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5 (일)

지구 생명이란…미생물과 배설물로 엮인 거대한 ‘연결망’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 (18)]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생명의 순환고리

[경향신문]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500년 전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은 원래 드높은 진리와 아름다움의 평원으로 비상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런데 그런 영혼이 날개가 꺾여 지상에 추락하고 육체에 갇히면서 지금처럼 작아졌다. 사랑이 그 상처를 치유하여, 인간 영혼을 다시금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플라톤 말대로 인간이 영혼(정신)과 육체라는 두 실체로 이루어져 있다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영혼을 살리는 사랑과 함께 육체를 움직이는 힘이 필요하다. 생물학적으로, 우리가 숨 쉬는 이유가 이런 육체적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호흡은 날숨 ‘호(呼)’와 들숨 ‘흡(吸)’이 합쳐진 말이다. 좀 더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코와 입으로 산소가 풍부한 바깥 공기를 들이마셔 기도를 거쳐 허파로 보내고, 이산화탄소가 많은 몸속 공기를 몸 바깥으로 내보내는 기체교환이다.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해보자. 가슴이 팽창하고 윗배가 앞으로 나오는 느낌이 든다. 자칫 공기가 들어오니까 흉강이 늘어났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그 반대이다. 갈비사이근(늑간근) 수축으로 갈비뼈가 위로 당겨지고, 동시에 횡격막은 아래로 내려가 흉강 부피가 늘어난다. 그 결과 폐 속 기압이 대기압보다 낮아진다. 기체는 압력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므로, 자연스레 공기가 허파로 들어오게 된다. 숨을 내쉴 때는 이와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생명

우리가 숨을 쉴 때 몸속에 들어온 산소
음식 영양분 태우는 ‘세포호흡’에 쓰여
연소와 같은 산화반응으로 에너지 생성

이 소제목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다. 인공호흡과 모닥불에 하는 부채질을 생각해보자. 각각 꺼져가는 생명과 불씨를 살리려는 노력 아닌가! 핵심은 산소이다. 도대체 여기서 산소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국어사전에서는 연소를 ‘물질이 산소와 화합할 때에 많은 빛과 열을 내는 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를 과학 용어로 표현하면, 물질이 산화(산소와 화합)되면서 에너지(빛과 열)를 내는 현상이다. 우리도 음식물에서 얻은 영양분을 세포에서 태우고 있다. 그 생생한 증거가 체온이다.

연소와 호흡은 모두 같은 산화 반응이고, 그 최종 산물은 물이다. 겨울철 자동차 배기구에서 나오는 허연 수증기와 우리 입김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연소 과정에서는 빠르게 한꺼번에 에너지가 방출되지만, 호흡에서는 천천히 단계적으로 에너지가 방출된다는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떤 물질이 산소 원자(O)와 결합하거나 수소 원자(H)를 잃어버리는 것을 ‘산화’라고 한다. 이것의 정반대가 ‘환원’이다. 상대적으로 더 환원된, 즉 수소 원자가 더 많은 물질은 그만큼 에너지가 많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그냥 외워도 무방하다.

원자는 물질을 이루는 기본 단위이다. 원자는 하나의 핵과 이를 둘러싼 전자로 되어 있다. 전자의 수는 원자에 따라 다르다. 핵과 전자는 각각 양성(+)과 음성(-)을 띠는데, 평소에는 이 둘이 상쇄되어 있어 원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다. 원자 수준에서도 음양의 조화가 있는 셈이다. 신진대사 과정에서 전자는 수시로 원자 사이를 오가는데, 다정한 연인처럼 수소 원자와 붙어 다닌다. 우리가 먹은 밥이 소화되는 과정을 예로 삼아 전자의 이동을 살펴보자.

소화를 통해 밥의 주성분인 녹말(전분)은 포도당으로 분해된다. 허기가 져 머리가 잘 안 돌아갈 때 흔히 당 떨어졌다고 말하곤 하는데, 나름 과학적인 표현이다. 포도당이 가장 중요한 신체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세포에서 포도당 1g을 태우면 4㎉ 정도의 에너지를 얻는다. 공급량이 많아 태우지 못하고 남는 포도당은 결국 지방으로 전환되어 몸에 쌓인다. 살이 찐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칼로리를 태우라는 다이어트 구호에도 과학이 담겨 있다.

세포에서 포도당을 태우는 과정을 ‘세포호흡’이라고 부른다. 이때 포도당에 저장되어 있던 에너지가 수소 원자와 전자에 담겨 방출된다. 세포는 이 에너지를 사용하고, 남겨진 빈 용기인 수소 원자와 전자는 산소와 결합하여 물이 된다. 말하자면, 산소는 에너지를 배달하느라 수고하고 지친 수소 원자와 전자를 품에 안아 쉬게 함으로써 우리 삶을 유지한다. 이런 사실을 1937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얼베르트 센트죄르지(1893~1986)는 ‘생명이란 쉴 곳을 찾는 전자’라고 멋지게 함축했다.

산소 없이 숨쉬기

동식물이 살 수 없는 무산소 환경에서
많은 미생물들이 ‘무산소 호흡’ 가능
산소 아닌 다른 물질 사용해 세포호흡

만약 산소가 사라진다면, 사람을 비롯한 동식물은 모두 곧 죽는다. 매우 유감스럽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암울한 상황에서도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가는 생명체가 있다. 도대체 산소 없이 어떻게 숨을 쉴 수 있단 말인가? 호흡에서 산소가 하는 기능을 이해했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다.

포도당에서 나온 전자를 마지막에 받아주는 게 산소이고, 이 과정이 세포호흡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역할에 다른 물질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호흡에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많은 미생물(주로 세균)이 우리가 가지지 못한 이 능력을 갖추고 있다. 산소 아닌 다른 물질로 호흡하며 삶을 영위하는 그런 재주 말이다. 이를 산소를 이용하는 산소 호흡(유기 호흡)과 대비하여 무산소 호흡(무기 호흡)이라고 한다.

유산소 환경에서 살다 보면, 산소와 전자가 잘못된 결합을 하는 일이 가끔 생긴다. 이렇게 되면 소위 ‘활성산소’가 만들어진다. 활성산소는 반응성이 커서, 마치 불한당처럼 세포 자체나 구성 물질에 닥치는 대로 시비를 걸어 해코지한다. 활성산소가 노화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 산소를 접하고 사는 생명체는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효소를 가지고 있다. 만약 생명체가 이런 효소를 갖추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에게는 ‘생명수’와 같은 산소가 이들에게는 ‘사약’과 같다. 산소를 만나면 즉사하고 만다. 이른바 ‘혐기성(嫌氣性) 미생물’은 산소를 피해 꼭꼭 숨어야 한다. ‘혐기성’은 공기(산소)가 없다는 뜻을 지닌 영어 단어 ‘anaerobic’을 일본식 한자로 옮기면서 붙여진 것인데, 어감도 썩 좋지 않을뿐더러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이들 미생물 대부분은 활성산소 제거 효소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산소가 있으면 우리처럼 산소 호흡을 수행한다는 얘기이다. 무산소 호흡은 이들이 추가로 지닌 특기이다. 따라서 혹시라도 이들의 삶에 대해 측은지심을 품는다면, 이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너나 잘하세요.” 편협한 인간 중심주의 사고의 틀 안에서 보면 산소가 없는 환경이 암담해 보이지만, 저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상이다.

타다 남은 동강

음식 숙성이나 술을 빚는 발효 과정은
무산소 조건에서 일어난 에너지 생산
발효 산물은 미생물의 배설물인 셈

동물이 호흡하고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식물이 이용하고 산소를 ‘배설’하듯이
배설물을 통한 연결은 대자연의 섭리

호흡과 마찬가지로 발효 역시 일상생활에서 널리 사용되는 생물학 용어이다. 보통 숙성을 통해 음식을 만들거나 술을 빚는 과정을 발효라고 한다. 교과서식으로 말하면 ‘무산소 조건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생산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가 있기를 기대한다. 이 정의는 과학적으로 문제가 있다. 이렇게만 말하면 앞서 얘기한 ‘무산소 호흡’과 발효를 구분할 수 없고, 자칫 이 둘을 같은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산소 호흡은 산소 대신 다른 물질을 사용할 뿐 해당 화합물에 있는 모든 탄소가 이산화탄소로 산화되는 완전 연소이다. 반면 발효는 타다 남은(덜 산화된) 동강이 생기는 불완전 연소이다.

생명체에게 불완전 연소는 에너지 손실을 의미한다. 호흡을 통해 포도당을 완전히 태우면 여기에 들어 있는 에너지를 모두 뽑아내 쓰고, 물과 이산화탄소를 버린다. 그러나 발효를 하게 되면 포도당에 있는 에너지 일부만을 사용하고 여전히 상당량의 에너지가 들어 있는 발효 산물을 배설물로 내놓게 된다. 생물학에서 말하는 배설물이란, 몸(세포) 안으로 들어와 몸에 필요한 반응을 거친 후에 다시 몸 밖으로 나가는 물질을 말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미생물의 배설물을 즐기고 있었다. 예컨대 맥주에 있는 알코올은 효모가 보리에 있던 당분을 발효하고 내놓은 배설물이다.

배설물이 어감 때문에 그렇지, 생물학적으로는 더러운 게 아니다. 배설물이 쌓이면 그 생명체에게는 해롭다. 그래서 보통 자연 발효를 하면 맥주의 알코올 함량이 5% 정도에 머문다. 진짜 중요한 사실은, 한 생물종의 배설물이 당사자에게는 독이 되지만, 다른 생물종에게는 필수 양분이 되는 게 대자연의 섭리라는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자신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호흡하고 내놓은 배설물인 이산화탄소를 식물은 광합성에 이용하고, 그들이 내놓은 배설물인 산소 덕분에 우리가 살아간다. 지구 생명은 미생물과 배설물로 연결되어 돌아가는 하나의 거대한 연결망인 셈이다.

과학이라는 거울에 비친 인간 모습은 여느 생명체와 다를 바 없이 생명 네트워크를 이루는 하나의 연결고리에 불과하다. 세상에 대한 온갖 정보를 무진장 가지고 있음이 그나마 차이이고 위안거리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인간보다 뛰어난 인공지능 앞에서 초라해지려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거울로는 볼 수 없는 사랑이 있다. 돌보고 베풀고, 때로는 희생으로 인간을 고양하는 ‘정신적 에너지’라 하겠다. 제대로 사랑할 줄 안다면 막막하고 황량해 보이는 세상을 따스한 시선으로 볼 수 있으리라.

▶김응빈 교수

경향신문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등이 있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김응빈 교수

▶ [인터랙티브] 김진숙을 만나다
▶ 경향신문 바로가기
▶ 경향신문 프리미엄 유료 콘텐츠가 한 달간 무료~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