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코인 ‘픽’… 버젓이 시세 조종
출처 없는 정보로 초보자들 유혹
수업료·수수료 명목 금품 요구도
코인시세 급락 땐 “존버” 되풀이
“투자자 모은 뒤 연락 끊고 잠수
무료방은 피해 구제 못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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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픽 주시는 건 여전히 진행되는 건가요?”, “아니면 A님이 세력이 돼서 개미들을 태워야 합니다.”
26일 ‘모두의 알트’라고 소개된 카카오톡 채팅방에는 최근 가상화폐 급락 여파 때문인지 침울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1000여명이 몰려 있는 이곳은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을 포함한 가상화폐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고 매도·매수 타이밍을 알려주는 ‘리딩방’ 중 하나다.
이달 중순까지만 해도 코인 상승세에 연일 들썩이던 분위기와 달리 이날 채팅방 참여자들은 주기적으로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글 링크를 전달하며 동참을 촉구하기도 했다. 은 위원장이 가상화폐를 두고 ‘잘못된 길’이라고 한 것에 대해 분노하면서, 이번 가상화폐 급락의 책임을 은 위원장에게 돌리며 원망하는 글도 적잖았다. 기자는 지난 16일부터 열흘 정도 카카오톡과 텔레그램 리딩방을 취재했다.
카카오톡 리딩방은 따로 금전을 요구하진 않았지만, 텔레그램 리딩방은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참여자가 ‘봇(자동으로 메시지를 전송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특정 가상화폐를 홍보하고, 수수료 등을 요구하고 있었다. 대체로 시세 조종으로 의심되는 행위, 불확실하고, 출처가 의심되는 정보 제공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었다.
지난 주말 가상화폐가 급락하기 전까지는 리딩방 분위기가 대체로 화기애애했다. 채팅방 운영자가 “조만간 상승할 것 같은 종목을 알려주겠다”며 ‘픽’(특정 종목과 매수·매도 시점을 알려주는 것)을 하면, 참여자들은 운영자를 예언자처럼 믿고 따르며 열광하는 모습이었다.
운영자와 일부 참여자가 넌지시 흘리는 정보들은 기자와 같은 ‘코린이’(코인+어린이·코인 초보 투자자를 뜻하는 신조어)가 혹할 만한 것도 적잖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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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채팅방에서는 “이번달 안에 저항 지지대가 나오면서 마지막 상승 구간으로 우상향해 갈 것입니다”라고 단언하며 특정 가상화폐를 추천하는 시세 조종 행위도 버젓이 벌어졌다. 글로벌 투자회사가 비트코인을 매수한다는 기사를 두고는 비트코인이 빠른 시일 내 수억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정보를 과다하게 해석하는 분석 글도 등장했다. 이밖에 “국내외 거래소에 (특정 가상화폐) 상장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라고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글을 올린 뒤, 정작 일부 참여자의 구체적인 질문에는 “상장 관련 부분은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다”며 대답을 피하는 모습도 있었다.
그러다 지난 18일부터 가상화폐가 급락하자 리딩방의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갑작스럽게 커진 손실로 발을 뺄 수도 없는 참여자들은 불안에 떨었고, 리딩방 운영자의 말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따금 운영자들은 “불안에 떨지 말고 ‘존버’(오래 버티는 행위)를 하면 언젠가 반등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리딩방에서 오가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들은 사기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지적한다. 당장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는 이날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총 61건의 사기 사례 중 80% 이상이 거짓 상장 정보로 투자를 유인한 뒤 연락이 끊긴 사례라고 밝히기도 했다.
26일 서울에 위치한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강남센터 시세 전광판에 비트코인 실시간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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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급등세와 맞물려 올 들어 코인투자에 처음 나선, 2030세대 코린이만 160만명에 달한다. 이들이 리딩방의 표적이 될 수 있는 만큼 대책 마련이 절실해 보였다. 하지만 가상화폐 리딩 행위는 현행법상 관리와 단속, 처벌 면에서 모두 법 테두리 밖에 있다. 노골적으로 거짓 정보를 제공하고 금품을 요구하는 리딩방은 드물다. 편향되거나 불확실한 정보를 교류하면서 은연중에 ‘수업료’ 또는 ‘수수료’ 명목으로 금품을 받거나, 간접적으로 특정 가상화폐의 시세를 조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상화폐는 자본시장법 적용을 받지 않아, 주식시장처럼 금융당국이 감시하고 처벌할 수 없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리딩방을 보면 ‘어떤 코인을 사라’거나 ‘언제 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작전세력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그런데 코인은 주가조작처럼 단속할 주체와 근거가 없다. 특히 무료방인 경우 피해 구제도 받을 수가 없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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