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가상화폐 전성시대가 열렸다고 볼 정도지만 그렇다고 가상화폐의 투기적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일부 젊은세대가 가상화폐를 계층이동 사다리로 보는 시각에 동의하기 어렵다. 가상화폐의 치명적 약점은 과도한 가격 급변동성과 함께 가격 예측 가능성이 심대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거래소를 통해 거래되는 자산중 가상화폐외에 대표적 위험자산인 주식과 한번 비교해보자. 주가 흐름도 기본적으로 랜덤워크여서 추세파악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해당기업 실적·동향에 관심을 기울이면 어느정도 예측가능하다. 주가라는게 장기적으로 기업 실적과 미래성장성이라는 내재가치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개별기업 시총을 연간 순이익으로 나눈 주가수익비율(PER)을 잣대로 주가가 PER의 몇배수준에서 형성될지 대충 계산이 가능하다. 업종에 따라 다르지만 장기적으로 PER 대비 주가가 과도하게 높으면 하향조정될 것으로, 너무 낮으면 오를 것으로 상식적으로 판단할수 있다. 하지만 내재가치 자체가 없는 가상화폐는 가격을 예측할때 기준으로 삼을 만한 잣대가 아예 없다. 주식에 투자하면 기업 실적이 좋을때 더 많은 배당을 받을수 있지만 코인 발행업체와 가상화폐 투자자간 연결고리 존재하지 않는 가상화폐엔 배당 개념도 없다.
이처럼 적정 가격의 준거로 활용할 수 있는 잣대가 없다보니 실체가 모호한 호악재 재료에도 가상화폐 가격이 현기증이 날정도로 급등락을 거듭한다. 지난해 하반기이후 가상화폐 급등 배경중 하나는 인플레이션 헤지수단으로서의 활용 가능성 부각이다. 코로나발 경기침체에 대응하기위해 지난 1년여간 전세계 정부가 헬리콥터에서 현금을 살포하듯 무한대 양적완화에 나섰다. 이 때문에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렸고 갈수록 물가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하에 가상화폐가 인플레이션 헤지수단으로 간주되면서 수요가 확 늘것이라는 출처불명 주장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근거없는 희망사항일뿐이다. 인플레이션 헤지수단은 일반적으로 부동산이나 귀금속 등이다. 화폐가치가 떨어지면 화폐단위로 가격을 매기는 부동산이나 귀금속 값이 치솟기때문에 현찰을 쥐고 있는것보다는 이들 부동산·귀금속을 보유하는게 유리하다.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정보 형태로 존재하는 가상화폐가 헤지수단이 될수 없다는게 대다수 금융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해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탄 나심 탈레브 '블랙스완' 저자는 "원칙적으로 인플레이션과 비트코인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또 시장 영향력이 큰 특정인의 말 한마디에 가상화폐가 과도하게 반응하는 점도 문제다. 일례로 일런 머스크 테슬러 창업자가 비트코인으로 테슬라 전기차를 살수 있도록 하고, 본인이 비트코인에 투자한 사실을 밝히자 모든 가상화폐 가격이 폭등했다. 셀럽들의 말 한마디에 가격이 춤을 추는것 자체가 비정상적이고 가격 예측성을 더 떨어뜨린다. 게다가 규제사각지대에 있어 작전세력의 시세조정, 코인 발행을 둘러싼 사기행태를 제대로 걸러내기도 힘든게 가상화폐 현주소다.
이처럼 큰 위험성에도 "내돈 가지고 내가 투자하겠다는데, 그리고 투자한 돈을 다 날려도 괜찮다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할말은 없다. 실제로 운좋게 투자타이밍이 잘 맞아 팔자를 고칠만큼 큰돈을 벌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역전 대신 패가망신 쪽박을 찰수도 있다. 가상화폐가 부동산 폭등·구직난에 분노한 젊은층의 해방구가 된점도 불편하다. "기득권이 기회를 선점해 부동산 등으로 큰돈을 벌었는데 벼락거지라도 면하려 가상화폐에 몰빵하는게 무슨 문제인가"라며 가상화폐를 계층이동 사다리로 보고 영끌 투자에 나서는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카지노판에서 룰렛게임을 하듯 운에 기대는투자는 결코 계층이동 사다리가 될 수 없다. 지난주 만난 한 벤처기업 CEO는 "하룻새 수백~수천만원을 벌수 있는 가상화폐(물론 반대 경우도 많지만)의 달콤한 맛을 한번 본 젊은이들이 한달내내 일해도 몇백만원 정도의 돈을 손에 쥐는 직장생활이 눈에 들어오겠느냐"고 반문했다. 나라의 기둥이자 미래인 젊은세대가 직장도 공부도 내팽겨치고 365일 24시간 쉼없이 돌아가는 가상화폐 거래소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채 한탕주의에 빠지는건 엄청난 국가적·사회적 손실이다.
[박봉권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