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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The W]"함께 키우니 같이 선택해야죠"...성(姓) 물려주는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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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지현 기자] [The Weekend]아빠 대신 엄마 성(姓)으로①..."세상이 잘 바뀌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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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씨 가족사진 /사진=이수연씨 제공



"신기해하세요. 멋있다는 반응도 있고요."

아빠 박기용씨(44)와 엄마 이수연씨(40)는 사이에서 태어난 딸의 이름은 '이제나'(2)양이다. 부모는 딸에게 어머니의 성(姓)을 물려줬다. 주변에 이 사실을 알려주면 신기해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남편에 대한 칭찬이 많다고 했다.

물론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건 아니다. 아이가 어린이집, 학교에 간 뒤 선생님으로부터 가족관계에 대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며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씨는 "연령대가 높으신 분들 중엔 '세상이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거부감을 표시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럴 때 이씨는 '세상이 잘 바뀌는 중입니다'라고 답한다고 한다. 이씨는 "누군가를 배제하는 결혼,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가족에 대한 개념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다"고 한다.


"왜 꼭 아빠 성을 따라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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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서 /사진=정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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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을 자식에게 주는 것은 남편 박씨가 먼저 제안했고, 이씨는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이에게 엄마 성을 물려주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식구들 중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어서다.

이씨는 "시어머니의 경우 '다시는 볼 생각하지 마라'는 말도 하셨다"며 "한 번도 살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가능성이라 놀라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장손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화를 내고 섭섭해하는 가족들도 있었다.

하지만 부부의 결심 만으로 어머니의 성을 자식에게 물려 줄 수는 없다. 특히 한국은 민법에서 '자(子)는 부(父)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명시돼 있다. '부성우선주의 원칙'이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부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었고, 이들이는 이 방법을 택했다. 아이 출산 후 진행한 혼인 신고에서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질문에 부부는 '예'라고 체크했다.

이와 함께 '부부협의서'를 제출했다. 협의서는 인터넷을 통해 다운받거나 구청 등에서 제공받을 수 있다. 부부 양쪽 모두 서명을 했다. 아빠 성을 따를 때는 전부 거치지 않아도 되는 절차들이다. 이 과정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이씨는 "출생신고가 아닌 혼인신고 때 이를 결정해야 한다는 건 너무 불편한 사실"이라며 "아직 아이도 안 태어났고, 심지어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부부에게 '아이 성은 뭐로 하실래요?'라고 물으면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씨? 차씨?…선택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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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수연씨 부부의 결혼사진 /사진=차수연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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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직접 행동에도 나섰다. 결혼 3년차 차수연씨(32)와 함께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 페이스북 페이지를 지난해부터 운영 중이다. 차씨는 앞으로 자신의 성을 아이에게 물려주기로 결심한 상황이다. SNS엔 뜻을 같이하는 100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엄마 성을 물려주겠다하면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차씨는 되려 단순한 이유에서 결심을 했다고 한다. 차씨는 "제 성이 남편 성인 김씨보다 특이해서 이름 짓기에 더 예쁘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성 보다는)가족이 함께 있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지난달 27일 '부성우선주의 원칙' 폐기 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전통적 가정 개념이 파괴되고 가정 내 불화와 분열이 생길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내놨다. 장기간의 협의가 필요하다며 신중론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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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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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씨와 차씨는 이제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이제 막 17개월 된 터라 엄마 성을 물려받은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씨는 대신 올해 11살이 되었다는 조카의 말을 전해줬다.

이씨는 "아이를 임신했을 때 아기 이름은 뭐로 할 거냐, 성은 무엇이냐는 조카의 질문에 '삼촌이나 숙모 성 중 고를 생각이다'고 말했더니 '숙모가 낳을 거니까 숙모 성으로 해요'라고 하더라"며 "그 말이 정말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이들 시각에선 아빠와 엄마가 같이 아이를 낳고 키우니 둘 중 한 명의 성으로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라며 "오히려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잘 이해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flo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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