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3 (월)

[중앙시평] ‘디지털무역’의 급성장과 과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국제무역 대상·규범 꾸준히 변천

WTO 디지털무역규범 제정 난항

미국·EU·중국 각자 다른 정책추진

기업, 정부, 국회 함께 대응해야

중앙일보

박태호 광장국제통상연구원 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


국제무역의 대상과 규범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했다. 1948년 최초로 제정된 다자무역규범인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은 주로 공산품무역을 위한 것이었다. 그 후 1994년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는 ‘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이 체결되어 서비스도 국제무역의 대상으로 포함되었다.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는 인터넷 매체를 통한 상품 및 디지털콘텐츠의 국경이동이 이루어지자 이를 전자상거래(e-commerce)로 정의하였다. 1998년에 개최된 WTO 제2차 각료회의에서 회원국들은 ‘전자적 전송물(electronic transmissions)’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최근 들어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한국 등 86개 WTO 회원국들이 전자상거래에 대한 국제무역규범 제정을 위한 논의를 진행해오고 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다.

정보통신기술이 지속적으로 발달하면서 전자상거래의 개념이 디지털무역으로 확대되었다. 즉 전자상거래뿐 아니라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재화와 상업적 가치창출에 필요한 데이터의 국경이동도 포함하게된 것이다. 디지털무역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의가 확립되지 않고 있으나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인터넷 플랫폼(예: 아마존)을 통한 상품과 서비스의 국제무역, 둘째는 기존의 상품과 서비스를 디지털화한 제품(예: e북)이나 디지털서비스를 탑재한 상품(예: 디지털 원격점검시스템이 설치된 자동차) 및 서비스(예: 호텔스닷컴을 통해 예약한 해외호텔 숙박)의 국제무역, 셋째는 상업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는 정보의 수집, 분석 및 가공을 위한 데이터의 국경이동(예: 페이스북) 등이다.

전통적인 무역에도 디지털서비스가 포함되는 경우가 많아 디지털무역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내놓은 한 발표 자료는 2019년 세계 디지털무역 규모가 8000억∼1조5000억 달러 정도이고 이는 세계 무역규모의 3.5∼6%에 해당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그러나 통상전문가들은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고 세계 각국의 경제가 빠르게 디지털화 하면서 디지털무역의 중요성과 규모가 급속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정 국가가 데이터의 국경이동을 제한하거나 데이터 서버를 자국 내에 위치하도록 강제하는 조치를 취하면 디지털무역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EU는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개인관련 데이터의 국경이동을 제한하고 있고 중국은 국가안보를 근거로 데이터의 현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EU의 주요 국가들이 디지털기업의 매출에 대해 디지털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러한 조치들이 디지털무역의 활성화에 심각한 저해요인이 된다고 보고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렇듯 디지털무역에 대해서는 미국, EU, 중국 등 주요국들의 입장차이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

WTO에서 관련 논의가 지지부진해지면서 일부 국가들은 자유무역협정(FTA)에 디지털무역관련 규범을 포함시키거나 별도의 디지털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미국은 캐나다 및 멕시코와 맺은 자유무역협정(USMCA)에 디지털무역관련 규범을 포함시켰고 최근에는 일본과 별도의 디지털무역협정을 체결하였다. 앞으로도 디지털무역을 중시하는 국가들은 이러한 접근방식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디지털무역과 관련된 주요 이슈들에 대한 입장을 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기업과 정부 그리고 전문가들의 긴밀한 소통과 협력을 통해 우리 경제와 기업의 디지털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미래 발전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국익에 맞게 구체적인 정책을 수립해야 하고 국회는 이러한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제정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 기업들도 미국, EU, 중국과 같은 주요국들의 디지털무역관련 정책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는 우리의 입장을 국제적으로 반영시킬 수 있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다자무역규범 제정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같이 디지털무역규범이 이미 반영된 지역무역협정에 가입하거나 주요 국가들과 디지털무역협정 체결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 정보기술(IT) 기업들의 디지털무역 시장으로 잠재력이 큰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필리핀 등 아세안국가들과 디지털무역협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무역은 앞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확산될 뿐 아니라 그 유형도 다양해져 세계무역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미래 핵심 디지털무역의 하나가 될 ‘3D 프린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면 전통적인 공산품무역을 상당부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우리 기업은 물론 정부와 국회도 디지털무역을 중심으로 급변하는 국제무역의 지각변동에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박태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 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