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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더오래]할머니가 키운 딸에게 아빠는 빚만 남기고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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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배인구의 이상가족(111)



외손녀를 키우고 있는 할머니입니다. 일찍 결혼한 딸은 이혼했다면서 핏덩이 손녀를 내게 던지듯 내려놓고 가버렸고, 그 후 소식을 모르고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에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우리 손녀의 아빠가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빚이 많았다는 말을 합니다. 양육비 한 번 주지 않은 사람이 이제 손녀에게 빚만 남기고 갔다고 생각하니 너무 원통합니다. 손녀가 걱정되어 여기저기 알아보니 상속포기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애 엄마가 연락이 되지 않으니 이를 어쩌면 좋을지 애만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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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우리 민법은 피상속인이 사망하면 상속인들이 당연하게 적극 재산과 소극 재산을 상속하는 것으로 예정하였습니다. 물론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상속포기를 하거나 한정승인의 신고를 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1019조 제3항은 “상속인은 상속 채무가 상속 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제1항의 기간 내에 알지 못하고 단순승인(제1026조 제1호 및 제2호의 규정에 의하여 단순승인한 것으로 보는 경우를 포함한다)을 한 경우에는 그 사실을 안 날부터 3월 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특별한정승인’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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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이 재산보다 많다면 상속포기를 해서 미성년자가 빚을 상속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때 미성년자가 단독으로 상속포기 신고를 할수는 없기 때문에 법정대리인이 신청해야 한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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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보다 빚이 많으면 상속포기를

사례자가 말씀하신 것처럼 빚이 재산보다 많다면 상속포기를 해 미성년자인 손녀가 빚을 상속받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그런데 손녀는 미성년자라 단독으로 가정법원에 상속포기의 신고를 신청할 수 없습니다. 법정대리인인 엄마가 신청해야 합니다. 사례자는 법정대리인이 아니니 원칙적으로 손녀를 대리할 수 없습니다.

다만 법원이 사례자를 후견인으로 선임해주면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 사례자 딸의 친권이 상실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사례자가 손녀를 대리해 상속포기를 신청하려면, 친권상실을 구하는 청구를 해야 하고 후견인으로 선임되어야 합니다. 물론 재판이 계속되면 임시후견인으로 지정되어 상속포기의 업무를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절차가 복잡할 수 있지만 그래도 상속포기제도라는 것을 사례자가 알고 있기에 손녀는 아빠의 빚을 상속받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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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민법은 미성년자의 상속 채무에 대한 책임을 그 미성년자가 성인이 되는 시점에 가진 재산에 한정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상속포기 신고를 하려고 친권상실의 청구를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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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이 이런 것을 그냥 도외시하고 넘겨버리면 미성년자는 고스란히 채무를 상속받아야 합니다. 지난해 대법원은 이런 미성년자가 성년이 되어 비로소 상속 채무가 있다는 것을 알고 특별한정승인을 받은 사안에서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법정대리인이 알았다면 미성년자가 성년이 되어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20. 11. 19. 선고 2019다232918 판결).

대법관들도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입법으로 해결이 필요함을 인정했지만 아직 입법의 움직임은 없습니다. 채권자가 돈을 빌려줄 때 미성년자인 자녀를 보고 빌려주지는 않았겠죠. 그러니 상속인이 미성년자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상속인의 채권자는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의 범위 안에서만 채권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채권자의 이해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위 대법원 판결에서도 인용된 독일 민법은 미성년자의 상속 채무에 대한 책임을 그 미성년자가 성인이 되는 시점에 가진 재산에 한정하도록 합리적으로 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이런 제도가 만들어지면 사례자처럼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되겠죠. 무엇보다 상속포기 신고를 하려고 친권상실의 청구를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어린이날을 보내면서 빨리 우리나라도 이런 선진적인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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