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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 백신 물꼬 튼 이재용…'반도체전쟁 해결사'로 투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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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K반도체 ⑦ ◆

매일경제

지난해 10월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반도체 장비 생산 시설을 둘러보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둘째). 이 부회장은 이날 ASML 경영진과 면담을 하고 극자외선 장비 공급 등 차세대 반도체 협력을 논의했다. [사진 제공 =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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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화이자와 코로나19 백신 도입 협상을 벌이고 있던 정부 관계자들 속은 검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중순 "12월 초에는 계약 현황, 확보 물량 등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시한이 다 되도록 협상에 진척이 없었기 때문이다. 화이자 고위 관계자와의 협상 창구를 확보하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었고, 아시아 지역 판매를 담당하는 화이자 실무 임원과의 논의는 소득 없이 공전을 계속하던 상황이었다.

답보 상태가 이어지던 지난해 12월 중순 드디어 돌파구가 마련됐다. 주역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었다. 직접 화이자 관련 자료를 찾다 화이자 홈페이지에 접속한 이 부회장은 오랜 기간 교류해온 한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화이자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2011년 미국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인 CES에서 이 부회장과 미팅을 했던 인물로, 같은 해 핵심 경영진을 대동하고 한국을 방문해 이 부회장과 재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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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기 가능성을 발견한 이 부회장은 당시 휴가 중이던 해당 사외이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앨버트 부를라 화이자 회장과 백신 총책임 사장을 소개받았다. 화이자 내부 고위 인사와의 협상 창구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이처럼 초창기 백신 도입 협상의 '해결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22일 화이자 고위 관계자와 박능후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김강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삼성 경영진이 참석한 콘퍼런스콜이 진행되며 협상의 물꼬가 트이기까지 앞장서 난관을 타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의 해결사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백신 도입 시기를 앞당기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무기는 주사기였다.

화이자가 최소 잔여형 주사기(LDS)에 관심이 많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주사기 제조 역량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도록 지시했던 것. 삼성이 지방 소재 중소기업인 풍림파마텍을 발굴하고 금형 개발 등 기술 지원과 스마트팩토리 구축을 통해 한 달 만에 대량생산 체제를 완성한 것은 이 부회장 의지가 바탕이 됐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풍림파마텍의 LDS 공급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자 백신 공급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그 결과 원래 올 3분기에나 공급받을 예정이었던 화이자 백신이 지난 3월부터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3월 100만회분이 도입된 화이자 백신은 이달 100만회분, 5월 175만회분, 6월 325만회분 등 2분기까지 순차적으로 총 700만회분이 공급될 예정이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수감된 이후에도 백신 도입 협상이 성사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당부하며 협상 진척 과정을 챙겨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감된 이후인 지난 1월 26일 임직원에게 보낸 "국민들에게 드린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 안에는 화이자 백신 조기 공급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는 설명이다.

재계에서는 난관에 봉착했던 화이자 백신 도입을 성사시키고, 도입 시기까지 앞당긴 이 부회장을 반도체 위기 해결사로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백신 도입 협상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이 부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글로벌 반도체 패권전쟁을 극복하기 위해 활용하자는 주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가진 글로벌 네트워크는 삼성을 넘어 국가적인 자산"이라며 "이 귀중한 자산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여러 차례 위기 극복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당시 위기를 정면돌파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이 부회장은 일본 정부가 불화수소 등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을 제한하자 곧바로 일본을 방문해 현지 업계 관계자들과 만나 긴급 물량을 확보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반도체 생산 차질을 막았다.

한일 관계가 냉각돼 있던 상황에서도 한국 기업인으로는 유일하게 일본의 국가적 행사인 럭비월드컵 개·폐막식에 초청받아 참석했을 정도로 탄탄했던 일본 재계와의 인맥이 당시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역량은 미래 먹거리 발굴에서 특히 빛났다. 그는 지난해 9월 미국 버라이즌과 7조9000억원 규모의 초대형 5세대(5G) 장비 납품 계약을 체결할 당시에도 10여 년간 인연을 이어오던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CEO에게 수차례 전화와 영상회의 등을 통해 삼성의 장점을 어필함으로써 계약을 따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과감한 시설 투자와 인수·합병(M&A)에도 이 부회장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K반도체의 대표주자인 삼성전자는 대규모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총수인 이 부회장의 부재로 신속한 결정에 난항을 겪는 모습이다.

재계 관계자는 "국가 총력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반도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흐름을 짚어내고 결단을 내리는 이 부회장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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