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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혼돈의 가상화폐

[비트코인 비틀기] 비트코인의 동력인 서사, 어떻게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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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영웅적 서사가 이끌어낸 비트코인의 가치 상승

서사가 꼬이면서 미묘하게 바뀌기 시작한 분위기…비트코인 서사에 주목해야

가상화폐가 전 세계를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이른바 ‘광풍’으로까지 비견됩니다. 하지만 광풍이 불수록 잠시 멈춰 서서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로 지적해야 할 부분까지 함께 휩쓸려가면 언젠가 더 큰 문제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차분히 가상화폐 시장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 ‘비트코인 비틀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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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공병선 기자] 과거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쉴러 예일대학교 교수는 대표 가상화폐(암호화폐) 비트코인이 전형적인 ‘내러티브 경제학’에 부합한다고 설명한다. 내러티브 경제학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합리성과 이성이 지배할 것 같은 경제가 사실 내러티브, 즉 서사로 인해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서사가 갖춰진 이야기가 비트코인 가격을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또한 그 서사가 매력적일 경우 마치 전염병처럼 빠르게 퍼지면서 상승했다가 어느 순간 푹 꺼진다는 게 내러티브 경제학이다.


지금 어느 때보다 가상화폐 광풍이 뜨겁다. 2030 청년들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투자한다는 말이 나오고 대출까지 끌어와서 가상화폐에 투자했다는 사례도 심심찮게 나온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정말 내러티브 경제학에 부합한다면 심각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긍정적 서사가 끝나고 관심이 사라질 경우 갑자기 폭락할 가능성이 언제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비트코인 서사는 어디까지 와 있을까.


기: 국가와 제도권에 대항하는 익명의 영웅

비트코인은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개발자가 한 논문을 내놓으면서 탄생했다. 비트코인의 가장 유명한 서사는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기존 제도권에 대한 불신 때문에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개발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논문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나 월가 등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고 익명의 개발자라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저 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비트코인이 가진 이야기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영웅에 가까운 익명의 누군가가 부정한 국가와 제도권에 대항해서 싸우는 줄거리를 거부하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혼자만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비트코인에 투자한다면 가격 폭등으로 서민을 부자로도 만들어준다.


쉴러 교수도 이 점을 지적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내러티브 경제학’에서 비트코인이 무정부주의를 의미하는 아나키즘을 띠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익명의 누군가가 개발만 하고 사라지는 서사가 낭만적이면서 추리물과도 가깝다고 주장한다. 익명의 영웅이 국가에 대항할 수 있는 도구를 인류에 남기고 떠나는 이야기를 마다할 대중은 없다.


실제로 비트코인의 기반인 블록체인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완전히 새롭게 창조해낸 기술이 아니지만 아나키즘적 성격 때문에 주목받았다.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는 “1980년대 초 암호화 기술로 프라이버시를 보호하자는 사이퍼펑크 운동으로부터 비트코인의 원형이 되는 다양한 기술이 개발됐다”며 “다만 사이퍼펑크는 중앙 통제적 금융기관과 제휴를 맺는 방식이었다면 비트코인은 완전히 금융기관을 배제한 데서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승: 또 다른 영웅 등장, 일론 머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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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등장은 비트코인 서사에 불을 붙였다. 지난해 12월만 해도 비트코인에 대해 “쓸모없다”고 말했던 그는 지난 2월 오디오 기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클럽하우스를 통해 “비트코인을 샀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후 지난 2월9일 테슬라는 비트코인 15억달러(약 1조6762억원)어치를 구매했다고 공시했다.


머스크 CEO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테슬라가 비트코인 매입 사실을 공시한 날 비트코인은 17.05% 상승하며 5000만원을 뛰어넘었다. 그의 파급력은 최근 도지코인의 급등세에도 해당한다. 아무런 가치가 없고 발행량은 정해져 있지도 않은 도지코인이 지난 15일 47.10%, 16일 104.82% 상승한 것은 머스크 CEO의 트위터 때문이다.


머스크 CEO의 서사가 비트코인으로 옮겨오면서 비트코인 가격 상승의 동력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머스크 CEO는 세상의 멸시를 이겨내면서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을 성공해내는 영웅적 서사를 지니고 있다. 그는 자율주행 자동차, 우주, 뇌 연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업을 이끄는 중이다.


특히 국가와 제도권에 대항하는 개인이란 서사도 지니고 있다. 국가, 그것도 미국 정도 되는 강대국만 시도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된 우주산업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1월 기관의 공매도에 반발해 개인투자자들이 결집한 게임스톱 사태에서도 머스크 CEO는 적극 나서서 “공매도는 사기다”라고 발언했다. 일정 부분 비트코인의 서사와 겹치는 셈이다.


이 교수는 “머스크 CEO는 예언가적 성격을 띠고 있어 많은 사람이 따르고 있다”며 “쉴러 교수가 설명한 서사의 슈퍼 전파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모두가 돈 버는 희망적인 서사와 함께 ‘권토중래’

하지만 머스크 CEO의 말로는 부족하다. 제아무리 영웅이 내놓은 예언이라도 실제로 증명되지 않는다면 선뜻 참여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 바로 주변 성공담이다. 비트코인이 대중들 사이에서 일종의 ‘희망’으로 떠오르면서 관심 받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이런 성공담 서사가 2030 세대를 중심으로 퍼졌다. 과거 세대와 달리 자산을 구축하기 힘들기 때문에 가파른 상승률을 지닌 가상화폐는 ‘탈출구’로 인식됐다. 가상화폐로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들의 주인공이 모두 대학생이거나 말단 직장인인 것 역시 2030 세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의 가상화폐 투자는 변동성을 활용해서 일확천금을 얻기 위한 것”이라며 “사회적 분위기가 가상화폐 시장으로의 참여를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도권의 참여도 광풍에 기여했다. 미국 대형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뿐만 아니라 모건스탠리, 피델리티 등 월가에서 가상화폐 시장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무엇보다 미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나스닥 상장은 광풍을 정점으로 이끌어냈다.


지난 13일 코인베이스 상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비트코인은 8000만원을 넘어섰다. 제도권의 인정을 못 받던 비트코인이 더 이상 무시 못 할 존재로 성장한 것이다. 비트코인이 미 증시에서 상장지수펀드(ETF)로도 출시된다면 그야말로 초한지에 비견할 만한 ‘권토중래’ 서사다.


결?: 꼬여버린 서사가 발목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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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사가 꼬이기 시작했다. ‘기’와 ‘전’이 안 맞아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비트코인은 국가와 제도권에 대항하기 위해 탄생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도권의 인정을 원하거나 받고 있다. 홍 교수는 “제도권에 대항하기 위해 탄생한 비트코인이 제도권의 인정을 원한다는 것은 모순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코인베이스의 상장 이후 비트코인은 하락했다. 지난 14일부터 9일 연속 비트코인은 하락세를 보이며 5400만원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비트코인이 내재가치를 증명해내지 못하면서 스스로 서사를 못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또 다른 영웅이 나타나지 않으면 성장 동력이 꺼져버리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결제수단으로 탄생했지만 실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게임 플랫폼 스팀은 비트코인을 통한 결제를 받다가 높은 수수료와 변동성 때문에 중단했다. 테슬라도 비트코인 결제를 받고 있지만 스팀과 같은 이유로 철회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지난달 31일 글로벌 결제기업 페이팔이 가상화폐 결제 서비스를 출시했지만 이 역시 비효율적이란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홍 교수는 “이번 페이팔의 서비스는 가상화폐를 사용하지만 결국 법정화폐로 전환 후 결제하는 시스템”이라며 “불필요한 절차를 하나 더 만든 셈”이라고 지적했다.


더욱 문제는 서사의 흐름이 미묘하게 바뀌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비트코인은 달러를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을 했음에도 1%대 하락 후 다시 상승했던 때와 분위기가 다르다. 스콧 마이너드 구겐하임파트너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지난 21일 미 경제매체 CNBC에 출연해 “비트코인이 단기간에 2만~3만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이 금을 추월한다고 주장할 만큼 낙관론자였다.


쉴러 교수에 따르면 전염병은 환자와의 접촉을 피하면서 감소하지만 의료적 개입이 없어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종식된다. 경제 관련 서사도 마찬가지다. 쉴러 교수는 전염병과 비슷하게 경제 서사도 불분명한 이유로 빠르게 확산했다가 이야기에 대한 흥미를 잃을 경우 사라진다고 설명한다. 24일 기준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24시간 기준 거래량은 전날 대비 55.43% 떨어졌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24시간 기준 거래량 역시 49.71% 감소했다. 서사를 동력 삼아 성장했던 비트코인의 관심도가 떨어질 경우 가격 폭락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비트코인 관련 서사에 특히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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