굴 (2020년 11월 검찰 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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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춘재가 입을 열지 않았다면 경찰이 30년 간 은폐한 현정 양 사건은 여전히 실종 사건이었을 겁니다.
딸을 기다리며 30년을 버텼다
아버지는 딸이 사라진 것이 강력 사건 일 가능성을 제기하며 수사 방향을 바꿀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혹시라도 딸이 살아있어서 연락해 올지 모른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사도 못 가고 전화번호도 바꾸지 못한 채 30년을 그 자리에서 버텼습니다.
시끄러울까봐 덮었다는 경찰
경찰은 왜 30년 간 진실을 숨겨 왔을까? 이유는 '시끄러울까봐' 였습니다.
"서로 금기시하는 분위기였다." (A 경찰관)
"말석이라서 감히 이야기 못했다. 나만 입 다물면 된다고 생각했다." (B 경찰관)
"또 연쇄 살인으로 시끄러워질까 봐…." (C 경찰관)
당시 수사팀 10여 명이 시신 발견과 은폐 사실을 알고 있었던 정황이 드러났지만, 경찰은 형사 계장 이 모 씨와 2009년 숨진 순경 등 2명만 입건했습니다. 함께 제출한 의견서가 더 황당합니다. '이들이 살해 사실을 영구히 감추려 했다기보다는 일시적 업무 부담감에서 벗어나 나중에 수사를 재개하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재개 한다 던 수사는 30년 간 다시 시작되지 않았고, 살인자의 자백으로 재개됐습니다.
가해자는 있지만 처벌은 없다
진실이 드러나자 경찰청장은 사과했고 유족을 위해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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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은 30년 전 시신이 발견된 걸 알고도 숨긴 경찰들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돌아온 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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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경찰의 시신 은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때로부터 5년이 지났기 때문에 정부의 배상 책임이 없다는 뜻입니다.
공권력을 이용한 범죄는 진실이 드러나는 것도 힘들고 진실이 드러나도 시간이 한참 흐른 뒤라 '공소시효'라는 벽에 막히게 됩니다. 공소시효가 사회정의에 반하고 국가폭력에 면죄부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윱니다. 국가폭력 피해자가 설 자리는 정말 없는 걸까요?
▶ [취재파일] '사람이 먼저'라는 정부에 그의 자리는 없었다
장선이 기자(su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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