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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5월 차향기 맡으러 천년고찰에 갑니다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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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 울려 퍼지는 강화 전등사 죽림다원 번잡한 일상에 쉼표/익산산림문화체험관 야생차밭 자연의 맛 그대로/강진 백운동원림에도 다산 향기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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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다원


천년고찰 강화 전등사에 울려 퍼지는 깊고 은은한 범종 소리 따라 은은한 차향기 묻어온다. 휴일 평화로운 산사의 정적을 깨는 것은 멀리서 들릴 듯 말듯 전해지는 목탁 소리와 달가닥거리는 다기 소리뿐. 활짝 열린 창문으로 점점 짙어지는 수백년 느티나무의 이파리향까지 내려앉으며 차향기와 자연스럽게 섞이니 번잡한 일상도 쉼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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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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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차향기 맡으러 천년고찰로 갑니다

5월은 차향기가 짙어지는 시기다. 새로 돋은 가지에서 딴 어린잎을 사용하는 차는 보통 5월초까지 수확하는 ‘첫물차’가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이유가 있다. 긴장을 완화하고 혈압을 낮춰주는 아미노산 성분 테아닌이 두물차(6~7월 수확), 세물차(8월 수확), 네물차(9월 이후 수확)보다 2.2∼4.2배 높기 때문이다. 강화 길상면 천년고찰 전등사 죽림다원은 고즈넉한 사찰을 거닐며 짙은 차향기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남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웅장한 강화 삼랑성 남문을 지나자 울창한 녹음을 만든 소나무에 연등이 주렁주렁 달려 부처님오신날(19일)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린다. 수령 720년 은행나무, 400년 느티나무를 지나면 전통한옥으로 지은 죽림다원이 숲속에 단아하게 앉아있다. 다원앞에도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오랜 세월을 지키고 있고 작은 연못도 마당을 예쁘게 꾸미고 있다. 나무 탁자로 채운 다원 마당에 앉으니 어머니 품속인 듯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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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다원 입구 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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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다원 내부


차향기에 이끌려 다원안으로 들어선다. 수수한 단청과 커다란 서까래에 매달린 북이 운치를 더한다. 전망 좋은 창가 자리에 한 가족이 둘러앉아 연못과 봄꽃들을 즐기는 모습이 평화롭다. 마당의 벚꽃이 지고 나면 수선화, 백리향, 작약, 돌단풍, 철쭉, 매발톱이 쉬지 않고 꽃망울을 터뜨려 봄날의 오후를 수채화로 꾸민다. 다원에서 직접 만드는 다양한 차를 즐길 수 있다. 곡우 이전에 따는 첫물차인 우전차(雨前茶)는 물론, 연잎차, 쌍화차도 인기다. 연잎차는 전등사 승려와 보살들이 정성들여 가마솥에 덖은 연잎으로 우려내 깊고 풍부한 맛을 낸다. 쌍화탕도 약재 14가지를 이틀간 우려 진한향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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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다원 다기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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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다원 야외 테이블


쑥떡과 연꿀빵을 함께 즐겨보시길. 특히 유기농 연근과 마로 빚은 연꿀빵은 사찰에서만 만나는 음식으로 다양한 차와 잘 어울린다. 20여년전 문을 연 죽림다원은 신도들이 차를 마시며 잠시 쉬어가던 공간이었는데 차맛이 소문나면서 여행자들에게도 문을 열었다. 풍경이 주렁주렁 매달린 다원 곳곳에 놓인 예쁜 그릇과 다기 세트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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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야생차북한계군락지 표지석


#자연의 맛 그대로 담긴 익산 야생차밭

새잎이 돋아나 싱그러운 초록빛이 더욱 짙어지는 차밭은 천천히 거닐며 힐링하기 좋은 곳이다. 전남 보성이 차밭을 대표하지만 전북 익산에도 차밭이 펼쳐져 있다. 차나무는 따뜻한 날씨를 좋아해 주로 보성과 하동 등 남쪽에서 재배되는데 익산 웅포면 녹차마을길은 그런 차나무가 자라는 최북단 지역이다. 웅포면 입점리 산30번지에는 ‘야생차북한계군락지’가 적힌 표지석 세워져 있다. 이곳은 조선 초기에 소실된 숭림사의 말사인 임해사가 있던 터로 그때부터 차나무를 재배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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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산림문화체험관 야생차밭 한국관광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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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산림문화체험관 숲속쉼터 카페 한국관광공사 제공


절터 위 봉화산 자락에 야생 차나무 군락이 펼쳐져 있다.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스럽게 자라는 차나무가 여행자들을 반긴다. 봉화산 정상에 오르면 미륵산, 금강, 웅포곰개나루가 한눈에 펼쳐진다. 익산산림문화체험관 1층 숲속쉼터 카페에서는 비료나 약을 전혀 주지 않아, 자연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발효 야생차를 맛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찻잎을 따서 말리기까지 녹차 만드는 모든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체험관 앞 데크는 산비탈에 자라는 소나무와 차밭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감상하며 차향기를 음미하기 좋다. 2004년에 파종한 녹차 24만본이 자라 4.1ha의 운치 있는 차밭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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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백운동원림 한국관광공사 제공


#강진 백운동원림에 다산 향기 가득

전남 강진은 다산 정약용이 조선후기 차 문화의 중흥을 이끈 곳이다. 그는 18년 유배생활의 절반 이상을 만덕산 기슭 다산초당에 머물면서 직접 차를 만들고 제자들에게 제다법을 가르쳤다. 만덕산은 차나무가 많아 다산(茶山)으로 불렸고 자연스럽게 정약용의 호가 됐다. 성전면의 백운동원림에 그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곳은 17세기에 선비 이담로가 조성한 별서 정원이다. 유배중이던 다산은 1812년 제자들과 월출산을 등반하고 내려오는 길에 백운동원림에 하룻밤을 머물렀는데 아름다운 풍경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이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했고 12가지 풍경을 시로 지은 ‘백운첩’을 만들어 백운동원림 4대 주인 이덕휘에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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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월출산다원 한국관광공사 제공


내원은 경사면을 따라 본채, 사랑채, 마당이 높이를 달리하며 지어졌고 마당으로 계곡물을 끌어들여 수로와 작은 사각형 연못을 만든 점이 아주 독특하다. 담장 아래 구멍으로 들어온 계곡물은 아홉 굽이를 돌아 다시 계곡으로 흘러 나가는데 다산이 이곳에 술잔을 띄운 것으로 전해진다. 백운동 12경중 5경 곡수유상(曲水流觴)이다. 담장 밖 외원도 볼거리가 많다. 야트막한 언덕에 세운 정선대에 오르면 월출산 옥판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문 맞은편 담장 밖 울창한 대숲인 운당원에는 차나무가 자생한다. 백운동원림 5대 주인은 다산의 가장 어린 제자 이시헌으로 그는 다산이 타계할때까지 매년 이 차밭에서 난 차로 엽전모양의 떡차를 빚어 다산에게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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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영전통차문화원 한국관광공사 제공


본채 뒤로 돌아가면 도로 양옆으로 그림처럼 펼쳐진 강진월출산다원 풍경을 만난다. 이한영전통차문화원에서는 이담로의 8대손 이한영이 만들어 국내 최초로 상표를 붙여 판매한 금릉월산차, 백운옥판차와 다산이 마신 떡차를 맛볼 수 있다. 현재는 이한영의 고손녀가 명맥을 잇고 있다.

강화=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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