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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암 투병 부모에 추억 줘 고맙다" 눈물...30년 맞은 '6시 내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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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5월 20일 첫 방송
지구 202바퀴 돌며 농어촌 조명
다큐판 '전원일기'.... 잊고 지낸 고향 소중함 일깨워

평일 오후 6시만 되면 고향 떠난 중년 시청자를 TV 앞으로 불러 모으는 KBS1 '6시 내고향'이 20일 방송 30년을 맞는다. 1991년 5월 20일 첫 방송을 시작한 '6시 내고향'은 농·어촌의 일상을 생생하게 보여준 다큐멘터리판 '전원일기'이다.

주인공은 고향을 지킨 시골 청년과 어르신들이다. 그들을 찾아 제작진과 리포터들은 첫 회 전북 남원에서 출발해 2만9,000여 곳을 돌며 약 808만4,840㎞를 이동했다. 지구를 202번 돌고도 남을 거리였다. 리포터들은 농어촌의 따뜻한 이야기로 잊고 지낸 고향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지역 경제가 어려워진 것을 고려해 농·어촌의 '작은 경제'를 응원하기도 했다. '6시 내고향' 최장수 리포터인 개그맨 조문식과 '국민 안내양' 가수 김정연을 통해 그 역사를 되짚는다.
한국일보

'6시 내고향' 최장수 리포터인 개그맨 조문식이 2017년 경남 사천의 한 수산시장에서 국산 조기를 소개하고 있다. KBS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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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최장수 리포터 "4박5일 섬에 발 묶여"

"전통시장으로 오세요". 조문식은 '6시 내고향' 장터 지킴이였다. 1996년부터 2019년까지 23년 동안 전국의 재래시장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가 가본 장터만 900여 곳. 잊지 못하는 건 음식보다 장터에서 만난 어르신들이 들려준 굴곡 많은 이야기다.

조문식은 13일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식구가 9명이었는데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워 딸을 인천에 있는 동생 집에 보낸 할아버지가 있었다"며 "그 집 일 도우면서 야간학교라도 다니라고 보냈는데 동생분이 딸 공부를 안 시켰다더라. 그래서 울면서 딸한테 '미안하다'고 영상 편지 보내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6시 내고향' 간판 코너 '수요일은 수산물'을 진행하면서는 배를 타고 먼바다도 나갔다. 원양어선 빼고 배란 배는 다 타 봤다고 한다. 바닷길은 험했다. 1박2일 일정으로 촬영을 떠났다가 풍랑주의보로 발이 묶여 4박5일 만에 섬을 빠져나온 적도 있었다. 조문식은 "옛말에 '보리 서 말만 있으면 꽁치잡이 배는 안 타는 게 좋다'더니 정말 뱃일이 고되더라"며 "이 악물고 촬영을 마쳤는데 선장이 내 손에 전화번호를 쥐여주면서 '나중에 방송에서 잘리면 220만 원 줄 테니 배 타러 와라'고 했다"며 웃었다.

그렇게 만난 어촌 계장들과 조문식은 요즘도 연락하며 지낸다. 그는 "내 휴대폰에 저장된 6,000개의 번호 중 대부분이 '6시 내고향' 때 만난 분들"이라며 "처음엔 뱃멀미로 고생했지만, 뱃전에서 바닷물에 쓱 닦은 생선회를 먹을 때는 나라님도 안 부러웠다"고 옛 기억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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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내고향' 장수 코너 '시골길 따라 인생길 따라'에서 '국민 안내양' 가수 김정연이 2019년 충북 단양의 한 버스에서 승객이 준 단양 마늘을 먹고 활짝 웃고 있다. KBS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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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국민 안내양' "자식 사랑은 짝사랑, 인생 배워"

강원 양양의 한 미장원에서 파마를 하던 이순복(78)씨는 잠시 멈춰선 버스를 우연히 보고는 갑자기 달려 나갔다. 그리곤 버스에 허겁지겁 올라탔다. "아니 미장원에서 보니까 (김)정연씨가 타는 거야." 이씨는 버스에서 김정연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김정연은 '어르신들의 블랙핑크'로 통했다. 11년 동안 직접 시골 버스에 올라 어르신들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어가며 인생 이야기를 귀담아 들은 결과였다. 김정연은 2010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시골길 따라 인생길 따라'에서 버스 안내양 콘셉트로 전국 팔도를 누볐다.

'시골길 따라 인생길 따라'는 경북 성주군 군내버스에서 시작됐다. 김정연은 10여 년 동안 매주 1~2일을 버스에서 보냈다. 방송을 진행한 지 3년 만인 2012년, 전국 85개 시·군내 버스를 탑승해 최단기간 가장 긴 버스 탑승 거리 기록으로 한국기록원에 등재되기도 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여정은 2017년 전북 순창에서 탄 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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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내고향' 장수 코너 '시골길 따라 인생길 따라'에서 '국민 안내양' 가수 김정연이 전남 구례의 한 미용실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퍼머를 하고 활짝 웃고 있다. 김정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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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가 같이 버스를 기다리며 백내장 수술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어요. 무서웠는데 절 보고 용기가 났다고 고마워하시더라고요. 지난해엔 광주시에서 만난 어르신 자제분한테 이메일로 연락이 왔어요. '부모님이 암투병 중이었는데 저 만나고 너무 좋아하셨고, 방송으로 기록이 남아 자식들도 보고 싶을 때 두 분을 볼 수 있게 됐다고요. 촬영하며 울기도 많이 울었죠."

버스를 타면 탈수록 김정연의 삶에도 '살'이 붙었다. "자식 사랑은 짝사랑이야" 등 버스에서 들은 수많은 어르신의 말은 그의 인생교과서가 됐다. 김정연은 "어르신들말씀 들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미래를 설계할 용기가 생겨 내가 마흔여섯에 아이 낳을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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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정연의 KBS1 '6시 내고향' 촬영 일지. 김정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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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찾는 사람들' 출신인 '국민 안내양'은 코로나19로 지난해 4월부터 멈춘 '시골길 따라 인생길 따라'가 다시 달릴 날을 기다리고 있다. 같은 방송사 '아침 마당'에도 출연하는 김정연은 "나만 힘든 게 아니더라"면서 "저마다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사는 그분들을 만나러 다시 버스를 타고 싶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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