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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10만원 아끼려다 아들 죽었다"…스물셋 청년 이선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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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경기 평택항에서 일하던 이선호(23)씨가 사망했다. 이씨는 아버지를 따라 아르바이트로 평소에는 검역 관련 일을 했다. 그러다 이날 컨테이너 업무에 투입되자마자 사고를 당했다. 사고가 난 지 20여일이 지났지만, 유족들은 아직 발인을 못 했다. 사측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 인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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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선호씨의 빈소. 여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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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는 13일 이씨 빈소를 지키던 아버지 이재훈씨와 친척, 친구, 동료 등을 만났다. 이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선호씨의 입장에서 지금까지의 그의 삶과 사고 이후의 상황을 되돌아봤다.



스물셋 이선호씨의 이야기



'청년 노동자'로 불리는 게 아직은 좀 어색해요. '전태일 열사' 같은 비장한 느낌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맞는 말이지만, 학교에 다니며 일을 해와 스스로를 알바하는 평범한 대학생으로 생각해왔습니다. 이재훈의 아들, 누군가의 친구였지요. 저는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습니다. 그리고 2019년 12월 15일, 해군 평택 2함대에서 전역했습니다. 집 앞에서 군 복무를 해서 아버지는 제가 "군대에 간 건지, 집 근처에 놀러 간 건지 모르겠다"고 하실 정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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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2함대 사령부 앞. 이선호씨와 아버지 이재훈씨. 이재훈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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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학기 복학했지만,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이 시작됐고, 그 무렵 인력사무소 작업반장으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평택항에서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그게 1년 넘게 이어졌네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자립심을 강조했습니다. '부산 사나이' 아버지는 조금 엄격했지만, 어머니는 애정을 쏟아주셨지요. 대학을 다니면서도 용돈은 한 달에 30만원 이상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돈이 더 필요하면 이렇게 일을 하면서 충당했습니다.



"회사가 일당 10만원 아끼려다 아들이 죽었다"



제가 사고를 당한 날, 아버지는 누워있는 저를 보고 기절했습니다. 평소 검역 업무를 해오다 이날 갑자기 컨테이너 관련 일을 맡게 됐습니다. 안전 교육은 없었고, 안전 장비도 못 받았습니다. 위험의 외주화, 불법 파견 등 사고 원인을 두고 여러 가지 원인이 나오지만, 아버지는 "일당 10만원 아끼려다 아들이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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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선호씨 사고가 난 개방형 컨테이너. 이선호씨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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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하던 곳 근처에 일당 10만원의 안전관리자나 신호수(하역이나 적재 신호를 전달) 중 한 명이라도 현장을 조율했으면 제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요. '부산 사나이'로 쉽게 눈물 보이지 않는 아버지는 제가 떠난 뒤로는 사람들 앞에서 자주 웁니다. 저한테 "미안하다"고 하시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웁니다.

수능 끝난 뒤 친구 용탁이, 도현이와 일본 오사카 여행을 가기 위해 집 근처 마트에서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200만원을 벌었습니다. 생애 첫 월급이었습니다. 부모님께 10만원씩 드렸죠. 아버지는 그때 제가 드린 오만원권 두 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자식이 처음으로 번 돈을 감히 쓸 수 없고 평생 기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돈을 볼 때마다 저를 그리워하시겠지요.



일 마치면 같이 소주 한잔 기울이던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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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문재인 대통령 방문 직후 빈소에서 만난 아버지 이재훈씨. 여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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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저와 평택항에서 일을 마친 뒤 소주 한잔하던 때가 너무 그리우시다고도 하네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어머니가 하는 곱창집에서 가족끼리 술잔을 부딪치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면 그날 피로도 싹 가셨으니까요. 술 한잔하고 집에 가면 샤워기가 하나뿐이라 늘 아버지랑 같이 장난치며 샤워를 하곤 했는데 그때는 아버지가 장난치는 게 싫었는데 지금은 자꾸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는 빈소에 친구들이 150명 넘게 와서 놀라셨습니다. 집에서는 조용한 편이었지는 친구들 앞에서는 가끔 부산 사투리도 쓰며 분위기를 띄우는 걸 아버지는 몰랐다고요. 가끔 몸이 불편한 큰 누나 얘길 하면서 친구들 앞에서 울기도 했지만요.

아버지는 제가 공무원 시험을 보거나 기술을 배우길 원했습니다. 저는 공무원은 몰라도 기술은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고민 많은 청춘이었지만 친구들과 온라인 게임 리그오브레전드(롤)를 하거나 가끔 술잔을 부딪치며 스트레스를 잊기도 했습니다. 친구들도 저와의 추억을 그리워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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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호씨와 친구들. 친구 배민형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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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 방지 약속 이어지나 지난해 882명 사망



13일에는 제 빈소에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했습니다. 대통령도, 아버지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는 "제발 이런 사고를 끝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2018년 12월 김용균 형이 사망했을 때도 공무원, 정치인들의 재발 방지 약속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계속됐고 저도 사고를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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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경기도 평택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선호 씨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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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나 용균이형이 비정규직으로 서울에 있는 명문대를 못 나오고 지역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젊은이라 관심이 덜해서 그런 걸까요. 제 부모님이 사회 유력인사가 아니라 그런 걸까요. 지난해 882명이 저처럼 일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328명을 떨어져 죽었고, 98명은 껴서 죽었습니다. 저처럼 깔리거나 뒤집힘 사고를 당한 이들도 64명입니다. 올해 3월까지 일하다 죽은 사람은 238명에 이릅니다.

사고 이후 노동부는 제 작업 환경을 조사한 뒤 12건의 시정 명령을 내렸다고요. 그날 작업계획서가 작성되지 않은 사실도 확인했다고 들었습니다. 매일매일 누군가 일하다 죽어서 그런 건지 언론도 며칠간 제 죽음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제 친구가 SNS에 알린 후에야 뒤늦게 기사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뉴스로만 보던 일, 제 친구가 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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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고 김용균 씨를 추모하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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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민형이가 빈소에서 말하더라고요. "뉴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는 남의 일인 줄 알고 안타깝다고만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고, 제 친구가 그렇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라고요. 누나도 사촌 창석이 형도 제 사고와 죽음을 알리기 위해,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인터뷰를 하고 SNS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원청업체는 유족보다 국민에게 먼저 사과를 했고, 아버지에게 사과하고 합의하기 이전에 보상을 먼저 언급해 가족들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을 인정하기 전까지 제 장례는 끝나지 않겠지요.



또 다른 이선호 나오지 않길



제가 사고를 당한 이후에도 며칠 사이 일터에서 누군가 떨어져 죽고, 끼어 죽고, 부딪쳐 죽었습니다. 얼마 전 대통령께서는 산재 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공약을 이행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하셨지요. 죽음의 사슬을 언젠가는 끊을 수 있도록 부디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다른 김용균, 또 다른 이선호가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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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선호씨의 어릴 적 모습. 이재훈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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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PC방에서 롤도 하고 싶고, 좋아하는 짬뽕도 먹고 싶습니다. 일을 마치고 아버지와 소주 한잔하고 싶고 엄마, 누나들, 조카들도 그립습니다. 코로나가 끝나면 친구들과 해외여행도 가고 싶었고요. 살도 좀 빼고 근육을 단련하려고 헬스장도 끊었는데 더는 다닐 수 없게 됐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 건강 잘 챙기세요.

다시는 저와 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빈소를 찾아주셨던 높으신 분들이 부디 저를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죽음이 잊힐 뻔한 스물세 살 청년 노동자 이선호를요.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국민의힘 김웅 의원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 자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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