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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기후농민 10만 양병 전략'에 재 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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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승옥 햇빛학교 이사장 ]
사라진 24절기

기후가 변하고 있고 이미 변했다는 것을 농민들만큼 실감하는 사람도 없다. 반세기 넘게 매일같이 농사일기를 써온 몇몇 성실한 농부들은 24절기는 이제 박물관에나 보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한다.

몇 십년 전만 해도 절기가 되면 하루 이틀 상관으로 절기에 딱 맞는 날씨가 찾아왔다. 대한에는 대한 추위가 찾아왔고, 곡우에는 봄비가 자주 와서 한해 농사를 풍성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음력 3월 24일)는 그야말로 여름 날씨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 입하인 5월 5일 어린이날, 내가 살고 있는 충남 공주의 마곡천 숲속 새벽 온도계는 빨갛게 영하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 농민들은 해마다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널뛰기 날씨에 속수무책으로 손을 놓고 있을 따름이다. 절기는 사라지고 시도 때도 없는 냉해와 우박, 가뭄, 폭우 피해는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다. 기후는 이제 농부의 최대 난제로 떠오르고 있다.

2021년 5월 5일, 하와이 마우나로아 관측소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420.14ppm이었다. 4월 평균은 419.05ppm(2020년 4월 평균은 416.45ppm)이다.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서구 산업화 이전까지 1만 년 동안 농업사회의 이산화탄소 평균 농도는 약 280ppm이었다. 인간이 기르는 곡물과 채소, 과일, 가축들은 이산화탄소 평균 농도의 안정된 기후 조건에서 진화해 온 것들이다. 진화의 긴 시간으로 보면 단 몇 초에 불과한 2~300년 동안 근대 산업화의 자원약탈 경제는 급속한 지구온난화를 판도라의 상자처럼 열어놓고 말았다. 인간이 만든 기후위기는 이런 식량 식물과 가축들의 적응과 진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오늘날 하루에도 몇십 종씩 멸종되는 생명체 목록에 식량자원들이 오르는 순간 인류가 어떤 재앙에 직면할지 상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기후농업 혁명은 필연이다

관행농이란 이름의 석유농업은 식량 작물의 씨 뿌리기에서부터 수확과 보관 운송까지 거의 전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기계농업이다. 당연히 온실가스를 마구마구 배출한다. 고기를 ‘생산’하는 공장식 축산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온실가스 덩어리인 곡물 사료는 온실가스를 뿜어대며 수만km를 이동해 온 것들이다.

물론 온실가스 배출의 상당 부분은 화석연료 발전소와 포스코를 비롯한 대재벌 공장들이다. 그래서 이들에 비해 새 발의 피 정도 배출하는 농민들을 왜 동급으로 모냐는 볼멘 항변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A급, B급, C급으로 체급을 나눈다고 해서 농민들의 온실가스 배출 사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수입농산물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농기계의 배출량, 포장, 보관, 운반 등에 들어가는 배출량까지 계산하고, 여기에 어마어마한 공장식 축산의 배출량까지 포함하면 조사기관에 따라서는 전체 배출량의 20~50%까지 추정하기도 한다.

이런 배출량 계산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사실 농업은 오랫동안 숲과 함께 이산화탄소의 주요한 흡수처였다. 그런데 농업이 돈벌이 산업농업으로 기계화, 화학화, 규모화되면서 관행농이란 이름으로 논과 밭이 오히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주요 배출원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국가와 기업이 농민들에게 석유농업을 강요한 결과였다.

기후위기 시대 이런 석유농업은 한시라도 빨리 서둘러 끝내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관행농은 우리의 손주·손녀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목 졸라 죽여버리는 범죄다. 화석연료가 고갈되어가고 있고, 모든 분야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절반 이하로 혁명에 가깝게 줄여야 한다는 기후 대응 때문에라도 관행농은 지속불가능하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기후농업으로의 생태전환, 돈벌이 농업에서 생명살림의 지역순환 농업 혁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한국 기후농업의 시작, 100kW 미만 소형 영농형 햇빛발전

한국의 농업 농민 현실은 미국이나 유럽과 확연히 다르다. 미국에서 소농이라고 부르는 농민들의 농장 규모는 한국의 어느 대농보다 더 넓다. 일본, 북한, 중국과도 완전히 다르다. 때문에 기후농업으로의 전환 또한 한국의 문화와 정치경제, 한국의 현실에 맞는 새로운 전략과 경로를 찾아내야 한다.

한국에서 기후농업으로의 전환과 동시에 재생에너지로의 전환도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기적처럼 드디어 찾아왔다. 100kW 미만 소형 영농형 유기농햇빛발전이 그것이다.

약 600평의 논밭에 대형 트랙터가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정도로 가로세로 6m, 높이 3m의 지지대를 설치해서 햇빛발전을 설치하면 농사도 지을 수 있고 햇빛 전기도 생산할 수 있다. 일종의 햇빛나누기(solar sharing)다. 소형 영농형 햇빛발전은 소농들에게는 농업소득 이외에 추가로 그보다 더 높은 농민기본소득과도 같은 안정된 전력판매 수익(연간 약 1000만 원)을 보장한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시민발전운동 역사에서 햇빛발전도 확대하고 동시에 농지도 보전하고 농민 소득도 보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기농도 확대할 수 있는 '일석삼사오조'의 기막힌 돌파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수년에 걸친 노력 끝에 마침내 지난 3월 12일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9명의 국회의원이 '농업인 영농형 태양광 발전사업 지원에 관한 법'을 입법 발의하였다. 논란을 불러일으킬 농지법은 건드리지 않는 특별법 형태의 법안이었다.

이 법의 핵심은 △ 농업진흥구역 이외의 농지에서, △ 반드시 영농을 전제로, △ 100kW 미만의 소형을 중심으로 정부가 영농형 햇빛발전의 보급 확산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유기농을 명시하지 않은 점이 아쉽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법안 통과 이후 시행령 등을 통해 유기농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적극 반영하면 된다.

이 법이 시행되면 귀농귀촌인도 급증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또한 해마다 영농을 모니터링하고 유기농을 권장함으로써 한살림과 아이쿱생협 등의 유기농 생산자들과 함께 기후농업의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형 영농형 햇빛발전은 토지공개념과 똑같은 해바람물 공개념에 입각해 공익햇빛발전 사업을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간단하다. 소형 영농형 유기농햇빛발전 설치 농민들을 조합원으로 광역과 기초지자체별로 사회적협동조합을 조직하면 된다. 시군구별로 100명 이상의 농민들이 주체가 된 사회적협동조합이 시군구의원들과 함께 이격거리 조례 개정을 하면 된다. 이격거리는 오히려 더 늘리고 100kW 미만 소형 영농형 햇빛발전에 대해서만 예외를 인정하는 이격거리 조례 개정은 재벌 태양광 떴다방 투기업자들을 원천에서부터 배제할 수 있게 만든다. 이보다 더 좋은 태양광 떴다방 근절책이 어디 있겠는가.

이 법은 한국 재생에너지 역사에서 법안에 주권자인 국민(농업인)을 명시한 최초의 법안이기도 하다. 그만큼 그동안 한국 정부의 재생에너지 보급 확산 정책 대상은 주로 기업, 그중에서도 대재벌 떴다방 기업 위주였다. 한마디로 소형 영농형 유기농 햇빛발전은 기후농업으로 전환하는 '10만 기후농민 양병 전략'이다.

아직도 19세기 레드플래그를 들고 있는 일부 농민단체 지도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일부 농민단체가 영농형 햇빛발전에 대해 무조건 반대를 부르짖고 나선 것이다. 소형이건 대형이건 농업진흥구역이건 이외의 농지이건 막론하고 농지에는 절대 햇빛발전이 들어서면 안된다는 막무가내 주장이었다.

발단은 지난 1월 11일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농업진흥구역에 영농형 태양광을 허용하는 농지법 개정안을 입법 발의하면서부터였다.

사실 대재벌 태양광 떴다방 투기업자들은 대규모 태양광 부지로서 임야가 막히고 농지전용을 통한 태양광 부지 확보 또한 150여 개 지자체의 태양광 이격거리 조례 등으로 어렵게 되자 호시탐탐 농업진흥구역을 눈독 들이고 있었다. 농업진흥구역은 경지정리가 잘 되어 있어 만약 농지법 개정을 통해 이격거리 조례를 무력화시킬 수만 있다면 토목건설 비용도 들어가지 않는 최적의 장소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재벌 태양광 떴다방 투기업자들은 농지법 개정을 통한 영농형 태양광에 막대한 비용까지 들여가며 입법 로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이들은 150여 개 지자체의 시군 의원들을 만나 이격거리 조례를 개정하려는 시도까지 한 바 있다.

전농은 김승남 의원 사무실 앞에서 시위도 하고 반대 토론회도 열고 규탄 성명서도 발표했다. 여기까지는 농민단체로서 마땅히 해야만 하는 정의로운 행동이었다고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은 소형이건 영농형이건 농지에는 무조건 햇빛발전이 들어서면 안 된다는 막무가내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지난 3월 8일, 코로나 때문에 간담회 성격으로 바꿔서 열린 위성곤 의원실 주최 소형 영농형 태양광 토론회 당시 전농 정책위원장의 토론문 제목은 살벌하기까지 했다. '농지에 태양광 설치 허용은 대가를 치를 것이다...'

발제자가 소형 영농형 햇빛발전의 역사와 장점을 열거하고 위성곤 의원도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 농지 훼손 없는 영농형 햇빛발전의 취지를 충분히 설명했지만, 그 이후에도 무조건 반대라는 전농의 입장은 요지부동이었다.

전농 지도부가 소형 영농형 유기농햇빛발전까지 반대하는 것은 19세기 영국의 어처구니없는 자동차 규제, 즉 자동차는 도심에서는 시속 8km로 가야 하고, 자동차 앞에서 붉은 기를 든 기수가 자동차를 선도해야 한다는 레드플래그법보다도 더 기괴한 행위로 보인다.

기후위기와 재생에너지 보급확대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공룡과 닭도 구분 못하면서 옥석을 가리지 못하고 소농의 고단한 현실을 외면하는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소형 영농형 햇빛발전 반대는 재벌 태양광 떴다방을 도와주는 이적행위다

농지에는 절대 영농형 햇빛발전도 안된다면 도대체 그동안 1만ha 이상의 농지가 전용돼 태양광발전소로 변할 때 전농은 무엇을 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전농의 무조건 반대를 보고 뒤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재벌 태양광 떴다방들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전농은 재벌 떴다방 태양광 업자들을 도와주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재벌 태양광 떴다방들이 가장 염려했던 것은 100kW 미만 소형 영농형 햇빛발전 농민들의 사회적협동조합 조직을 통한 공익햇빛발전운동이 자신들의 돈벌이 먹잇감을 사라지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었다. 이들은 소형 영농형 햇빛발전 농민들이 이격거리를 오히려 더 늘리는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태양광 떴다방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세력은 수십만 명에 달하는 이들 소형 영농형 햇빛발전 설치 희망 소농들이다. 어떤 농민단체보다 더 막강하게 영농형 햇빛발전에 대한 이해관계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소형 영농형 햇빛발전에 재를 뿌리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농민단체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농을 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귀농귀촌을 활성화하고 일자리 수만 개를 만들 수 있는 노아의 방주 제작을 초장부터 방해하고 있는 셈이다. 심하게 말하면 재벌 태양광 떴다방의 무보수 행동대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의도로 한 일이 기후위기의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의 제동장치를 없애버릴 수 있다. 정의감이라는 강력한 힘은 사리를 잘 따져 현명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현실보다 더 나쁜 현실을 만드는 공범자가 될 수도 있다. 전농이 슬기로운 선택으로 소형 영농형 햇빛발전 보급 확대에 앞장서길 바랄 뿐이다.

[ 박승옥 햇빛학교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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