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일본 가상화폐 시장 제도화 시도
수많은 피해자 양산 끝에 강력 규제로 선회
'사망선고' 받은 일본 가상화폐 시장…여전히 마진거래가 활발
가상화폐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이른바 ‘광풍’으로까지 비견됩니다. 하지만 광풍이 불수록 잠시 멈춰 서서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로 지적해야 할 부분까지 함께 휩쓸려가면 언젠가 더 큰 문제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차분히 가상화폐 시장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 ‘비트코인 비틀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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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공병선 기자] 최근 정부는 가상화폐 시장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17년 가상화폐 광풍이 일어난 후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는데도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는 가상화폐 시장을 고의로 방치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2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가상화폐는 인정할 수 없는 화폐라는 것을 정부는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며 “국민들이 많이 투자한다고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많은 전문가들은 가상화폐 시장의 제도화를 통해 투자자를 보호하고 시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나온 예시가 일본이다. 일본은 자금결제법과 금융상품거래법을 개정해 투자자를 보호할 장치를 마련하고 혁신을 장려하고 있다는 게 가상화폐 업계 측 주장이다. 일본이란 예시는 곧 업권법 논의까지 이어졌다. 지난 7일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상자산업법을 발의하면서 업권법의 첫 발을 뗐다.
하지만 일본의 가상화폐 관련 법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의 법안이 만들어지기까지 일본의 가상화폐 시장은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다. 과연 일본은 피해자들을 뒤로 한 채 제도화를 통해 가상화폐 시장 진흥에 성공했을까.
2016년, 당찬 포부와 함께 가상화폐 시장 제도화
일본이 처음 제도화를 하게 된 사유를 알기 위해선 2014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일본은 그 어느 국가보다 가상화폐 시장이 일찍부터 활발했다. 당시 일본 가상화폐 거래소 마운트곡스에서만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의 약 70%를 차지할 정도였다.
하지만 2014년 마운트곡스가 비트코인 85만개를 도난당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피해규모는 약 4억7300만달러(약 5300억원) 상당이다. 비트코인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했으며 마운트곡스는 파산신청을 하게 된다.
이에 일본이 선택한 길은 가상화폐 시장의 폐쇄가 아닌 제도화였다. 제도화를 통해 시장의 일정 부분만 개입하고 투명하게 만든다면 투자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시장을 진흥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 어떤 국가도 가상화폐를 인정하지 않던 시기에 일본이 선제적으로 나섰다”며 “이미 블록체인 기술을 받아들이고 있던 에스토니아를 일정 부분 벤치마킹 했다”고 설명했다.
2016년 일본은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가상화폐를 ‘가상통화’로 부르면서 물품 구입의 대가로 지급할 수 있는 화폐의 기능을 인정했다. 또한 구입 또는 매각이 가능한 재산적 가치가 있는 존재로도 정의했다. 가상화폐 교환업자에겐 금융당국에 대한 등록 의무, 이용자에 대한 설명의무, 이용자 재산의 분리보관의무 등을 부과했다.
또한 가상화폐 거래소 등록 조건도 걸어놨다. 자본금 1000만엔(약 1억264만원) 이상을 보유해야 거래소로 등록이 가능하며 금융청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금융청에서 인정하는 가상화폐만 거래할 수 있는 ‘화이트리스트’ 제도도 이 시기에 생겼다. 현재 일본 내 거래소 비트플라이어에선 5개의 가상화폐만 거래되고 있다. 국내 거래소 업비트에선 가상화폐 178개가 거래되는 것과 비교된다.
제도화는 했는데…피해는 더 커진다?
하지만 제도화를 하며 투자자 보호 장치를 뒀음에도 피해는 계속 발생했다. 오히려 피해 규모는 더 커졌다.
2018년 1월 일본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체크에서 580억엔 규모의 가상화폐가 사라졌다. 당시 코인체크 측은 유출 경로를 설명하지도 못했다. 또한 유출된 가상화폐 중 898억원가량은 어둠의 경로를 통해 세탁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코인체크 경영진은 새벽에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거래소의 보안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가상자산교환업자에겐 회사의 시스템 리스크 관리 체계를 점검해 보고하도록 했다. 2018년 3월엔 7개 가상화폐 거래소에 업무개선명령 등 행정처분을 내렸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속출했다. 2018년 9월 일본 가상화폐 거래소 자이프에서 67억엔 규모의 가상화폐가 사라진다. 자이프는 앞서 언급한 업무개선명령 대상이었기 때문에 정부가 점검했음에도 해커들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당시 일본 경찰청은 2018년 1~6월 간 해커들이 158차례 공격해서 총 605억엔의 가상화폐를 탈취 당했다고 밝혔다.
2019년, 적극 개입 선언…눈치 보기 시작한 가상화폐 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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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일본 금융청은 절치부심하며 자금결제법과 금융상품거래법 개정안을 의회에 제출한다. 이병욱 서울종합과학대학원 교수는 “이전과 달리 일본 정부가 가상화폐 시장에 적극 규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먼저 자금결제법이다. 가상통화라는 명칭을 암호자산으로 변경하며 화폐로서의 기능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 정부가 자산으로 보는 시선과 동일하다. 또한 가상화폐 거래소엔 이용자의 금전을 신탁회사에 신탁하도록 강제해 투자자 보호를 강화했다. 거래소를 통해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투자자의 자금이 유출되는 것을 막는 동시에 가상화폐의 특성인 익명성을 걷어내는 조치다. 암호자산 변경사항에 대해서도 사전신고토록 했다.
금융상품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금융상품에 준하는 규제를 가하기 위해서다. 가상화폐 매매 혹은 관련 파생상품 거래 시 부정한 수단을 활용하거나 중요 사실을 허위 또는 누락 표시하는 등의 부정행위를 금지했다. 또한 시세 변동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 거짓 소문 유포, 위계·협박·폭행 등도 금지했다. 현재 국내서도 투자자들이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가상화폐 시세 조종을 막는 규제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금융청은 시장을 자유롭게 두겠다는 기조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지난해 4월 금융청이 꺼내든 마진거래 2배 제한안이 시행됐다. 마진거래란 투자자들이 낸 증거금의 몇 배 이상 금액 투자를 허용해 대규모 수익 혹은 손실을 볼 수 있는 투자방식이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가상화폐 마진거래를 허용하고 있다.
사실 일본은 시행령 초기 가상화폐 마진거래의 레버리지 최대 배율을 4배로 설정했지만 금융청은 더 강력히 규제하기로 결정했다. 법안 시행 전 금융청은 ‘퍼블릭 코멘트’라는 제도를 통해 마진거래 2배 제한안에 대해 가상화폐 업계의 의견을 물었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금융청의 강력한 규제안에 반기를 들 경우 일본 내에서 영업을 영위하는 것조차 힘들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일본 가상화폐 시장 사망선고 받아…투자자 보호와 시장 진흥은 동시에 올 수 없다는 것 보여줘
현재 일본의 가상화폐 시장은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지금과 같은 활황 속에서도 일본의 가상화폐 거래량은 잠잠하다.
가상화폐 데이터 사이트 코인힐스에 따르면 8일 기준 일본의 국가 통화별 비트코인 거래량 순위는 4위로 비중은 4.51%다. 한국은 알트코인 중심으로 투자하는데도 약 8.44%를 차지하며 세계 2위다. 이 교수는 “일본에서 거래가 가능한 가상화폐 종류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비트코인에 거래가 몰리는 데도 전 세계에서 거래 비중이 낮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마진거래가 일본의 가상화폐 시장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다. 일본가상자산거래업협회(JVCEA)에 따르면 올해 3월 일본의 마진거래 거래량은 약 6조7000억엔 규모였다. 가상화폐 현물 거래량은 약 3조4000억엔으로 두 배 가까이 차이 난다. 이 교수는 “파생상품은 가상화폐 시장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다”며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변동성을 좇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결국 투자자 보호는 몰라도 가상화폐 제도화와 진흥을 언급할 때 일본이 예시로 와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의 중론이다. 홍 교수는 “일본은 가상화폐 시장 제도화를 시도하면서 투자자 보호와 진흥이 동시에 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경험을 통해 가상화폐 시장의 진흥이 어렵다는 것을 일본이 배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일본 내에선 금융청의 화이트리스트 제도를 투자자 보호 측면으로 접근하지 국가가 공인한 투자상품으로 보지 않는다”며 “진흥이 아닌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볼 땐 한국도 배워야 할 점이 있다”고 조언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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