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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옆집 빌린뒤 땅굴 팠다…中 한복판 유물 도난사건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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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공안, “오월국 왕릉 도굴,유물 175점 도난...39명 체포”

수사 1년 만에 공개...“국민 비난 두려웠나” 비판

전문가 “도굴 최소 20일 이상 필요...당국 책임 피할 수 없어”

묘실까지 파고든 도굴, 내부자 연루됐나 의혹도

중앙일보

항저우시에 위치한 오월국 태조 전류왕 고분. 시내 번화가에 위치해 있으며 관청과 대학, 상가 등이 둘러싸고 있다. [웨이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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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가급 고분에서 의문의 도굴 사건이 발생했다.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왕릉 내부를 파헤친 것이다. 하지만 2년이 지나 뒤늦게 범행 사실이 공개되면서 당국의 문화재 관리 부실과 함께 내부자 연루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중국 항저우시 공안국은 12일 오월국 왕릉 도굴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중국 당나라 멸망 이후 5대 10국 중 하나였던 오월국(吳越, 907~978)의 태조였던 전류왕(錢鏐,852~932)의 왕릉이 도굴돼 관련 용의자 39명을 체포했고 도난당한 문화재 175건을 전량 회수했다는 것이다. 전류왕은 당나라 말기 절도사로, 멸망 이후 항저우에 수도를 정하고 오월국을 세웠다. 왕릉은 그가 죽은 935년 만들어졌다. 중국 국무원은 2001년 내부 부장품의 보존 상태가 뛰어하고 역사적 가치가 높다며 왕릉을 국가 중점 문화재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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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공안이 도난 문화재 일부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은 전류왕의 관 안에서 들어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 관대. [웨이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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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사건이 이미 2년 전인 2019년 5월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공안국은 사건 발생 후 9개월이 지난 2020년 3월 광둥성 광둥성 인근에서 오월국 왕릉 부장품으로 추정되는 도난 문화재가 거래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 지난해 5월 용의자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수사 결과를 1년 가까이 지나 공개한 셈이다. 앞서 지난달 오월국 왕릉이 도굴됐다는 사실이 중국 소셜네트워크미디어(SNS)에 익명의 글을 통해 알려졌다. 이후 공안이 수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문화재 도난에 대한 국민적 비난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우려해 발표를 지연한 것 아니냐”는 네티즌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더욱이 도굴된 왕릉이 항저우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 의혹을 키우고 있다. 왕릉 수백미터 인근에 구청 청사가 들어서 있고 주변에는 대학과 상가, 주택들이 둘러싸고 있다. 국가 문물로 지정되면서 관리사무소와 CCTV도 곳곳에 설치돼 있는데 왕릉 도굴을 당국이 전혀 눈치채지 못할 수 있냐는 것이다.

팡밍(方明) 저장성 문화재연구소 부소장은 “도굴 사실을 듣고 고분으로 달려가 사건 현장을 답사해 본 결과, 도굴 구멍이 묘실로 직행하는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저장성 고고학 전문가인 왕안은 “이런 정도의 도굴 작업은 하루 이틀에 되는 일이 아니다. 최소 20일 이상은 필요할 것”이라며 “감독당국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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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국 왕릉에 함께 묻힌 2대 왕후의 묘실 내부. [웨이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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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도굴 수법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이 눈길을 끌고 있다. 중국 매체 차이나뉴스위클리가 익명으로 인터뷰한 고고학자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무덤 도굴을 ‘낙양삽’을 사용해 구멍을 뚫는데 이 경우는 달랐다”고 한다. 낙양삽은 중국에서 고고학 발굴에 사용되는 삽의 고유 명칭이다. 삽 끝이 ‘U’자 모양으로 돼 있어 흙을 파내기 쉽게 돼 있다. 그는 “오월왕릉 도굴은 목표 장소가 명확했다. 야외에서 한 것이 아니라 옆에 작은 집을 빌린 뒤 지하도를 뚫어 파내려 간 구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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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국 왕릉에 함께 묻힌 2대 왕후 마씨의 관. 발굴 뒤 묘실은 봉쇄됐다. [웨이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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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전문가는 도굴꾼들이 전류왕의 묘실이 있는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했다. 왕릉은 외부만 사적지로 조성됐을 뿐 내부의 묘실 위치 등은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왕릉과 관련된 내부 관계자가 정보를 넘겨주지 않는다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을 것으로 봤다.

2017년부터 왕릉을 둘러싼 역사 유적 공원 조성 계획이 수립돼 공사가 시작된 점도 의혹 대상이다. 공사를 위해 왕릉 내부 구조가 검토됐고 이 과정에서 자료 유출과 함께 도굴 가능성이 발생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공안은 뒤늦게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도 도굴꾼을 일망타진했다고 밝혔을 뿐 관계 기관에 대한 조사나 처벌은 하지 않았다.

베이징=박성훈 특파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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