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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고소인 조사도 없이 대질신문하겠다고?… 화 돋운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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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경찰 고소사건 담당 수사관
피해자 불러 놓고 조서 작성 묵살
"고소인 여러명이면 1명만 조사"
한국일보

여수경찰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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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서 수사권을 넘겨받으면 잘 할 줄 알았더니, 경찰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사문서위조로 인해 회사 대표 자리에서 쫓겨나는 피해를 입은 A(68)씨는 최근 관련 고소사건의 고소인 조사를 받기 위해 전남 여수경찰서를 찾았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담당 수사관이 "해당 고소사건의 또 다른 고소인이 이미 조사를 받았으니 A씨까지 별도로 고소인 조사를 받을 필요는 없다"는 취지로 고소인 조사를 거부한 것이다. A씨는 "고소인들의 피해 내용이 서로 다른데 왜 조사를 안 받아주느냐고 따졌더니, 담당 수사관이 '대질신문 때 부르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여수의 한 골재업체 대표였던 A씨가 고소인 조사를 받기 위해 여수경찰서 경제1팀 사무실을 찾은 것은 지난 6일 오후. 자신 몰래 위조한 법인 인감을 임시주주총회 소집통지서에 날인한 뒤 임시주총을 열어 대표를 바꾸고 법인등기부등본까지 변경한 B(63)씨와 C(60)씨를 사문서위조와 공정증서원본부실기재 혐의로 고소한 지 6개월만이었다.

당시 A씨는 사건 개요와 일지, 녹취요약본 등 수사 참고 자료를 담당 수사관에게 건넸지만 이 수사관은 A씨를 상대로 고소인 조사를 하지 않았다. 고소인이 여러 명일 때는 대표로 1명만 조사를 받으면 된다는 게 이 수사관의 설명이었다. A씨와 함께 고소장을 냈던 D씨가 2월 검찰에서 이미 고소인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거론한 것이다. A씨 등이 지난해 11월 광주지검에 접수한 이 고소사건은 지난 3월 B씨의 주소지인 광양경찰서로 이첩됐다가 4월 B씨 요청으로 다시 여수경찰서로 재이첩된 터였다.

이에 A씨는 "고소인이 여러 명이지만 각자 피해 내용이 다르니 고소인 조서를 작성해 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담당 수사관은 묵살했다. A씨는 "이 수사관이 피고소인과 대질신문할 때 나를 꼭 부르겠다면서 고소인 조서 작성을 거부했다"며 "어떻게 고소인을 조사도 하지 않고 나중에 피고소인과 대질신문을 하겠다는 것인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고 말했다.

담당 수사관의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A씨는 사건 개요를 설명하면서 법인 인감을 위조한 B씨가 C씨와 공모해 경영권을 침탈했다고 주장했다. 회사 지분 50%를 갖고 있는 B씨가 C씨와 주식(2,500주) 양도양수계약을 맺어 추가 지분 25%를 확보한 뒤 A씨를 밀어내고 대표이사가 됐는데, B씨가 C씨에게서 넘겨받은 주식이 실제로는 D씨 소유인 것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경영권을 빼앗기 위해 C씨와 짜고 허위 주식양도양수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A씨는 "담당 수사관이 'C씨에 대해선 허위로 주식을 양도양수한 것을 가지고 공모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나중에 자칫 뒤집어질 수 있다'고 말하더라"며 "고소장에 관련 내용과 증거들이 첨부돼 있는데도 마치 수사를 예단하는 것 같아 축소 수사 의혹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담당 수사관은 이에 대해 "고소장을 보는 것 보다 고소인한테 직접 피해사실을 듣는 게 사건 이해가 빨라 A씨를 불렀다"면서 "A씨가 조사를 요구했지만 함께 고소한 D씨가 이미 한 차례 조서를 받았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조사를 진행한 뒤 추가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피고소인과 대질신문 때 A씨를 부를 계획이어서 조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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