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회사 씨티은행이 최근 자사 보고서를 통해 비트코인의 개수가 고정돼 있지 않으며 앞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비트코인의 개수가 제한적이라는 일반적인 시각을 반박하는 주장이어서 주목된다.
11일 씨티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발간한 '돈의 미래(Future of Money)'라는 제목의 월간 보고서(GPS)에 이 같은 내용을 담았다. 이 보고서는 매달 핵심 트렌드에 대한 현황과 분석을 담아 씨티의 글로벌 주요 고객들에게 발송된다.
블록체인 기반 금융 플랫폼 에이브(Aave)의 아지트 트리파티 국제본부장은 씨티 보고서에서 "비트코인 커뮤니티는 비트코인 개수가 2100만개를 넘지 않는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비트코인에는 매우 많은 실험과 수학이 적용됐고 이론적으로 바뀔 수 있는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비트코인의 총량을 늘리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바꾸는 일을 비트코인 보유자들이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트코인 채굴에 대해 트리파티 본부장은 거품이 끼었다가 터지는 것이 반복되는 경기순환 사업으로 규정했다. 국내 비트코인 전문가들도 기술적으로는 비트코인 개수를 늘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인정했다. 다만 씨티가 비트코인이 기존에 설계된 총량을 기술을 동원해 수정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은 기술이 의도치 않게 사용되는 것에 대한 경고로 풀이된다. 이병태 KAIST 교수는 "비트코인은 총량을 늘리기가 어렵게 설계됐다"면서 "대신 유사코인들이 난립하면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원섭 기자]
[단독] "디지털머니 경쟁적 출현…그 주도권은 CBDC가 쥘 것"
씨티은행 '돈의 미래' 보고서…가상화폐 5대 포인트
① 중앙銀도 디지털화폐 발행
中 디지털 위안화가 선두주자
② 알트코인 난립 괜찮나
'무늬만 블록체인' 많아 주의를
③ 4년전 열풍때보다 몸집 3배
기관투자 가세로 시총 2490조
④ 비트코인, 돈이라고 하기엔
변동성 10배…투자상품 가까워
⑤ '디지털 머니' 제로섬 아냐
현금·가상화폐 공존하게 될것
최근 가상화폐인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이 높아진 가운데 11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에서 직원이 시세판을 바라보고 있다. [한주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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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신문이 입수한 씨티은행의 '돈의 미래' 보고서는 본격적인 '디지털 머니 2.0' 시대의 개막을 알리고 있다. 디지털 머니 1.0과 2.0의 기준점은 가상화폐의 등장이다. 그러나 씨티는 가상화폐가 현금 등 기존 돈과도 공존할 것으로 내다봤다. 씨티는 이 공존을 제로섬(zero-sum) 게임이 아닌 전체 파이를 키우는 게임으로 분석했다. 이하는 보고서의 핵심 내용 다섯 가지다.
◆ 유사코인 난립은 위험
씨티가 보고서에서 비트코인의 총량이 고정이 아닐 수 있고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 배경에는 비트코인 역시 이론적으로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얼마든지 수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비트코인은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가명의 프로그래머가 2009년 개발한 가상화폐다. 설계할 당시 발행량을 2100만개로 정해두었다. 금처럼 채굴량이 한정된 재화로 평가를 받으면서 가격이 올라간 측면이 있다. 그러나 개발자인 나카모토가 마음을 바꿔 먹으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게 보고서의 주장이다. 또한 나카모토가 막아둔 발행량을 기술적으로 해제하는 것도 가능하다. 결국 기술이 의도치 않게 적용될 경우 새로운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게 씨티의 분석이다. 유사코인이나 알트코인의 폐해가 대표적이다. 알트코인은 비트코인 등 대형 코인을 제외한 나머지 군소 가상화폐 코인들을 주로 뜻한다.
이병태 KAIST 교수는 "비트코인은 처음부터 인위적으로 희소성을 갖도록 설계됐다"며 "지금은 비트코인의 발행량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비트코인의 이름과 유사한 다른 코인들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분별한 유사코인이나 알트코인의 난립은 위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알트코인의 경우 변동성이 크고 블록체인 기술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은 것들이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국 가상화폐 시장에서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대형 코인보다는 알트코인에 대한 투자 집중이 해외보다 커 위험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가상화폐 2017년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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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상화폐 열풍이 불었던 2017년과 최근의 열풍은 다르다는 게 씨티은행 분석이다. 우선 가상화폐 시장의 몸집이 커졌다. 가상화폐 시가총액은 지난달 15일 기준 2조2340억달러(약 2489조7680억원)에 달한다. 2017년 최고점인 6140억달러(약 687조3730억원)보다 3배 이상 증가한 규모다. 같은 기간 거래되는 가상화폐 수도 1353개에서 4200개로 약 3배 늘어났다.
비트코인 가격 상승을 이끄는 것은 풍부한 유동성이다. 씨티은행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과 중국의 12개월 평균 사회융자총량(TSF·중국 인민은행의 포괄적 유동성 지표), 미국의 M1(협의통화)은 상관관계가 있다. 가상화폐에 회의적인 중앙은행 움직임이 오히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투자자들을 지지한 결과를 일으킨 것이다. 명목화폐 가치 하락을 '헤지'하려면 비트코인을 사라는 메시지를 시장에 줬다는 의미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에 대응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유동성을 늘리자 투자자들은 주식이나 가상화폐 같은 '위험자산'으로 향했다. 다만 2017년 1차 열풍을 개인투자자가 주도했다면, 지난해부터 이어진 2차 열풍은 기관투자자가 중심이라는 게 씨티의 분석이다.
씨티는 또 비트코인을 '소셜미디어 시대를 위한 돈'이라고 명했다. 씨티는 "모든 돈이 사회적 구조라면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는 소셜미디어 시대에 잘 어울린다"고 했다. 주요 기술 기업가와 유명인, 인플루언서 등이 비트코인과 가상화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키웠다. 웨스트코스트벤처캐피털과 기술 기업가들은 비트코인의 얼리어답터(신제품을 빨리 구입해 사용하는 사람)였다. 하지만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가상화폐 선전 규모와 범위는 전례 없는 일이다.
◆ 비트코인 아직 화폐는 아니다
씨티은행은 가상화폐가 지불 수단으로서 화폐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고 평가했다.
나비드 술탄 씨티 기관고객그룹 회장은 보고서에서 "현시점에서 비트코인은 대체투자 상품"이라며 "만약 대중이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한다고 믿는다면 지불 수단으로서 비트코인을 사용할 개연성은 낮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씨티는 특히 비트코인에 대해 최근 몇 달 동안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보인 가격 변동성을 근거로 가치 저장 수단이나 화폐로서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씨티은행은 2011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을 분석했을 때 주요 화폐보다 10배 이상 높다고 설명했다. 해당 기간에 미국 달러 기준 비트코인의 평균 변동성이 5%에 달하는 동안 미국 달러 기준 유로화와 엔화는 0.5% 수준에 불과하고, 금의 변동성도 1% 남짓이라는 분석이다. 씨티는 비트코인 소유권이 소수에게 집중된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씨티은행은 비트코인 네트워크에서 2%에 해당하는 비트코인 주소(Bitcoin address)가 전체 비트코인의 93%에 달하는 양을 제어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 중앙銀 디지털화폐가 '게임 체인저'
씨티는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가 기존의 은행 중심 금융산업 지형을 뒤집는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각국 중앙은행은 CBDC 발행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스웨덴 중앙은행뿐 아니라 영국 영란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도 본격적인 도입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중국이 가상화폐를 활용해 미국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이번 보고서에 외부 전문가로 참여한 글로벌 회계법인 PwC의 헨리 아르슬라니안 글로벌 가상자산 전문가는 "중앙은행이 어떤 형태의 CBDC를 발행할지에 따라 핀테크(금융기술) 기업이 뜨는 반면 기존 제도권 은행 입지가 약화돼 금융산업 구조가 뒤바뀔 것"이라면서 "현재 각국 금융당국이 CBDC 도입을 검토하는 단계여서 명확한 방향성이 없지만 시장 파장은 작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CBDC가 발행되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파급 경로가 바뀌고 효과도 달라질 수 있다. 전통적인 통화정책은 은행권을 매개로 시장에 영향을 주게 된다. 다만 CBDC가 직접 개인에게 발행된다면 보다 직접적으로 정책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의 내부 시차가 줄어들게 된다.
국가들 중에선 중국이 CBDC 부문에서 가장 앞서 있으며 이를 통해 국가 경제 통제권을 높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위안화에는 일련번호와 사용자 아이디(ID), 거래 금액, 소유자 등 각종 정보가 담긴다. 거래가 체결될 때마다 새로 생겨나는 정보는 인민은행이 관리하는 별도의 기관에 기록이 남는 식이다. 기존 결제 체계를 통해 확보하기 어려웠던 금융거래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중앙은행이 손쉽게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거래자 인적사항은 시중은행이나 거래 상대가 결제자의 동의 없이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개인정보 보호가 일부 이뤄진다. 하지만 인민은행은 디지털위안화에 담긴 정보를 추적해 개인과 법인의 거래 내역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씨티는 이를 '통제된 익명성(controlled anonymity)'이라고 표현했다.
◆ 다양한 화폐 공존한다
씨티는 현금 등 기존의 돈과 가상화폐 등 새로운 돈이 모두 공존할 것으로 전망했다. 여러 형태의 돈이 서로 경쟁은 하겠지만 그 방식은 제로섬 게임이라기보다 각각의 장점을 보유한 채 전체 파이를 넓히는 게임이라는 게 씨티의 분석이다.
씨티는 이를 "돈이 포맷 전쟁을 시작했다. 이 전쟁은 모두 공존하는 전쟁이 될 것"이라고 표현했다. 예를 들어 과거 비디오나 전기 등은 여러 포맷 중 하나의 포맷으로 통일됐지만 돈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설명이다. 씨티는 "가상화폐든 기존 현금이든, 중앙화든 탈중앙화든 모두 공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CBDC와 민간이 발행한 가상화폐도 공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씨티는 다만 가상화폐의 등장으로 디지털 머니 2.0 시대가 개막하는 것으로 보았다. 디지털 머니 1.0 시대는 통장에 있는 현금처럼 계정에 기반했다면 디지털 머니 2.0 시대는 이른바 가상화폐처럼 토큰에 기반하기 때문에 지급결제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분석이다.
[김인오 기자 / 이새하 기자 / 이진한 기자 / 진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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