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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혼돈의 가상화폐

도지코인, 투기의 아이콘 아닌 '가상화폐 커뮤니티·문화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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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핀테크월드]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가상화폐 시장을 휩쓸었다. 올해 초 8원에 불과했던 도지코인은 2월에 70원이 됐다가 이달 갑자기 575원까지 상승했다. 4개월간 상승률은 6000% 이상. 일반 시장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숫자다. 도지코인의 시가총액 순위도 26위에서 5위까지 껑충 뛰어올랐다.

이러한 놀라운 상승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누가 봐도 일론 머스크다. 그가 트위터를 통해 도지코인에 대한 애정을 표할 때마다 도지코인 시세는 들썩였고 각종 희망적인 루머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계속되는 언론 노출도 도지코인 광풍에 한몫했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로 증명된 이 시대 최고의 혁신가와 귀여운 강아지 블록체인 토큰의 만남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뉴스를 만들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도지코인을 자세히 알아보면 볼수록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트코인이 탈중앙화라는 이상을 외치며 탄생했고 이더리움이 글로벌 컴퓨터를 표방하며 등장한 것과 달리 도지코인은 말 그대로 재미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코인이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는 라이트코인의 복사판이나 다를 바 없고 개발도 활발하지 않으며, 뚜렷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발행량도 무한정이어서 희소성도 떨어진다. 내로라하는 코인들이 연구개발과 비즈니스를 하는 동안 도지코인은 귀여운 강아지로 재미있는 합성 사진이나 만들고 있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가상화폐 커뮤니티에서는 도지코인에 대한 애정이 계속됐다. 귀여운 시바견 캐릭터와 "such doge much wow" 같은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과 함께 수많은 '짤'(영어로는 meme)이 만들어졌고 팬덤이 형성됐다. 레딧에서는 도지코인을 팁으로 주는 서비스도 만들어졌고 2014년에는 나스카 레이싱에 후원해서 경기 차량에 도지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이번 상승 덕인지 몰라도 올해에도 나스카 레이싱에서 도지를 만날 수 있다.

매일경제

출처: Reddit @logical_coward / Tireball 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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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커뮤니티에서 도지가 뜨거운 반응을 얻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시장에서 도지코인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알트코인의 하나로 취급돼왔다. 그도 그럴 것이 시세의 상승과 하락 폭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2017년 광풍장 이후 도지코인 시세는 0.011달러에서 0.000086달러까지 99% 하락했고, 지금도 변덕스럽게 오르내리고 있다. 시세만 본다면 도지코인은 가상화폐 시장의 비이성적인 광기와 투자자들의 가벼움을 대표하는 상징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도지코인이 진짜 중요한 이유는 가격이 아니라 다른 데 있다. 바로 커뮤니티와 문화의 중요성이다. 도지코인에는 가상화폐 세계 사람들의 문화가 농축돼 있다. 가상화폐를 접한 사람들 중에서 도지코인의 시바견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가상화폐를 모르더라도 도지 캐릭터를 아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커뮤니티는 도지코인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며, 도지코인의 문화는 메마른 가상화폐 사람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공통된 즐거움이다. 도지코인을 통해 우리는 가상화폐란 비단 기술과 비즈니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문화도 포괄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실제로 다른 유명한 코인들에서도 공동체와 문화 측면이 포착된다. 보유(Hold)의 오타에서 시작된 말인 HODL이라든지, 보라색 쫄쫄이를 입은 비탈릭 부테린 사진처럼 말이다. 이런 수많은 가상화폐와 문화 중에서 도지코인은 커뮤니티와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는 코인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며 도지의 문화가 없다면 도지는 지금껏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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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Reddit @animetrader / Twitter @AnondranCryp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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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코인의 또 다른 중요성은 린디 효과다. 린디 효과는 오랫동안 지속되던 것이 더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현상을 일컫는다. 린디는 뉴욕 브로드웨이 인근 가게 이름인데, 여기서 배우들이 모여서 서로 공연을 얼마나 오래 하는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오래 공연을 해온 공연일수록 앞으로 더 오래 공연을 지속하는 현상이 발견돼 이 법칙이 만들어졌다.

린디 효과와 관련해 도지코인에 대해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도지코인이 생겨난 건 2013년 12월로 시총 100위 코인 중 비트코인, 라이트코인, 리플 다음으로 4번째로 오래된 코인이라는 사실이다. 도지코인이 나왔을 때 수십 개 코인이 있었고, 도지코인 이후에도 수천 개 코인이 만들어졌지만 그중 대중의 인식 속에서 사라지지 않은 것은 채 몇 개 되지 않는다. 믿기지 않는다면 2017년에 유망주로 떠올랐던 그 많던 코인이 지금 다 어디에 갔는지 찾아보면 될 것이다.

만약 도지코인에 린디 효과가 잘 적용된다면 앞으로 몇 년 동안 도지코인이 시가총액 100위 안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 도지코인은 "강하기 때문에 오래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오래 살아남았기에 강하다"는 명제가 가상화폐 세계에도 적용됨을 증명한다.

도지코인은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가벼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상화폐 세계에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오랜 역사와 커뮤니티의 힘으로 도지는 독보적인 "즐거움의 문화"를 보유한 코인이 되었다.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희소성이다. 다른 어떤 가상화폐도 도지의 즐거움과 유명세를 따라오지 못하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리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상화폐를 접하는 사람은 반드시 도지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코인의 형태로든 재밌는 그림으로든 말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2, 제3의 일론 머스크가 나타날 것이며 유명 인사와 대중의 사랑에 힘입어 도지는 살아남을 것이다("성장할 것이다"가 아님에 주의하자).

특히 서구권 가상화폐 시장이 커질수록 도지의 인기도 함께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비유하자면 우리나라 가상화폐 시장에 리플이 있다면 미국 시장에는 도지가 있다. 로빈후드에서 만든 가상화폐 거래 앱이 도지코인 때문에 일시적으로 마비되었다고 하니 그 인기가 실로 대단하다.

그러나 투자는 조금 다른 얘기다. 지금 같이 광기가 몰아칠 때에는 투자에 매우 주의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575원이던 도지는 며칠 전 절반 이하인 200원까지 하락했다. 도지가 가상화폐와 함께 살아갈 것은 분명하지만 좋은 투자 대상인지는 별개 문제이다. 도지를 투자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가상화폐의 문화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척박한 이 시장에서 귀여운 강아지는 우리에게 어려움도 웃어넘길 수 있는 작은 여유를 허락해줄 것이다.

[조재우 한성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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